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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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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문학동네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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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여름방학 수련, 물위의 방 망각의 걸상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라 밤의 희고 푸른 얼굴 시간은 흔적을 남길까요? 해설 백지연 감각의 여행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전부를 줄게. 전부를. 너도 나에게 전부를 다오. 요즘 내 몸에서 늘 그런 소리가 울린다. 창가에 서서 이르게 물든 아카시아 잎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숲을 바라볼 때도, 흐르는 계곡물에 시선을 떨구고 있을 때도, 달력을 넘길 때도, 전화벨이 울릴 때도, 시계를 볼 때도,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는 짧은 순간에도, 이제 막 꽃을 피운 화분을 볼 때도, 혼자 먹을 밥을 준비할 때도, 잠이 들어갈 때도…… 전부는 소통의 욕망일까…… 이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고독해지고 원천적으로 소통이 봉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담담해진다. 전부를 줄게. 전부를…… 그건 내가 나를 향해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같다. 나는 나는 갈망한다. 언젠가 청소년을 상담하는 카운슬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청소년이 내상이든 외상이든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충고하느냐고 물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애가 겪은 일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안심시키는 일이에요. 문제를 보편화시킨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건, 너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죠.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을 짚고 일어서니까요. 그래서 전 나쁜 일도, 상처도, 원하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과 마찬가지로 모두 지나가게 될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애들은 사실 몇 번이고 재생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그 말에 무척 동의했었다. 그러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라…… 얼마 뒤에 나는 이 문장 하나를 표상으로 삼고 오래 전부터 써보고 싶었지만 눈길을 끌기 는 어려울 밋밋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끝을 고칠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지만 그대로 두었다.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간 고단한 성장에 그만한 값어치가 왜 없겠는가.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경험을 할 때는 셀룰로이드 종이에 든 조그마한 그것을 반드시 사용하라는 메시지라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스무 살 시절의 그 어떤 무거운 주제의식 보다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며 심지어 운명에 간여할 수도 있으니까. 그 외에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왜 사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내던져졌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변경할 수 없는 인과를 살고 있다. 그리고 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 달 없는 날 자정에 부엌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훗날 만나게 될 운명적인 얼굴 하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돌아보면 스무 살 때란, 달 없는 날의 자정이 아닐까. 부엌칼을 물고 거울을 보든 보지 않든 그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검은 유리창 같이 닫힌 그 나이에 열렬하게 존재를 밀어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운명적인 얼굴 하나를 언뜻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얼굴이다. 나는 스무 살에 지금의 나를 보았었다. 불행하면서도, 주변까지 불행하게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는 고집은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불안하고 연약하다고 하고, 조금 아는 사람은 나를 강하고 용감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나를 어처구니없도록 연약하고 이해할 수 없도록 강하다고 한다. 모두 사실일 것이다. 오랫동안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했었다. 이젠 삶에 대해 좀 덤덤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서 잠시 머무는 것들…… 그것에 다정해지고 싶다. 민감하기보다는 사려 깊게, 특별한 것보다는 편안하게…… 그래서 내면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과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된 힘을 갖고 싶다. 우기 내내 별 욕심 없이 소설의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글쓰기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나를 지키느라 삶과 너무 다투면서 글을 써온 것 같다. 모두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젠 무엇보다 바로 이 삶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나의 두 팔을 힘껏 뻗어. 2002년 가을 전경린

저자 소개 1

全鏡潾, 본명:안애금

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 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1993년 작가의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내면적 세계와 질서화 되고 체제
흔히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서른 세 살. 아이와 피와 심지어 죽음조차 삶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느낀 작가는 허구가 아닌 삶의 실체를 갖고자 소설을 쓰기로 시작했다.

1993년 작가의 가족은 마산 옆 진양의 외딴 시골로 이사를 갔다. 꽤나 적적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전경린은 `뭔가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3년 가까이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들어앉아 많은 글을 써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내면적 세계와 질서화 되고 체제화 된 바깥 세계 사이의 작용과 긴장과 요구 속에서 갈등하는 여성과 여성적인 삶이 문학적 관심사다.

작가의 본명은 안애금.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다. 당시 누가 `린'이라는 화두를 주었고, 차례대로 `경'과 `전'을 추가해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완성시켰다. 작가도 물론 `전혜린'을 떠올렸다. 작가는 전혜린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혜린뿐 아니라 나혜석, 윤심덕 더 올라가서 황진이까지 소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고통 받고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선각자적 여성을 좋아하고 흠모한다.

196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 그 후 운동권이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 둘째를 낳은 후인 19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갔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하였으며 1997년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 한국일보 문학상, 1997년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 소설상, 1998년 단편소설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 문학상, 2004년 단편소설 「여름휴가」로 대한민국소설문학상 대상, 2007년 단편소설「천사는 여기 머문다」로 제3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엄마의 집』과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붉은 리본』, 『나비』 등이 있다.

전경린의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2002년 변영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가정의 틀안에서 안주하던 한 여성이 내면에 지닌 혼란스런 욕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섬세한 문체와 절제된 기법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 『엄마의 집』에서는 처녀의식을 가진 엄마들에게 “미스 엔”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종속당하지 않는 미스 엔이 그녀의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답게, 현실의 엄마가 놓인 지형을 넘어서는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집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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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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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8.72MB ?
ISBN13
9788954629690

책 속으로

서른 살이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서른 살이 되면 스무 살 때의 일은, 어린 시절 집밖에서의 놀이 같은 것이 된다.

"스무 살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말아라. 스무 살은 스무 살일 뿐이야. 삶으로 꿀고 가지는 마."

그것은 좋은 충고였다. 하지만 그때는 충고를 받아들이는 나이가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느 자리에 박은 표석이나 어느 공중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단단한 목표나 구체적인 꿈이 아니라, 몇 개의 단어와 단어들이 거느린 흐릿한 이미지들, 단어들 사이의 그리움인 것 같다.

--- pp.204~205

"넌 뭐가 되고 싶니?"

그녀는 거리의 좌판에서 도금목걸이를 고를 때처럼 가볍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언제나 나를 난처하게 했다.

"모르겠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다만 그곳으로 조금씩 나를 밀면서 가고 있는 기분······· 잘못 갈지도 모르고 못 만날지도 모르지······· 정말 그리울 뿐, 무엇인지 모르겠어.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다만 사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살아야 할까? 사는 것에 얽매여서? 삶에 빚지지 않고서야 그런 것이 가능할까?"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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