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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目次)
사진 (寫眞) 경성무용연구소시대 (京城舞踊硏究所時代)_(7) 순천역에서 (順天驛에서)_8 무여무 (巫女舞)_9 희망을 안고 (希望을 안고)_10 석정문하시대 (石井門下時代)_11 소야곡(초야대) (小夜曲)(初夜臺)_12 희생 (犧牲)_13 검무 (劍舞)_14 오제의 죽엄_15 승무 (僧舞)_16 오리엔탈_17 메리-위도우_18 광상곡 (狂想曲)_19 조선풍듀엣트 (朝鮮風듀엣트)_20 가두예 (街頭藝)_21 마음에흐름_22 ○터에서 (○攄에서)_23 에헤야노아라_24 무여무 (巫女舞)_25 동형의 씨스템 (動形의 씨스템)_26 동형의 씨스템 (動形의 씨스템)_27 도약 (跳躍)_28 섬라(태국)의 춤 (暹邏의 춤)_29 인도인의 비애 (印度人의 悲哀)_30 민요조 (民謠調)_31 진양조 (盡陽調)_32 도약 (跳躍)_33 제일회향토방문시(무여무) (第一回鄕土訪問時)(巫女舞)_34 농부춤·스페인(서반야)춤 (農夫춤·西班牙춤)_25 도약·폭풍우 (跳躍·暴風雨)_36 학교를 맟을 때 까지 _1 나와 서모 (庶母)_5 나의결심과 나의성격_10 논물의리별_16 고향을 떠나 새로운 연구에_20 독립 무용 연구소 건설_22 결혼전후_25 또다시 동경에_27 출발전야 (出發前夜)_30 누이에게 주는 편지_최승일(崔承一)_48 형제에게 보내는 글 (兄弟)_최승희(崔承喜)_61 고뇌의 표현 (苦惱의 表現)_최승희(崔承喜)_66 무용은 마음의 창 (舞踊은 마음의 窓)_무용가 석정막 (舞踊家 石井漠)_72 무희 최승희 론 (舞姬 崔承喜 論)_소설가 천단강성(小說家 川端康成)_75 최승희에게 기함 (崔承喜에게寄함)_개조사 사장 산본실언(改造社 社長 山本實彦)_84 민족무용가로서의 최승희 (民族舞踊家로서의 崔承喜)_평론가 원지공방 (評論家 園池公坊)_88 최승희에게 주문함 (崔承喜에게 註文함)_평론가 중촌추일(評論家 中村秋一)_90 한개의 감상 (한개의 感想)_철학가 류종열(哲學家 柳宗悅)_93 최승희여사의무용을보고 (崔承喜女士의舞踊을보고)_평론가 신거격(評論家 新居格)_95 최승희찬 (崔承喜讚) 소설가 촌산지의(小說家 村山知義)_99 미견최승희(조선파와 서무파) (未見崔承喜)(朝鮮派와 西舞派)_소설가 강전삼랑(小說家 岡田三郞)_103 최승희론 (崔承喜論)_평론가 삼산평조(評論家 杉山平助)_107 최승희의무용예술 (崔承喜의舞踊藝術)_소설가 판원직자 (小說家 板垣直子)_110 최승희의무용세계에○하아 (崔承喜의무용세계에○하아)_평론가 청야계길(評論家 靑野季吉)_114 동양의리듬 (東洋의리듬)_이화여자전문학교교수 박경호(梨花女子專門學校교수 朴강浩)_118 육체의탄력(肉體의彈力)_조선중앙일보학예부장 김복희(朝鮮中央日報學藝部長 金復熙)_121 장쾌한진로를축복한다 (壯快한進路를祝福한다)_평론가 박영희(評論家 朴英熙)_122 세련되어가는기예 (洗鍊되어가는技藝)_동아일보학예부장 서항석 (東亞日譜學禮部長 徐恒錫)_126 조선사람의자랑이되도록 (朝鮮사람의자랑이되도록)_신동아 주간 최승만 (新東亞 主幹 崔承萬)_127 최승희의인○(최승희의印○)_조광 주간 함대훈(朝光 主幹 咸大勳)_128 과거의추억과미래의기대 (過去의追憶과未來의期待)_화가 안석주 (畵家 安碩柱)_133 최승희무용 (崔承喜舞踊)_최승일(崔承一)_137 최승희작품해설 (崔承喜作品解說)_음악평론가 산우충 (音樂評論家 山牛充)_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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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렵니다.”
1920년대 조선,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 식민지 조선의 틀을 깨고 나온 무용가 최승희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 북미,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일명 ‘세계의 무희’ 최승희의 자서전이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 그대로 복원되어 출간된다. 월북 예술가인 최승희는 사회 분위기 속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그간의 많은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 없어졌다. 1937년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었고,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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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최승희는 존재 자체가 ‘파격(破格)’이었다. 1920년대의 조선은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을 상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최승희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기호를 과감히 깨부수거나 없었던 것을 서슴없이 해보이는 방식으로 조선의 리듬과 춤의 표징이 되었다. 그녀의 단발, 놀랍도록 다채로운 표정, 변신과 같은 화장, 조각 같은 인간 몸의 선, 그전까지 알지 못했던 육체의 탄력미 등은 조선의 전통 무용과 모던 댄스, 향토풍의 신무용과 동양적인 것, 나아가 인터내셔널 예술을 지향했다. 이것들은 어느 하나 당연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최승희의 춤과 생의 희열은 이런 불협화음과 암중모색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찰나의 빛과 같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 활약과 명성 뒤에는 피식민자의 우울과 여성의 고뇌, 도약의 무용시(舞踊詩)를 창작하려는 예술가의 지독한 번민이 운명처럼 자리하고 있다. 1937년에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에는 인생 여정에서 아직 산마루에 도착하지 않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어 있고, 그녀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기억이 누적되어 있다. 최승희가 적극적인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직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 통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 문경연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