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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공부하는 방법 --------------------------------- 5page
제 1과 [하나님이 만든 세상] 서로 사랑하는 나라 ---------- 7page 제 2과 [죄의 본질] 내 인생인데 어때 -------------------- 17page 제 3과 [십자가] 스스로 내린 사형 선고 ------------------ 27page 제 4과 [그리스도의 부활] 다시 에덴처럼 ---------------- 39page 제 5과 [예수의 다시 오심] 부끄럼 없는 그날 ------------ 51page 제 6과 [교회] 세상에 없던 공동체 ---------------------- 63 page 제 7과 [예배] 거래가 아닌 사랑으로 -------------------- 75page 제 8과 [성도의 교제] 공동체로 태어난 사람들 ------------ 85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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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배경 - 창세기는 모세를 통해 히브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들은 이집트에 발생했던 열 가지 재앙으로부터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고, 추격해 오던 이집트 군대가 갈라진 홍해 속에서 전멸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창세기 말씀을 듣는 그날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 p.8 히브리 단어 ‘데무트’는 ‘모양’이라는 뜻도 있지만 ‘닮았다’는 뜻도 있다. 그럼 아담은 하나님의 무엇을 닮은 것일까? 아담은 바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왜 죄를 짓도록 아담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느냐고도 묻지만, 그것은 사랑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아담은 전원만 들어 오면 노래하는 로봇이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거나 강요 때문에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는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위험도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아담을 당신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아담과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치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산모가 아기용품을 준비하듯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만들면서 그토록 기뻐하셨던 것이다. --- p.11 신앙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랑과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은 안식일을 생각할 때 계명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기능적인 면만 신경 썼을 뿐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생각하지 않았다. --- p.24 신앙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랑과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은 안식일을 생각할 때 계명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기능적인 면만 신경 썼을 뿐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생각하지 않았다. --- p.32 예수님이 십자가의 이슬로만 사라졌다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사단은 우리의 죗값이 치러지지 않았고, 예수도 다른 사람처럼 자기 죄로 죽었다고 억지를 부렸을 것이 분명하다. 증인도 증거도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보증해 주신다(롬 4:25). 구약 율법에 따르면 증인은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하며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보증하게 하셨다(고후 1:22). --- p.44 이단 교주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은 무당이 신내림 받듯 오시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불신자까지도 2천 년 전 예수님이 다시 오신 것을 부인할 수 없도록 확실히 알아볼 수 있게 오실 것이며, 온 세상이 알 수 있도록 거대한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 p.56 그리스도인은 신을 섬기지만 제사도 신전도 만들지 않았다. 1세기 사람들은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기독교인을 무신론자로 부르기도 했다. 성도(교회)들은 신전을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다. 재력과 지위가 있는 성도가 꽤 있었지만, 자신들이 성전이기에 굳이 따로 신전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은 주로 집에서 모였다(고전 3:16). --- p.66-67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신을 섬기지만 제사도 신전도 만들지 않았다. 1세기 사람들은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기독교인을 무신론자로 부르기도 했다. 성도(교회)들은 신전을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다. 재력과 지위가 있는 성도가 꽤 있었지만, 자신들이 성전이기에 굳이 따로 신전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은 주로 집에서 모였다(고전 3:16). --- p.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