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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나의 자서전
양장
청색종이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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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문장

책소개

목차

019 서문을 대신하여



025 아버지
035 어머니
049 오빠
063 무용으로의 출발
073 이시이 바쿠 선생님
083 고향으로
091 도쿄를 떠나다
103 독립
115 결혼
127 고난의 길
135 사랑하는 아이
141 다시 도쿄로
149 데뷔하기까지
157 데뷔
165 독립
173 나의 무용 방향에 대해서



179 유럽과 미국 공연 여행일기
199 북경의 추억 ― 북중국 무용 여행일기


213 옮긴이의 말
날아올라, 최승희 | 권상혁(소설가)

저자 소개 2

1911년 11월 24일 경성에서 해주 최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일찍 졸업한 후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연구생으로 입단했다. 3년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문사로 이름을 날리며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안막과 결혼했다. 다시 이시이 바쿠의 문하로 들어가서 1934년 첫 단독 공연을 개최하며 당대 최고의 무용가로 명성을 얻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150회가 넘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일약 ‘세계의 무희’로 불리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남편을 따라 북으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열고 민족무용 연구와
1911년 11월 24일 경성에서 해주 최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일찍 졸업한 후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연구생으로 입단했다. 3년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문사로 이름을 날리며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안막과 결혼했다. 다시 이시이 바쿠의 문하로 들어가서 1934년 첫 단독 공연을 개최하며 당대 최고의 무용가로 명성을 얻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150회가 넘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일약 ‘세계의 무희’로 불리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남편을 따라 북으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열고 민족무용 연구와 제자 양성에 주력했다. 이후 남편 안막은 ‘반당종파분자’로 숙청되었고, 최승희 역시 명확한 기록 없이 숙청되었다는 소문만 남았다. 2003년 복권되어 애국열사릉에 묘비가 세워졌다. 1969년 8월 8일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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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국어교육학과 박사 과정 수료. 201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황혼시장」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으며, 소설집 『너를 생각해』 『제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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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1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22*184*20mm
ISBN13
9791189176938

책 속으로

월반 배경
당시 조선의 소학교 제도에 성적이 좋은 학생은 1학년 또는 2학년을 월반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소학교 시절 저는 성적이 좋아 월반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경성에 있는 숙명여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반에서 가장 키가 작고 나이도 제일 어렸습니다.

몰락의 이유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 사람 좋은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계략에 빠져서 빚보증을 서거나 누군가의 간사한 계책으로 인해 토지 매매가 실패하면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람이 너무 좋고 물러서 온 가족이 괴로운 일을 겪은 것이다, 라고 말해 버리면 아주 간단하게 생각될 일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런 간단한 생각만으로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당시 복잡한 사회 흐름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제 기구는 유한(有閑), 유산(有産)이 있던 낡은 생활을 근본부터 붕괴시켜 버리는 시대가 그때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이런 무서운 시대의 폭풍우 같은 날들로 인해, 우리 가족은 허무하게도 다른 계급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함께 휘말려 버렸던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꿈꾸다
생활이, 사회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가사의하게도 그에 반해 ‘아름다운 것’, ‘정결한 것’, ‘강한 것’을 동경하는 마음이 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뿌리 깊게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영향
오빠의 영향을 받은 저는 들뜬 생활을 하는 대신 시와 소설을 마치 탐하듯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시나 소설의 달콤한 꿈처럼 은밀하고 얕은 이야기와 덧없는 내용은 제 마음에 그 어떤 울림이나 감동도 주지 못했습니다. 현실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거 같은, 그리고 생활 의식을 확실하게 깊이 뿌리내린 작품을 구해서 애독했습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와 노래에 빠져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시절의 일을 생각해 보면 서서히 그립고 애틋한 마음이 가슴 가득 복받쳐옵니다.

사명감
나는 조선을 대표해서 내 조국의 전통과 풍물이 가진 미를 제대로 잘 살려 현대에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보자. 그렇게 해야 한다. 나에게는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나는 큰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독립
예술에 대한 첫 번째 전환기가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막연하게 무용에 대한 관념이 제 마음속에서 변화해 갔습니다.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은 선생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새로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정진해 가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매너리즘을 타파해 더욱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조선에서 태어난 무용가라는, 독자적인 입장에 대한 자각도 드디어 싹트기 시작해, ‘내가 아니라면 안 되는 새로운 무용을 창작해 보고 싶다, 나 자신은 그런 예술을 창작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막의 이름
안필승은 ‘안필승’이라고 하는 이름보다도 ‘안막’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됐습니다. 나중에 이시이 선생님의 이름을 무단으로 빌려 써서 괘씸하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안막이라는 이름은 자신이 만든 이름이 아니고 집필하고 있던 신문사가 멋대로 붙여준 ‘펜 네임’이었고 그 이름이 일반적으로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됐습니다.

안막의 영향
결혼 이후 저는 남편 안막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작품에도 그것이 강하고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 전 다쿠보쿠와 도스토옙스키 등을 열렬히 사랑해 평소에 읊조리거나 흥얼거리던 제가, 뭔가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울리는 것을 찾아 ‘인디안 라멘토’의 음악으로 처녀작을 만들고 나서, 결혼 후 이것이 시류와 보조를 맞춰 경향적으로 진보하여 〈해방된 사람〉, 〈빛을 구하는 사람〉, 〈태양을 구하는 사람〉 등 다소 의식적인 내용을 공연했으며, 그것이 차차 남편의 구속 등으로 인한 저 자신의 환경 변화와 맞물려 제 작품 경향이 바뀌어 갔습니다. 무엇보다도 관객층과 가능하면 가까이 접근해 손을 마주잡는 것, 조선 관객층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과 딱 합치하는 것, 거친 생활의 파도에 마구 떠밀려 터벅터벅 이민하는 무리, 그런 것에 대해 저는 격하게 공감하며 이것을 무용화해 보자는 욕망에 휘말렸습니다.

출세작 〈에헤야 노아라〉의 창작 배경
훗날 이시이 바쿠(石井漠) 선생님의 작품 발표회에서 “직접 만든 작품을 하나 발표해 보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연을 하는 김에 지금은 사라져 버린 조선무용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예술적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무용가로서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이야기한 ‘굿거리장단 춤’은 현재에도 중요한 제 상연 목록(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아버지가 추었던 ‘굿거리장단 춤’을 즐기며 바라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저는 동양인이 춤추는 서양 무용에 한해서는 그 거리를 좁히고,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두 개의 다른 무용도 통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다른 두 영역의 무용을 저 자신만의 레퍼토리로 엮어 춤을 추는 제게는 더욱더 무용의 통일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며 또한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미공연
북미·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독일·브라질·우루과이·아르헨티나·칠레·페루·에콰도르·콜롬비아·코스타리카·멕시코 등을 거치면서 150회가량의 무용 공연을 거듭했으며, 10만 마일 남짓 긴 여행길이 되었습니다. 3년이라는 세월이 길지는 않지만 결코 짧지도 않았습니다.

중국무용을 탐구한 이유
나는 바쁜 공연 중에 반드시 동양무용의 신작 소재를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극과 곤곡, 영화 및 연극 등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중국 의상과 관련된 참고서와 음악, 그리고 중국 시문에 나오는 서시, 왕소군, 양귀비, 향비 등의 문헌을 연구하면서 중국 여성의 예술화된 여러 가지 전형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다시 기억해야 할 불멸의 무희 최승희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하고 나서 기자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찾아가 인터뷰를 할 때, 그는 문득 최승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하다면 당신도 직접 최승희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세요. 반드시 빠져들게 될 테니까요.”
― 가와바타 야스나리

최승희가 직접 쓴 자서전, 80여 년 만에 첫 번역

무용가 최승희의 자서전이 ‘한국의 아름다운 문장’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최승희, 나의 자서전』은 1936년에 『나의 자서전』(니혼쇼소(日本書?), 도쿄) 초판이 출간된 이후 80여 년 만에 처음 번역 출간한 것입니다. 그이가 직접 쓴 자서전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출간된 후 한 번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최승희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금기였습니다. 월북 예술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남긴 작품은 1988년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중에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학술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월북 예술가의 이름 한 글자를 가리고 써야 할 정도로 그 이름조차 제대로 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사이에 많은 자료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망실되거나 고의로 버려지고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종이쪼가리 하나조차도 불온한 것이라면 어떤 갖은 수모를 당할지 모르는 어두운 시대였으니까요.

해금 이후 비로소 최승희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개의 평전이 출간되었지요. 그러나 정작 최승희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최승희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최승희의 도쿄판 『나의 자서전』은 여러모로 중요한 작품입니다. 시기상으로 보아 구미(歐美) 공연을 떠나기 전에 출간된 책이니 자서전치고는 이른 감이 있어도 반생기라는 점에서 볼 때 최승희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동안 최승희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떠돌아다녔지만, 이 자서전을 통해 바로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승희가 경성에서 태어났다는 글은 『나의 자서전』에 밝혀져 있습니다. 이 책이 제대로 번역되었다면 최승희의 고향에 대한 혼란은 없었겠지요. 게다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安漠)의 이름이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잘못된 이야기는 지금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최승희는 자서전에서 이미 남편의 이름에 대한 사연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최승희에 대해서 타인의 말로 이해해왔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왔지요. 그래서 최승희가 직접 쓴 자서전을 번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80여 년만입니다.젊은 소설가 권상혁의 초역으로 최승희의 살아온 내력을 비로소 읽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옛 일본어는 현대 일본인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번역자 권상혁은 이 책의 절반을 일본 현지에서 번역했습니다. 세세한 각주를 달아서 지금 읽어도 불편이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2부에는 자서전을 쓴 이후 구미와 중국 공연에 관한 최승희의 글을 처음 발굴해서 번역했습니다. 최승희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글이 될 것입니다.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녀온 이야기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최승희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새로 발굴한 자료를 번역했습니다.

『최승희, 나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 겪게 된 고난과 새로운 무용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고 있습니다. 최승희가 어떻게 월반해서 진학하게 되었는지 그간 잘못 알려진 사실과 달리 당시의 학제 개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자서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기 하루 전날에 열린 첫 신작발표회가 극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드디어 자신이 열망하던 새로운 조선의 무용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한 예술가의 성장과 고뇌가 담긴 잊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비록 일본어로 출간된 책이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문장’ 시리즈로 번역 출간했습니다. 최승희는 조선의 춤을 새롭게 발견했고, 자신의 온몸으로 끝까지 조선의 춤을 추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이념에도 기울지 않았으며 오로지 홀로 외롭게 조선의 춤을 지켜낸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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