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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에세이 · 허연 |
李箱, 김해경金海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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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마음에 들었다. 방 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 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p.15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보다도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p.22~23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버리고 싶었다. ---p.32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 ---p.50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곰씩 조곰씩 죽이려 든 것일까? ---p.62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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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새롭게 읽는 가장 위픽다운 방식, 위픽 클래식
단 한 편의 단편소설로 오늘의 한국문학을 조명하며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안해온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이 이번에는 고전 문학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위픽 클래식’은 ‘독자가 고른 불멸의 고전’을 슬로건으로, 문학사적 권위가 아닌 오늘의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품을 현대적인 번역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소장형 시리즈다. 1차로 동시 출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이상의 『날개』는 위픽 클래식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형식을 보여주는 파일럿 성격을 띤다. 고전은 늘 읽고 싶지만, 막상 펼치기에는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다. 낡은 번역과 전집 중심의 구성은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위픽 시리즈는 그동안 ‘단 한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실험을 통해 짧지만 밀도 높은 독서 경험을 제안해왔다. 위픽 클래식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이어받아, 기존의 전집이나 선집 중심에서 벗어나 한 편의 고전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독자는 부담 없이 작품을 완독하면서도 고전이 지닌 깊이와 여운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각 권에는 작품을 사랑해온 작가들의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었다. 『인간 실격』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을 만큼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온 요조 작가가, 『첫사랑』에는 러시아 문학 번역가이자 시인 겸 소설가인 이장욱 작가가, 『날개』는 영원한 청춘들의 시인 허연 작가가 참여해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애정을 담아냈다. 작품을 오랫동안 사랑해온 이들의 진솔한 글은 고전을 새롭게 읽는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 남은 단 한 편의 고전은 무엇인가요? 위픽 클래식은 고전을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전이 지금의 독자에게 새롭게 읽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독자의 감각에 맞춘 번역, 소장 가치를 높인 디자인과 편집을 통해 고전 독서의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안한다. 이번에 출간된 『인간 실격』 『첫사랑』 『날개』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꾸준히 사랑받아온 대표적인 고전들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불안과 고독, 자기 고백의 극한을 보여주는 일본 문학의 정수 『인간 실격』,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의 설렘과 상실, 그리고 성장의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낸 러시아 문학의 걸작 『첫사랑』, 불안과 욕망, 자아의 분열을 독보적인 상상력과 실험적인 문체로 담아낸 한국 근대 문학의 문제작 『날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과 감동을 전한다. 위픽 클래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 참여형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첫 세 권을 시작으로 독자 설문을 통해 다음 작품들을 선정함으로써 시리즈 전체를 독자와 함께 완성한다. 특히 작품명과 저자명을 가린 채 문장만으로 작품을 선택하도록 설계해 독자들이 선입견 없이 작품 자체의 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의 선택은 곧 위픽 클래식의 다음 목록이 되며, 과정과 결과 역시 공개해 시리즈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일 계획이다. 고전은 오래되었지만, 읽는 방식은 새로워질 수 있다. 위픽 클래식은 고전을 읽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며, 오늘의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클래식의 목록을 만들어갈 것이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 시대를 뒤흔든 전위적 모더니스트, 천재이자 광인, 이상이 그리워했던 인공의 날개 1930년 근대 한국의 정체된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7년간 문제작을 쏟아내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천재이자 광인’ 이상.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7쪽)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70쪽) 『날개』는 근대 이후 한국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가진 단편소설이다. 1936년 월간지 『조광(朝光)』 9월호에 실린 이 소설은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쏟아내며 “미친놈의 헛소리”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이상을 불멸의 모더니스트로 뒤바꾸었다. 주인공 ‘나’는 33번지 낡은 집의 볕도 들지 않는 윗방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23쪽) 종일 잠을 자거나 아내의 소지품으로 불장난을 하며 시간을 축낸다. 가운데 장지를 중심으로 볕이 드는 아랫방은 아내의 몫이다. ‘나’는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26쪽)를 궁금해하며 자신의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아내와 내객의 대화를 엿듣는다. 어느 날 ‘나’는 아내의 밤 외출을 틈타 밖으로 나온다. 5원을 가지고 거리를 헤매지만 갈 곳도, 할 것도 없고 돈을 쓰는 법도 모른다. 피곤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그 돈을 쥐여주고 처음으로 아내 방에서 잠을 잔다. 외출한 뒤에 돌아와 아내 방에서 자는 것,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이 기쁨을 깨달아버린 ‘나’는 돈이 없음을 한탄하게 된다. 하루는 외출했다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린 ‘나’에게 아내는 아스피린을 준다. 한 달 동안 약과 잠에 취해 살던 나는 아내의 화장대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날개』는 이상의 경험을 투영한 자전소설이자 한국문학에 처음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한 심리소설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아내의 이름인 ‘연심’은 그의 첫 번째 연인이었던 기생 금홍의 본명이며, 소설 속 ‘나’의 거처인 33번지는 이상이 금홍과 함께 운영했던 다방 ‘제비’의 주소지 종로1가 33번지를 암시한다. 두 사람은 다방 ‘제비’가 문을 닫을 무렵 헤어졌고, 이상은 폐결핵을 앓으며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연명하는 자신의 모습을 소설 속 ‘나’와 아내로 되살려냈다. 어엿한 사회인의 자격으로 돈을 벌지도, 그렇다고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해부하는 ‘나’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가장 가혹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적 있는 독자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거울을 보듯 자기 자신을 뜯어보는 냉소적인 문장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읽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