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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006
여는 글 당신이 챔피언이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 009 1 예배의 챔피언 012 2 기쁨의 챔피언 034 3 경외의 챔피언 052 4 순종의 챔피언 068 5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챔피언 084 6 천국을 사모한 챔피언 098 7 헌신의 챔피언 120 8 축복의 챔피언 132 9 선택의 챔피언 146 10 선택의 챔피언 2 162 11 부활을 사모한 챔피언 178 12 자녀를 위한 희생의 챔피언 196 13 우리도 챔피언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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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창조의 기록은 31개 절뿐이지만 예배의 처소에 대한 기록은 243개 절이나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주를 만든 목적,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인간을 만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이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뿐만 아니라 강물이 박수치며 하나님을 예배한다(시 98:8)는 얘기도 나오지 않습니까? 우주만물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인 성막을 짓는 것에 대한 기록이 우주만물을 창조한 기록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예배를 진정으로 드릴 때에 그 사람에게 주목하시고 그에게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17p] 성도는 숱한 고난 가운데도 기도의 은혜가 있고, 말씀의 은혜가 있고, 예배의 은혜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지금 이것조차도 느끼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내 왼편에 일하시는 것 같은데 영적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아는데 이것을 깊게 느낄 수 없는 영적인 곤고함과 메마름과 갈증을 욥은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재산도 잃고, 자식도 모두 잃고, 건강마저 잃고, 아내 또한 떠나 버린 이 처절한 고난 속에서 영적인 침체까지 경험하면서도 욥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44p] 순종은 때로 불편한 것입니다.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도 순종해야 될 이유는 우리에게 이 명령을 주신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명령을 주실 때, ‘너 한번 고생해 봐라’, ‘너 한번 망해 봐라’ 이런 뜻으로 주셨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믿을 수 있다면, 그 준비된 믿음의 그릇을 통해서 너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고, 너와 너의 가문을 쓰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감춰진 명령이었어요. [80p] 어머니의 태에서 우리를 빚으신 하나님은 천국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이곳에 보내 육체 속에 집어넣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고향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육신의 집을 벗고, 이제는 영원한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끝없는 타향살이, 즉 지옥으로 들어가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105p] 수많은 사람의 조롱과 천대를 받던 기생 라합을 하나님은 믿음의 챔피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를 넣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라합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서 여호수아가 빠진 것처럼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챔피언들 중에도 여호수아가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합의 인생이 역전 드라마인 것입니다. 그 출발은 너무나 처절하고 혹독했지만 끝내 그녀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166~167p]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저 내 마음에 이는 찰나적인 기쁨이나 평안이 아니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능력입니다. 이제 그만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떨쳐 버리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십시오. 부활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있는 모든 고난을 이기고, 죽음도 이기는 믿음의 챔피언이 되기를 바랍니다. [195p] 모세가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으로 모세를 아름답게 생각하신 걸까요?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장 칼뱅은 ‘하나님이 갓 태어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좋게 여기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부모의 눈에 비친 것은 단순히 외모를 지칭하는 걸까요? 그것이 아니라 모세의 부모 또한 세상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핏덩이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장차 이 아이를 통하여 이루실 어떤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라보았기에 아이를 살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