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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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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갈등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시기심과 의처증에서 비롯된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순박한 인물이지만, ‘그’는 아내의 다정한 성미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사소한 일에도 질투를 보이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저지르게 된다. 장에서 돌아온 ‘그’는 옷차림이 흐트러진 채 함께 있는 아내와 아우를 목격한다. ‘그’는 이를 불륜으로 단정하고, 그 오해는 잔인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겹겹이 쌓여 온 질투와 의처증에 방 안에서 쥐가 튀어나오는 사소한 우연이 맞물리면서, 한 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사소한 계기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확장되는 전개는, 인간이 자율적인 주체라기보다는 거대한 운명의 흐름 속에서 쉽게 무너지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 pp.25-26 그의 아내는 해가 져서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내어쫓기는 하였지만 그는 아내의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워져서도 그는 불도 안 켜고 성이 나서 우들우들 떨면서 아내의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참 기쁜 듯이 웃는 소리가 그의 아우의 집에서 밤새도록 울리었다. 그는 움쩍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밤을 새운 뒤에, 새벽 동터 올 때 아내와 아우를 죽이려고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의 아내로서 만약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 문밖에 우두커니 서서 문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아내와 아우를 죽이고야 말았으리라. 그는 아내를 보는 순간 마음에 가득 차는 사랑을 깨달으면서, 칼을 내던지고 뛰어나가서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년 하면서 들어와서 뺨을 물어뜯으면서 함께 이리저리 자빠져서 뒹굴었다. 그런 이야기를 다 하려면 끝이 없으되 다만 ‘그’ ‘그의 아내’ ‘그의 아우’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대략 이와 같았다. 각설- 거울은 마침 장에 마음에 맞는 것이 있었다. 지금 것과 대보면 어떤 때는 코도 크게 보이고 입이 작게도 보이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리고 그런 촌에서는 둘도 없는 귀물이었다. 거울을 사가지고 장을 본 뒤에 그는 이 거울을 아내에게 주면 그 기뻐할 모양을 생각하며, 새빨간 저녁 햇빛을 받는 넘치는 듯한 바다를 안고, 자기 집으로, 늘 들러 오던 탁주집에도 안 들러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그의 집 방 안에 들어설 때에는 뜻도 안 하였던 광경이 그의 눈에 벌이어 있었다. 방 가운데는 떡 상이 있고,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어져서 목 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가지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고, 아내도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 늘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우는 그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움쩍도 안 하고 서 있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어이가 없어서 서 있었다. 그러나 좀 있다가 마침내 그의 아우가 겨우 말했다. “그놈의 쥐 어디 갔니?” “흥! 쥐? 훌륭한 쥐 잡댔구나!” 그는 말을 끝내지도 않고 짐을 벗어던지고 뛰어가서 아우의 멱살을 그러잡았다. “형님! 정말 쥐가….” “쥐? 이놈! 형수하고 그런 쥐 잡는 놈이 어디 있니?” 그는 아우를 따귀를 몇 대 때린 뒤에 등을 밀어서 문밖에 내어던졌다. 그런 뒤에 이제 자기에게 이를 매를 생각하고 우들우들 떨면서 아랫목에 서 있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 pp.45-46 그도 이것을 잠자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불행의 모든 죄는 죄 그에게 있었다. 그도 마침내 뱃사람이 되어, 적으나마 아내를 삼킨 바다와 늘 접근하며 가는 곳마다 아우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어떤 배를 얻어 타고 물길을 나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우의 이름과 모습을 말하여 물었으나, 아우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꿈결같이 십 년을 지내서 구 년 전 가을, 탁탁히 낀 안개를 꿰며 연안바다를 지나가던 그의 배는, 몹시 부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파선을 하여, 벗 몇 사람은 죽고, 그는 정신을 잃고 물 위에 떠돌고 있었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때는 밤이었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는 뭍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를 말리느라고 새빨갛게 피워 놓은 불빛으로 자기를 간호하는 아우를 보았다. 그는 이상히도 놀라지도 않고 천연하게 물었다. “너, 어딯게 여기 완?” 아우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따뜻한 불기운에 깜빡 잠이 들려다가 그는 화닥닥 깨면서 또 말했다. “십 년 동안에 되게 파랬구나.” “형님, 나두 변했거니와 형님두 몹시 늙으셨쉐다.” 이 말을 꿈결같이 들으면서 그는 또 혼혼히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두어 시간, 꿀보다도 단 잠을 잔 뒤에 깨어 보니, 아까같이 새빨간 불은 피어 있지만 아우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곁엣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아우는 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새빨간 불빛을 등으로 받으면서 터벅터벅 아무 말 없이 어둠 가운데로 스러졌다 한다. --- pp.50-51 수지 선생님, 「배따라기」를 읽을 때요…, 단순히 거창한 이유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 얽혀 있는 것 같았어요. 오래전 작품이라 그런지 분위기 같은 것들이 조금 어렵게 느껴져요. 선생님 「배따라기」가 나온 1920년대는 한국 근대 소설의 미학적 기틀이 막 잡혀가던 시기였어. 작가 김동인은 문학이 사회를 계몽하거나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문학 자체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지. 태우 그래서 작품 속 ‘그’가 바다를 떠돌고 뱃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어떤 교훈을 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질투와 오해가 낳은 비극 이후 죄책감과 운명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네요? 선생님 그렇지.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자기감정에 휘둘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만들고, 그 뒤 죄책감과 체념 속에서 유랑하는 모습을 관찰하듯 보여 줘. --- pp.55-56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제목인 ‘감자’라는 상징을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감자는 복녀의 빈곤한 삶과 생존의 현실을 드러내는 소박한 소재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타락과 파멸을 둘러싼 비참한 현실을 환기하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채마밭에서 감자와 배추를 훔치며 살아가는 빈민굴의 삶과, 어느 날 고구마 한 바구니를 훔치다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인간의 자존과 존엄이 가난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김동인은 이처럼 소박한 일상 소재를 활용해 구조적 빈곤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서서히 잠식하고 결국 파괴하는지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그 결과 ‘감자’는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빈곤과 타락의 현실을 응축해 보여 주는 상징이 된다. --- p.66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질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 서방이었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 왕 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믄 가디. 훤, 것두 못 갈까.” 복녀는 엉덩이를 한번 홱 두른 뒤에, 머리를 젖기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 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야?” 복녀는 홱 돌아서 보았다. 거기는 자기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 형님두 들어갔댔쉐까?” “님자두 들어갔댔나?” “형님은 뉘 집에?” “나? 눅(陸) 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 서방네…. 형님 얼마 받았소?” “눅 서방네 그 깍쟁이 놈, 배추 세 페기….” “난 삼원 받았디.”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 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 원을 내어놓은 뒤에, 아까 그 왕 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 pp.77-78 수지 선생님, 「감자」를 읽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복녀가 한 선택들만 보면 잘못도 분명히 있는데, 읽다 보니 자꾸 저 상황이면 나라도 버텨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사실 「감자」는 ‘복녀가 왜 타락했는가’를 따지는 작품이 아니라, 가난한 환경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변해 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이야. 작가는 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하거나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는 대신, ‘가난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태우 권선징악 같은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요소는 전혀 없이, 복녀의 몰락만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맞아. 김동인은 도덕적 설교나 계몽을 의도적으로 피한 작가야.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지. 이게 바로 「감자」가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로 불리는 이유야. --- pp.83-84 마을에서 ‘삵’이라 불리는 정익호는 도박과 싸움을 일삼으며 동족에게조차 멸시받던 인물이다. 그는 공동체의 윤리적 기준에서 벗어난 ‘거머리’ 같은 존재로 취급받지만,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침묵을 깨뜨리는 유일한 인물이 된다. 삵의 돌발적인 행동은 단순한 영웅주의가 아니다. 동족의 비참한 죽음을 접하며 그간 억눌려 왔던 그의 내면에서 민족적 동질성과 저항 의식이 폭발한 것이다. 가장 천대받던 존재가 민족 전체의 울분을 대신 짊어지고 지주에게 맞서는 모습은, 민족의식이 지식인이나 지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의 민중들에게도 흐르고 있는 뜨거운 본능임을 시사한다. --- pp.129-130 선생님 그건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 자체가 숨 막히는 시대였기 때문이야. 「붉은 산」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기는 조선 민중의 삶이 근본부터 무너진 때였어.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이래 일제가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농민들의 땅을 대거 빼앗았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삶의 근원인 토지를 잃고 유랑하거나 살길을 찾아 중국 등 타국으로 떠나야 했지. 지현 토지조사사업이 뭐예요? 선생님 토지조사사업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토지 소유관계를 다시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한 정책이야. 겉으로는 누가 어떤 땅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시작했지만, 실제 목적은 조선인의 땅을 일본 국가와 일본인에게 넘기기 위한 것이었지. 당시 많은 조선 농민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소유권을 근대적인 법 문서로 남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 일제는 이를 문제 삼아, 공식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농민들의 소유권이나 경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지.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 땅들은 일본인이나 일본 회사의 소유로 넘어갔고, 원래 주인이던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소작농이나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어. 그래서 토지조사사업은 단순한 조사 정책이 아니라, 조선 농민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 정책이었지. --- pp.144-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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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