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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벽(壁)
011 물 013 밤 015 조숙(早熟) 017 죽음 020 산 023 화단(花壇) 026 파초(芭蕉) 030 발 032 동정(同情) 034 돌 037 바다 041 성(城) 044 가을꽃 047 여명(黎明) 049 고독 052 수선(水仙) 055 역사(歷史) 060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067 평론가 070 동방정취(東方情趣) 074 단편과 장편 080 명제기타(命題其他) 085 조선의 소설들 093 소설의 맛 097 소설가 101 이성 간 우정 108 통속성이라는 것 111 춘향전의 맛 113 기생과 시문 121 난(蘭) 124 「야간비행」 127 책(冊) 131 필묵(筆墨) 135 모방(模倣) 138 일분어(一分語) 141 자연(自然)과 문헌(文獻) 144 작품애(作品愛) 149 남의 글 153 병후(病後) 162 묵죽(墨竹)과 신부(新婦) 167 독자의 편지 170 우세(牛歲) 176 수목(樹木) 182 매화(梅花) 186 고전(古典) 189 민주(憫酒) 193 목수(木手)들 198 낚시질 204 동양화 208 고완(古翫) 213 고완품(古翫品)과 생활 218 소설(小說) 224 인사 229 두 청시인(淸詩人) 고사(故事) 235 해촌일지(海村日誌) 249 만주기행(滿洲紀行) |
李泰俊,, 상허尙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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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담은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珠簾)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 「파초」 중에서 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冊답다. 冊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冊이다. 冊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冊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冊에 있어서랴! 冊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 「책」 중에서 ‘골동(骨董)’이란 중국말인 것은 물론, ‘고동(古董)’이라고도 하는데 실은 ‘고동(古銅)’의 음전(音轉)이라 한다. 음편(音便)을 따라 뻔쩍하면 딴 자(字)를 임의로 끌어다 맞추고, ‘무엇은 무엇으로 통한다’ 식의 한문의 악습은 이 ‘고동(古銅)’에도 미쳐버렸다. ‘고(古)’ 자는 추사(秋史)같은 이도 얼마나 즐기어 쓴 여운 그윽한 글자임에 반해, ‘골(骨)’ 자란 얼마나 화장장에서나 추릴 수 있을 것 같은, 앙상한 죽음의 글자인가! 고완품들이 ‘골동’, ‘골’ 자로 불리워지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감이 얼마나 삭탈을 당하는지 모를 것이다. 말이란 대중의 소유라 임의로 고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골동’ 대신 ‘고완품’이라 쓰고 싶다. --- 「고완품과 생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