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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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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서 비롯된 허망한 희망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1935)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농촌 사회의 극심한 빈곤을 배경으로, 가난한 농민이 품게 된 욕망이 어떤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영식은 원래 성실하게 콩밭을 일구며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인물이다. 하루하루 힘겹지만, 그는 땀 흘려 농사짓는 삶이 자신의 몫이라고 받아들이며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수재가 던진 한마디, “콩밭에 금이 묻혀 있다”는 말은 영식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이 말은 사실 아무 근거도 없는 소문에 불과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영식의 절박한 마음과 맞물리며 점점 커다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결국 영식은 농사보다 금을 택하고, 현실보다는 허황된 환상에 매달리게 된다. 욕망을 부추기는 주변 인물들 이러한 변화는 영식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아내 역시 끝없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사로잡혀 남편을 부추긴다. 그녀에게 금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고된 삶을 단숨에 바꿔 줄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작품은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가난한 농촌 사회 전체가 공유한 집단적 심리를 드러낸다. 한편 수재는 이러한 절박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광산 이야기를 늘어놓고 줄맥을 장담하며 영식의 기대를 키워 가고, 끝내 결말에 이르러서는 불그죽죽한 황토를 ‘금줄’이라 속여 거짓 희망을 던져 줄 뿐, 책임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그 속에는 생존을 둘러싼 냉혹한 이해관계와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 pp.62-63 아내는 콩밭에서 금이 날 줄은 아주 꿈밖이었다. 놀라고도 또 기뻤다. 올해는 노냥 침만 삼키던 그놈 코다리(명태)를 짜장 먹어보겠구나, 만 하여도 속이 메질 듯이 짜릿하였다. 뒷집 양근댁은 금점 덕택에 남편이 사다준 흰 고무신을 신고 나릿나릿 걷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저도 얼른 금이나 펑펑 쏟아지면 흰 고무신도 신고 얼굴에 분도 바르고 하리라. “그렇게 해보지 뭐. 저 양반 하잔 대로만 하면 어련히 잘될라구.” 얼뚤하여 앉았는 남편을 이렇게 추겼던 것이다. 동이 트기 무섭게 콩밭으로 모였다. 수재는 진언이나 하는 듯 이리대고 중얼거리고 저리대고 중얼거리고 하였다. 그리고 덤벙거리며 이리 왔다가 저리 왔다가 하였다. 제 딴은 땅속에 누운 줄맥을 어림하여 보는 맥이었다. 한참을 밭을 헤매다가 산 쪽으로 붙은 한구석에 딱 서며 손가락을 펴들고 설명한다. 큰 줄이란 본시 산운 산을 끼고 도는 법이다. 이 줄이 노다지임에는 필시 이켠으로 버듬히 누웠으리라. 그러니 여기서부터 파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영식이는 그 말이 무슨 소린지 새기지는 못했다. 마는 금점에는 난다는 수재이니 그 말대로 하기만 하면 영낙없이 금퇴야 나겠지 하고 그것만 꼭 믿었다. 군말 없이 지시해 받은 곳에다 삽을 폭 꽂고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 pp.75-76 선생님 맞아.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건, 사람을 진짜 무너뜨리는 건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헛된 욕망이란 거야. 영식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모든 걸 걸었지만, 결국 그 욕망이 자신이 가진 마지막 삶의 기반까지 파괴해 버렸지. 지현 영식이가 너무 불쌍해요…. 선생님 거짓 희망에 다시 매달리는 아이러니한 결말이지. 독자는 수재의 말이 거짓임을 눈치채지만, 영식 부부는 다시 환상에 빠져든다는 점에서 더 씁쓸해져. 나의 ‘콩밭’은 어디에 있는가? 수지 그렇다면 이 작품이 주는 핵심 메시지는 뭘까요? 선생님 이 작품은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김유정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통해 그 비극을 드러내는 소설이야. 독자에게 뚜렷한 교훈을 직접 설교하려 하기보다는, 일제 강점기 농촌의 가난하고 절박한 현실을 보여 주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허황된 욕망에 휩쓸리는지를 드러내지. 그래서 작가는 직접 판단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허황된 욕망과 농촌 현실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 pp.93-94 미쓰꼬시 옥상, 근대성의 현기증과 금붕어의 비애 화자가 밀실을 벗어나 도달한 곳은 경성 근대 문명의 중심지인 미쓰꼬시 옥상이다. 백화점은 식민지 경성에서 가장 화려한 소비 공간이며, 그 옥상은 도시 근대성의 상징적 정점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정점은 동시에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곳에 섰다는 감각은 곧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자각으로 바뀐다. 이곳은 어둠의 밀실과 대비되는 탁 트인 개방적 공간으로, 화자가 자신의 스물여섯 해 피곤한 인생을 차분하게 회고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장소로 작용한다. 이때 등장하는 ‘금붕어’는 이러한 공간적 의미를 화자의 내면으로 옮긴다. 금붕어는 아름답지만 어항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살아가며,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이는 근대 도시 속 화자의 자화상과 겹쳐진다. 그는 예민한 자의식과 관념을 지녔으나 이를 현실에서 실천할 힘은 부족한 채 맴돈다. 화려한 문명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끝내 주변인으로 남는 존재, 자유를 꿈꾸면서도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화자다. 결국 옥상이 근대성의 외적 정점이라면, 금붕어는 그 내부에 갇힌 주체의 초상이며, 이러한 모순과 피로한 현실을 자각한 화자는 마침내 무기력한 삶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내적 각성에 이르게 된다. 돋아라 날개여, 절망 끝에서 외치는 실존의 의지 결말의 정오 사이렌과 함께 찾아오는 가려움은 상실했던 ‘날개’가 다시 돋아나려는 징후처럼 느껴진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라는 외침은 현실로부터 달아나려는 도피가 아니라, 박제된 삶을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하려는 절박한 선언이다. 설령 그 비상이 추락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날고자 하는 의지를 품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완전히 죽은 존재가 아니다. 「날개」는 병적인 독백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훼손된 인간성의 회복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절망의 기록인 동시에, 절망 속에서 끝내 살아 있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의지를 드러내는 역설적 희망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 pp.198-199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가구에 각기 별러 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 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 p.205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 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두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써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 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잠 잤다. 잘-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돌아왔다 또 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삼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 밤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오 원을 아내 손에 쥐여 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 pp.224-225 선생님 하하, 태우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인 거야. 1936년에 발표된 이상의 「날개」는 기존의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그래. 이 작품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난해하면서도 파격적인 모더니즘 소설로 손꼽히거든. 네가 질문한 ‘박제된 천재’라는 표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란다. ‘박제’가 뭐지? 겉모습은 살아있는 것 같지만 속은 텅 비어 있고 생명력이 없는 상태잖아?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무기력해진 자아와 지식인의 자기 풍자를 압축한 표현으로 볼 수 있어. 수지 주인공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만 박혀 있잖아요. 아내가 돈을 줘도 쓰지도 않고 모아두기만 하고요. 바보 같기도 하고 좀 답답했어요. --- pp.243-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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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