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염소의 목에 방울을 달았는가 시베리아에서 곰 잡던 시절 당부 말씀 군대 라면 세비리의 이발사 딸기 형제들 속도광 길 다 알고 있는 일 가짜 소리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구를 믿을 것이냐 말을 말하는 말 말과 말귀 다 고마운 일이건만 미안하다고 했다 샥족 발견 가지 호기심족 훈수족 찬양 사업 디자이너 경운기 주정차 금지 위반 어제의 용사들 우리 동네 가수 우리 동네 전문가 소신을 지키다 도선생네 개 약방 할매 작가 후기
|
成碩濟
성석제의 다른 상품
|
조선 남자들은 군대와 축구 이야기를 양로원에 가서도 하고 조선의 여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면 양로원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에서 라면 먹은 이야기는 어떨까? 그것도 여자 덕분에 먹은 라면이라면.
1982년에 이 몸이 군대를 갔더니 일요일 아침으로는 라면을 주었다. 그 라면은 연대급의 병력이 한꺼번에 먹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인지 삶아서 주는 것이 아니고 쪄서 주는 것이었다. 삶은 라면과 달리 찐 라면은 형태가 네모진 그대로 남아 있고 면도 딱딱해서 거의 뜯어먹다시피 해야 했다. 찐 라면에 날계란 하나, 단무지를 식판에 얹어주고 철모만한 국자로 미지근한 수프 국물을 떠서 부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기간병(훈련소에서 작대기 계급장을 달고 장군처럼 행동하는 위대한 군인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국가의 기간基幹이 된다는 뜻인지 일정한 기간期間 동안만 그렇게 행동하도록 허용되었다는 뜻인지 확인해보지는 않았다.)들은 그 라면을 벌레나 돌처럼 여기는지 날계란의 앞뒤만 깨어 쪽 빨아먹은 뒤 식판째 잔반통에 부어버리는 것이었다. 잔반통에는 임자 잃은 나룻배 같은 라면이 수프의 파도 위에 둥둥 떠다니는데, 영민한 훈련병들은 그 라면을 잽싸게 건져서 두 개도 먹고 세 개도 먹었다. 이 몸은 영민하지도 못하고 잽싸지도 못했던 관계로 늘 뒷전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라면 하나로는 한창때의 식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훈련이 없는 일요일이지만 라면 하나로 견디기에는 오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자빠져서 잠을 자는 건 죽음을 청하는 짓이었다. --- 본문 중에서 |
|
"그럼 우리 실험을 해보자."
술자리의 토론중에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얘기를 듣던 내 친구가 제안했다. 자기 집에 개가 있는데, 그 개를 자기 앞까지 잡아오면 자기 친구가 맞는 것이고 못 잡아와도 자기 친구가 맞는 것이라고 했다. 하긴 우린 둘 다 그의 친구니까,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았다. "누가 갈 거야?" "그거야 당연히 너지." 두 사람이 일제히 내게 말했다. 하나는 개장수이니 가나마나고 하나는 주인이니 보나 마나라는 것이다. "난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정말이야. 그냥 여러분이 맞는 걸로 하면 안 될까?" "안 되지." 두 사람은 갑자기 냉정, 침착해져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나서 한 사람은 개의 종류, 나이, 성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한 사람은 개를 기로 제압하는 방법, 잡는 방법, 끌고 나오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친구 집에 닿았다. 두 사람은 대문 뒤에 숨어서 기다렸고 나는 배운 대로 개집 앞으로 다가갔다. 큼직한 셰퍼드 잡종이 나를 쳐다보더니 컹컹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나는 미쳤다'고 주문을 위우며 개 앞으로 다가섰다. 개는 줄을 끊을 듯 펄쩍펄쩍 뛰며 미친 듯 짖어냈다. --- 본문 중에서 |
|
"엄마, 약방 할매는 올해 몇 살이야?"
그러면 어머니는 눈을 조금 찡긋하면서 "나이가 한정도 없이 많지. 약방 할매가 여우였으면 벌써 꼬리가 아홉 개 생기고 처녀로 도섭을 했어도 여러 번 했을 게다"하고는 우리가 따라오지 못하게 겁을 주었다. 나는 집안에 하나뿐인 사내로서 "여우가 뭐가 무서워, 진짜 무서운 건 원자폭판이란 말이야"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종내 약방 할머니에게 마실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 |
|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현대소설에 해학과 풍자의 자리를 새롭게 구축해나가는 소설가 성석제의 신작소설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출간되었다. "서사(敍事)충동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 독자들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한창 물이 오른 필력과 화술" "한국문학의 끊어진 전통인 해학을 되살렸다" "한국인의 고난과 한, 비애를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엮어낸 성취"라는 심사위원들의 상찬을 받으며 지난해 제3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또 아주 오랜만에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 장편(掌篇)소설집이다. 소소한 일상을 뒤집는 재치와 유머로 읽는 이를 유쾌한 웃음바다로 빠져들게 하는 성석제식 '세상 읽기'가 또한번 진가를 발휘하는 이번 작품집에는 22개의 짤막한 폭소와 진하고 긴 감동과 여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쩍하는 생활의 발견, 사람과 세상을 품은 짧은 이야기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사소한 사건과 사람들도 소설가 성석제의 눈에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언제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혼자서 궁금해하면서 우두망찰하는가"라는 작가의 의문처럼 그는 언제나 주변의 것들을 의심하고 파헤치려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작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의식을 치고 지나가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뛰어난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져 그의 소설로 다시 태어난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역시 다양한 사건과 엉뚱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불법사냥꾼, 시골 동네 이장들, 라면 한 그릇에 감동하는 어린 군인, 자기 일은 뒷전인 채 남일에 훈수 두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너무도 우아하고 세련된 신종 새치기 샥족, <어버이 은혜>밖에 부를 줄 모르는 더없이 진지한 음치, 호의에 익숙지 않은 정 많은 조폭, 고집을 소신으로 아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 그리고 누구나 언제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까지...... 하지만 그들이 일으키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은 사실 어디서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친숙한 것들이다. 때로는 기분 나쁘게, 때로는 마음 아프게, 때로는 아주 즐겁게...... 낯설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남은 이 일련의 상황들이 작가 성석제에 의하여 재현될 때, 읽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혀 새로운 신선한 감동에 젖고 만다. 그것은 바로 한바탕의 폭소이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유쾌한 긍정이다. 시인 이문재의 지적처럼 "그의 웃음폭탄 세례를 받을 때마다 나와 너, 이웃과 세상이 전혀 새롭게 보"이며,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관계 맺게 하는 성석제식 '세상 읽기'이며 성석제 소설의 힘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