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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인간 존엄의 상실
소설에 나타난 빈곤과 궁핍의 묘사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박군은 생선 장사와 두부 장사, 나무 장사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지만 끝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삭의 아내가 극심한 허기를 견디지 못해 길에 버려진 귤껍질을 주워 먹고 그 위에 선명한 잇자국을 남기는 장면, 젖을 달라며 울부짖는 갓난아이의 모습은 이 가족이 처한 절망을 처절하게 드러낸다. 또한 땔감을 구하려다 경찰에게 무자비한 매질을 당하는 대목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마저 범죄로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 주며,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결핍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까지 짓밟는 사회적 폭력임을 부각한다. 특히 제대로 먹을 것조차 없는 상황에서 임신한 아내가 귤껍질을 주워 먹는 장면은 작품의 정서를 응축하며,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의 존재 의미가 무너지는 비극적 체험을 상징한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각성 극한의 고통 속에서 박군은 중대한 인식의 전환을 맞이한다. 그는 자신의 빈곤이 게으름이나 무능력 탓이 아니라, “험악한 제도”와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임을 자각한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아왔다”는 그의 절규는 개인적 차원의 자책이 사회적 차원의 분노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한다.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온다’는 삶의 격언마저 통하지 않는 현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 깨달음은 막연한 슬픔이나 체념에 머물렀던 이전 문학들과 달리, 빈궁의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는 신경향파 문학의 핵심적 특징을 드러낸다. --- pp.26-27 김군! 세월은 우리를 위하여 여름을 항시 주지는 않았다. 서풍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찬 기운은 벗은 우리를 위협하였다. 가을부터 나는 대구어(大口魚) 장사를 하였다. 삼 원을 주고 대구 열 마리를 사서 등에 지고 산골로 다니면서 콩(大豆)과 바꾸었다. 난 대구 열 마리는 등에 질 수 있었으나 대구 열 마리를 주고 받은 콩 열 말은 질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삼사십 리나 되는 곳에서 두 말씩 두 말씩 사흘 동안이나 져왔다. 우리는 열 말 되는 콩을 자본 삼아 두부 장사를 시작하였다. 아내와 나는 진종일 맷돌질을 하였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내가 이렇게 괴로울 적에 해산한 지 며칠 안 되는 아내의 괴로움이야 어떠하였으랴? 그는 늘 낯이 부석부석하였다. 그래도 나는 무슨 불평이 있는 때면 아내를 욕하였다. 그러나 욕한 뒤에는 곧 후회하였었다. 콧구멍만한 부엌방에 가마를 걸고 맷돌을 놓고 나무를 들이고 의복가지를 걸고 하면 사람은 겨우 비비고 들어앉게 된다. 뜬 김에 문창은 떨어지고 벽은 눅눅하다. 모든 것이 후질근하여 의복을 입은 채 미지근한 물 속에 들어앉은 듯하였다. 어떤 때는 애써 갈아놓은 비지가 이 뜬 김 속에서 쉬어버렸다. 두붓물이 가마에서 몹시 끓어 번질 때에 우윳빛 같은 두붓물 위에 버터빛 같은 노란 기름이 엉기면(그것은 두부가 잘될 징조다) 우리는 안심한다. 그러나 두붓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글러가기 시작한다. 초를 쳐보아서 두붓발이 서지 않게 매캐지근하게 풀려질 때에는 우리의 가슴은 덜컥 한다. “또 쉰 게로구나! 저를 어쩌누?” --- pp.37-38 ‘탈출’은 도망이 아니라 저항의 시작 태우 제목이 왜 「탈출기」인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단순히 가난이 싫어서 도망친 기록이 아니네요. 선생님 정확해. 제목 「탈출기」의 ‘탈출’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고향을 떠나 간도로, 다시 집을 떠나 단체로 이동하는 공간적인 탈출을 의미해. 하지만 더 깊은 속뜻은, 순응하고 체념하며 살던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저항하는 삶으로의 탈출을 의미한단다. 수동적인 피해자에서 능동적인 투쟁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지. 지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박군의 선택이 조금은 이해가 가요. 그래도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선생님 그 안타까움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이야.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었던 한 가장을, 가족을 버리고 투사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식민지의 잔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거지. 작가 최서해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거야. “누가 이 선량한 청년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가?” 하고 말이야. 수지 작가 최서해도 실제로 그렇게 살았나요? 아까 선생님이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맞아. 최서해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었어. 그는 실제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간도에서 부두 노동자, 나무장수 등을 하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어. 그래서 그의 문장은 화려하거나 세련되진 않지만, 흙냄새와 피 냄새가 나는 듯한 생생함이 있지. 그의 작품이 책상머리에서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단다. 태우 ‘체험에서 우러난 문학’이라는 말이 진짜 멋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그렇지. 그래서 최서해의 문학은 흔히 ‘체험의 문학’이라고 평가된단다. 그는 가난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동정의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았어. 그 안에서 꿈틀대는 분노와 저항 의식을 끄집어냈지. 그래서 최서해를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개척자이자, 신경향파 문학의 최고 봉우리라고 평가하는 거야. --- pp.52-53 문 서방의 높은 소리를 주의시키던 아내는 뒤주간 저편을 보면서, “아, 오셨소?” 하고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에, 왔소? 장귀즈(주인) 있소?” 지주 인가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마당에 들어서다가 뒤주간 앞에 앉은 문 서방을 보더니, “응, 저기 있소!” 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 앞에 가 수캐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서천에 기운 태양은 인가의 이마에 번지르르 흘렀다. “어디 갔다 오슈?” 문 서방은 의연히 옥수수를 바르면서 하기 싫은 말처럼 힘없이 끄집어내었다. “문 서방! 그래 오레두 비들(빚을) 모 가프겠소?” 인가는 문 서방 말과는 딴전을 치면서 담뱃대를 쌈지에 넣는다. “허허, 어제두 말했지만 글쎄 곡식이 안 된 거 어떡하오?” “안 돼! 안 돼! 곡식이 자르 되고 모 되구 내가 아르오? 오늘은 받아 가지구야 가겠소!” 인가는 담배를 피우면서 버티려는 수작인지 땅에 펑덩 들어앉았다. “내년에는 꼭 갚아드릴게 올만 참아 주오! 장구재(주인)도 알지만 흉년이 되어서 되지두 않은 이것(곡식)을 모두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겨울을 나라우 응? …자 내년에는 꼭, …하하.” 인가를 보면서 넋 없는 웃음을 치는 문 서방의 눈에는 애원하는 빛이 흘렀다. --- pp.68-69 남의 땅에서 겪는 이중의 설움 수지 조선 땅이 아니니까 농사지을 땅도 없었고요. 선생님 그렇지. 땅은 이미 중국인 지주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어. 문 서방은 중국인 지주 ‘인가’의 땅을 빌려 소작을 짓는데, 소작료가 얼마나 비싼지 가을에 추수를 해도 빚만 쌓이는 거야. 게다가 흉년까지 들었으니 상황은 최악이었지. 여기서 우리는 식민지 유랑민이 겪는 이중고를 볼 수 있어.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잃은 설움에 더해, 타국에서 중국인 지주에게 받는 멸시와 착취까지 견뎌야 했으니까. 태우 같은 민족끼리도 갑질하면 서러운데, 남의 나라 지주가 괴롭히면 진짜 힘들 것 같아요. 선생님 바로 그 지점이야. 지주 ‘인가’는 문 서방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아. 빚을 못 갚으니까 집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끔찍한 요구를 하지. 문 서방의 외동딸인 ‘룡례’를 빚 대신 데려가 버리지. 지현 그건 인신매매나 다름없잖아요! 빚 때문에 사람을 데려가다니 너무 끔찍했어요. 선생님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랑민 사회에서는 종종 벌어졌던 비극이란다. 문 서방 부부가 울며불며 매달리지만, 인가는 눈 하나 꿈쩍 않고 룡례를 강제로 끌고 가버려. 가난이 인간의 가장 소중한 천륜인 가족 관계마저 무참히 끊어버린 거지. --- pp.95-96 1930년대 구인회와 순수문학의 확립 1930년대는 이태준 문학이 가장 높은 완성도에 도달한 시기다. 그는 ‘구인회’를 중심으로 박태원, 이효석, 정지용 등과 함께 당대 문단의 흐름을 주도했다.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카프 문학에 맞서 그는 문학이 정치나 사상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자율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일관되게 옹호했다. 세련된 문체와 치밀한 구성으로 한국어의 미학적 가능성을 끌어올린 이 시기의 성취는 그를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리게 했으며, 한국 소설이 근대적 형식과 미학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근대화의 그늘과 단편 미학의 완성 이태준 작품 세계의 중심에는 급격한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밀려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달밤」(1933), 「복덕방」(1937), 「돌다리」(1943) 등에서 그는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전근대적 인물들을 비웃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끝까지 바라본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과 서정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그의 단편들은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기며 한국 단편소설 미학의 한 전형을 확고히 세웠다. 나아가 『문장강화』(1946)를 통해 문장 작법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후배 문인과 독자의 글쓰기 의식에도 깊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 pp.106-107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열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고, 그와는 아무리 오래 지껄이어도 힘이 들지 않고, 또 아무리 오래 지껄이고 나도 웃음밖에는 남는 것이 없어 기분이 거뜬해지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중만 아니면 한참씩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어떤 날은 서로 말이 막히기도 했다. 대답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막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나보다 빠르게 이야깃거리를 잘 찾아냈다. 오뉴월인데도 ‘꿩고기를 잘 먹느냐?’고도 묻고, ‘양복은 저고리를 먼저 입느냐 바지를 먼저 입느냐?’고도 묻고 ‘소와 말과 싸움을 붙이면 어느 것이 이기겠느냐?’는 둥, 아무튼 그가 얘깃거리를 취재하는 방면은 기상천외로 여간 범위가 넓지 않은 데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나는 ‘평생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그까짓 것쯤 얼른 대답하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하면서 평생소원은 자기도 원배달이 한번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남이 혼자 배달하기 힘들어서 한 이십 부 떼어 주는 것을 배달하고, 월급이라고 원배달에게서 한 삼 원 받는 터이라 월급을 이십여 원을 받고, 신문사 옷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는 원배달이 제일 부럽노라 하였다. 그리고 방울만 차면 자기도 뛰어다니며 빨리 돌 뿐 아니라 그 은행소에 다니는 집 개도 조금도 무서울 것이 없겠노라 하였다. --- pp.119-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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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