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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동 성당 시민강좌
80년대, 군산 혁명가들의 이야기 개정판
김성훈 저
녹두서점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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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사회
1장. 오룡동 성당 청년들과 시민강좌에 대한 이해
2장. 오룡동 성당 시민강좌를 통해 바라보다

2부 문화
1장. 진나루 풍물패 이야기
2장. 호남우도 풍물 판굿과 진나루의 가락보
3장 민중미술-시민판화와 오룡동 성당 판화교실

3부 그때 그 사람들
1장. 개신교 사람들
2장. 만남의 광장 시민강좌

- 시민의 역사

맺음말

도움 주신 분들
각주

저자 소개 1

군산대학교 시절, 링크사업단 프로젝트 진행 중 5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시민들을 학살한 이후, 웃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그 군인들의 이름 자막을 넣었는데 한 고등학생한테 메일이 왔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도들의 운동인 측면도 있는데 그런 면들도 말하라는 내용이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고민했다. 지역 역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중고등학생에게 알리는 활동들은 많았지만 현대사는 그 부분에서 열외였다. 저자는 문제 의식을 느꼈고 곧바로 행동했다. 옛 시청사거리부터 직접 발로 뛰어서 이민우, 오금수와 박창신 신부에 대해 알았다. 박창신 신부가
군산대학교 시절, 링크사업단 프로젝트 진행 중 5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시민들을 학살한 이후, 웃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그 군인들의 이름 자막을 넣었는데 한 고등학생한테 메일이 왔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도들의 운동인 측면도 있는데 그런 면들도 말하라는 내용이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고민했다. 지역 역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중고등학생에게 알리는 활동들은 많았지만 현대사는 그 부분에서 열외였다. 저자는 문제 의식을 느꼈고 곧바로 행동했다. 옛 시청사거리부터 직접 발로 뛰어서 이민우, 오금수와 박창신 신부에 대해 알았다. 박창신 신부가 직접 찍은 군산 6월항쟁 사진들의 경과를 맞추고 『오룡동 성당 시민강좌』 책을 냈다.

그 이후에도 카페를 운영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시민적 덕목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고, 어떻게하면 공동선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주의, 공화적 자유주의, 식민지 민족주의 에서 보여주었던 공동체 주의 속에서 장점을 추려내 시민을 양성시켜야하고 공동선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단체적인 것이며, 단체적인 것이 가장 개인적이다.' 라고 생각하고, '개인의 윤리가 단체의 윤리가 되고, 다시 단체 윤리가 개인의 윤리와 양립할 때, 그나마 공동선을 실현시킬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역사학과를 나온 사람답게, 그리고 군산 시민답게, 군산 현대사를 정리하여 이것이 교육자료로 쓰이길 바라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20쪽 | 152*215*30mm
ISBN13
9791198337917

책 속으로

오금수 (함께 당시 6월 보도자료를 보며)광주가 없었으면, 6월도 없었어. 나는 그렇게 봐.


광주가 없었으면 한국에 강력한 민주화의 물결이 불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 당대 운동가들은 광주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의미들은 많은 운동가와 사회적 책임을 만들었다. 6월 항쟁을 불러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 점이 중요하다.
--- p.41

박창신 나는 시민강좌를 진행한 것을 녹화해요. 두 시간 정도 강의를 하고 90분 정도로 줄여요. 필요 없는 것들 사람들이 웃고 박수치는 거 그런 거 줄이면 90분 정도 하거든요? 서울 청계천에 가서 테이프를 1,000개 이상 사서 가지고 와요. 군산 같은 경우 테이프 하나에 1,000원씩 하는데 서울은 300원씩 했어요. 그걸 내가 사서 가지고 오면 90분짜리 녹화하는 대로 시에 뿌려요. 택시 기사한테도 주고, 아는 사람한테도 주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시민들의 여론이 많이 달라졌죠.


박창신 신부는 테이프를 사서 군산 시내 전역에 뿌렸다. 그뿐만 아니라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하고, 홍보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4.19혁명이나 광주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으니 군산경찰서 입장이 매우 난감했을 터이다.
--- p.59

자유언론운동-YH무역사건-부마항쟁, 그리고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친 언론인들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각 부문의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김태홍 언론자유운동은 예… 강고한 독재 체재 아래서 몇몇 양심적인 기자들이 앞서서 치고 나가는 운동을 했다고 그래서 언론이 자유가 구현되는 게 아니고,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 운동과 동일한 보조(步調)에서 언론자유가 확보가 되는 것입니다.
--- p.86

문익환 야당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가진 저 청와대 에… 그 어른…어른이라고 내가 존칭을 했네. 아… 그 어른보다 국민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겁니다. 국민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것이 야당이 만들어가는 거에요. 이… 어… 이 선거구에서도 지금 여러 가지 좀 복잡한 문제가 이번에 와보니까 좀 있군요. … 지금처럼 국민들이 깨어서 …국회의원이 국회에 가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감시를 할 수가 있고, 그리고 어 약속대로 안 할 때는 매를 들고…겁을 주고 해서 야당을 만들어가는 일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이 복수 어… 어… 정당 제도가 제도로 되기 위해서 기본적인 것이 선거죠. 선겁니다. 그 선거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어… 얻었습니다. 어… 앞으로는 지난번에 제가 부탁을 드린 것 같습니다만은 앞으로는 우리 선거할 때. 어… 우리들 사이에서 정말 양심적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 …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서 우리가 돈을 모아 주면서 입후보를 시켜서 국회로 보내야 합니다. 어… 정말 그… 이… 고생을 하는 사람만이 국회에 들어가서 고생… 이 고생하는 민중을 위한 입법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양심적인 사람이 여러분 많이… 많이들 기대하지 마세요. 한 열 사람만 있어도 이건 막강한 힘이 됩니다. 정말 양심적인 국회의원 열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이 바른 소리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무시를 못 합니다. 그 소리는 깔아뭉개지면서도 들려집니다. 그런 사람이 스무명 넘어서면 훨씬 힘이 세지요. 한 오십명만 되면 이건 아무도 못 깹니다. 여러분 선거를 통해서 정말 그… 이… 어… 우리들의 주권을 어… 바로 행사를 해야됩니다.
--- p.114

이부영 왜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에서 이와 같은 군사 정권들이 출연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아니면 방조했을까 하는 걸 좀… 본론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유럽의…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 크흠… 네덜란드 동양에서는 일본 또 미국도 필리핀이나 하와이 같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이른바 강대국들이 2차대전 전까지는 정치도… 정치적 독립을 용인하지 않고 행정까지 가서 다 주무르는 구식민주의 형태의 제국주의 지배 체제를 유지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나면서부터 강대국들이 그전에 구 식민지였던 나라들을 대하는 그 태도가 바뀌어졌었습니다. 어… 이미 아까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미국이 썼던 정책 형식적이지만 정치적 독립은 허용해 주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중심부와 계속 연결을 갖고 유지해 나아가는 그런 형태의 새로운 경제적인 어 침투 정책을 썼던 겁니다. 그것을 2차대전 이후에 나온 새로운 형태의 패권주의라고 해서 어… 신식민주의라고 요즘 부르고 있습니다.


이부영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구성과 미국의 냉전 정책에 대해 알아야 한다.
--- p.126

이광석 …그래서 술 한잔 먹고. 노조하는 친구 하나랑 나하고. 이용해. 탑차를 가지고 온 친구가 있었어. 고려제과 빵배달 하고 있던 친구. 용해가 운전을 하고. 한 누구랑… 셋인가 넷이 동방생명 쪽으로 가서 풍물을 다 끄집어내서…
그날도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어. 근데 시청 앞에 집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어.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만한 20cm 그 길(보도블럭)에서 못 내려 오는거여. 아니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와 뭔 일이 되는데.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와야 되는데. 그때 촉발한 것이 진나루였어. 진나루 풍물패였어. 거기 가서 딱 풍물을 걸쳐 메고. 그 시청 쪽으로 향해서 가려고 세 명이서 풍물을 메고서 따당! 따당! 치고. 뭐…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뭐 이거 있잖아? 저기서 백골단 녀석들 시청 쪽에 있다가. 그놈들 청바지 바람에 막 그때는 청바지 입고 하얀 헬멧. 그렇게 쫒아서 왔어. 바로 엮었지. 우리는 뭐 풍물 소리만 몇 번 났을 뿐이지.
대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 그렇게 하니까 막 아이! 왜그러냐. 주변 사람들이 막 항의 하는거야. 기억이 그때 끌려가면서도 이규대 회장님이. 어이! 나오라! 걱정하지말라고 하면서.
야 너거들 왜 그러냐고 그분도 소리치고. 모인 시민들도 소리치는거야. 그렇게 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끌려가는거지. 경찰서 들어갔는데 그날 저녁에 그 난리를 치뤘잖아.


당대 활동가들이 기록하여 넘긴 자료와, 군산 6월 항쟁 지도부 등의 말을 통해, 이광석의 구술은 사실임이 밝혀졌다.
--- p.191

Q.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왜 민중 예술(판화)을 전파하게 됐는지…?

송만규 당시 상황이야 아니면 내 개인 인터뷰를 설명해야 하는거야?

Q. 둘 다요.

송만규 판화 교실을 열기 이전에 나는 소년 시절부터 한국화를 공부해왔고. 대학에서도 한국화를 전공했고. 화가의 꿈을 가지고 해왔는데. 70년 대의 상황도 군부독재 시대에 유신 헌법이라던지? 긴급조치라던지?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가진자들의 한없는 착취. 노동자들이라던지 농민들이라던지? 그런 정치 현상 속에서. 그런 현실을 겪다가. 80년 5월이 그런 의식들을 강화시켜 준거에요, 80년 5월이?
내가 붓을 들고 한지에다가 그림을 그리기에는 스스로가 이해되지가 않는거에요. 나 스스로. 그래서 붓을 던지고 민중미술운동을 시작했죠. 판화뿐만아니라 걸개 그림이라던지 깃발 그림이라던지 이런걸 그렸고. 일반 시민사회 단체와 연대하고 결합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홍보물들을 제작하기도 하고. 시위나 정책같은 것을 같이 마련하기도 하고. 그런 본격적인 사회 활동들을 시작한거죠.
--- p.238

이재덕 기름을 불에 부어가지고. 웬걸 새 세상이 될 줄 알고 청와대까지 막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그 동상 앞까지 갔는데 군인들이 몰려오고. 와해가 됐어요. 너무나 극단적 상황으로 가버리니까.
(서울역 회군 후)아아… (안타까워하는 탄성)그리고 내가 5.18 광주가 터졌다는 얘기를 서울에서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군산에 가서 내가 군 복무를 해요. 군산 비행장 공군에서 복음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청년회 활동을 하죠.
이때 인제 한참 무슨 단체인지 모르겠는데 오충일 목사님이 집행위원장인가 뭐 상당히 크게 활동했던 시대였는데. 선교위원회 말고. 그때 무슨 단체 집행위원장이어서 강연회를 엄청 다니셨던, …하여튼 조용술 목사님하고 오충일 목사님에게 영향력을 많이 받았고.
그 당시 오룡동 성당? 거기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회를 꼭 하고. 그때 재야인사들 내놓으라 하는 박형규 목사님 문익환 목사님 한 달에 한 번씩 초청 강연회도 하고. (시민강좌)그런 활동들을 이미 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뭐 요런 6월 항쟁 이것은… 저희가 사진에서도 본 것처럼 그런 시대를 살아왔고. 그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사람들이었고. 저도 몇 번 잡혀갔는데.
그때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12시에 사이렌 울리던 그런 추억들이 있어요. 의식 있는 교회들은 사이렌을 설치를 해가지고, 12시가 되면 교회에서 사이렌을 울리고. 의식적인 교회들은 대항을 좀 했었죠. 매일 12시되면 꼭대기 올라가서 제가 틀고 끄고. 목사님 댁에서 지내고, …그 해 1월 박종철이 죽고….
--- p.322

Q. 선생님.(조인호)

조인호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

Q. 원래부터?? 많으셨던 건가요?

조인호 응응. 역사니까. 역사는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가?

조인호 교사운동. 민족민주 인간화 운동. 그것이 전교조가 출범할 때. 그다음 전교조를 결성하지. 민주교사협의회가 노동조합으로 바꾸는 거야. 그래서 89년 6월 22일 노동조합이 발생을해. 이때부터 이제 엄청난 탄압을 하는 거지. 경찰이나 교육부가. 이렇게 해서 노동조합을 띄우고 그다음에…

Q. 이런 일 주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관심 말고 실천적인 부분에서…

조인호 그건 오룡동 시민강좌지. 바른 역사에 이은 바른 행동. 민주 정의 실천. 국사 교과서도 뒤의 현대사를 엉터리로 가르치잖아. 4.19혁명 이런 거.

Q.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경우도 선생님께 영향을 끼쳤겠네요.

조인호 그렇지. 이거 이거. 전교조가 서울에서 결성을 해. 전교조가 결성되는데 전라북도 대표로 다 차단되어서 내가 이렇게 갔지. 이 자리가 나야. 이건 건국대에서 한 거야. 연세대학교를 완전히 막으니까. 한양대, 연세대가 막히니까 건국대 가서 급조해서 대회를 했어.
--- p.334

Q. 어떻게 해서 이민우 오금수 이민규 이런 사람들을 그 전부터 알게 된 거예요?

강임준 세풍합판 거기도 갔었고. 그다음 시민강좌. 시민강좌를 통해서?
월명동 성당에 계속 참여를 했어요. 그러다가 녹두서점. 김종철의 녹두서점. 그때 인자 현식이 형. 조현식 형이랑 나는 녹두서점 김종철 후배를 거기서 만났어요. 계기는 성당의 활동들….

강임준 시장은 청년시절 사회운동에 열성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특히 반미운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는 87년 이후의 일이다.
미군이 군산 시민을 죽이거나 강간한 사건들이 여럿 있었다. 87년 6월항쟁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
89년 미군이 택시 기사를 폭행 살해했고, 학생-종교인-운동가 모두 합세해서 군산에서 시위를 벌였다. 운동의 주동자로 끌려간 강임준 시장은 재판 받을 때도 불같은 성질을 보이며 판사 검사들을 향해 호통쳤다고 한다. 당시 운동권에서 강임준 시장의 별명은 ‘강까스(가스통)’이었다.
--- p.375

Q. 제가 알기로는 당시 6월 항쟁이 국본이 있고, 함께한 다른 조직으로 민추협이나 정당이 있는 걸로 알아요. 전국적으로 야당과 협력관계가 맺어진 시기고. 군산은 어땠는지

조현식 (Q 혹시 국본에서 선생님 직책이?) 음…, 내가 그때 당시에 국민운동본부 군옥지부 집행위원장이었어. 강임준이가 조직부장.

강임준 호헌전북연합이 전북 국본이 되고, 군산도 국본을 만들어요. 근데 오룡동성당 쪽에서 전면을 맡아달라 했어요. 종철이, 민우, 금수 이런 친구들은 나이가 너무 어린 측면도 있을 것이고? 걔네가 그걸 맡으면 군산 지역민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집행위원장을 조현식 선배가. 저나 노용돈이나 젊었지만, 사람들을 많이 아는 편에 속했고. 군산에서 이름이 좀 알려져 있는 편이니까? 후배들이 그렇게 권했어요. 전면에 선배들이 좀 나서줘야 되겠다.


그렇게 공동대표에 박창신과 전양권. 고문에 조용술 그리고 통일지구당 소속 옥구군 의원 김봉욱. 집행위원장에 조현식. 조직부장 강임준, 집행위원 노용돈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 p.378

Q. 그 당시 이야기도 좀 해주시죠. 86년 잡혔을 때.

이민규 어... 86년도에 잡혔을 때. 앞에서 저 뒤까지 그때는 백골단 애들이 앞에서 저 뒤까지(줄 서서 때리는데) 이놈 아주 고약한 놈이라고 이놈 죽여야 한다고 하이바로?
앞에서 뒤에까지 수없이 맞아서. 어떻게 얼굴이 부었는지… 경찰서 지하에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와서 그냥 나를 몰라볼 정도로 그렇게 됐었거든. 그런데 맞는 것은 일상이었으니까 뭐 그냥.


이민규가 정말 죽기 바라며, 고문하듯이 구타했다. 하지만 이민규는 과거를 회상할 때 그것은 당연한 시대적 과정인 마냥 얘기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의연했다.


Q. 그러면서도 민주화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런 생각이 있었나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민규 글쎄. 그건 어차피 숙명이라고 생각했을거야. 그때 당시에는... (숙명이라고? 학생으로서의 숙명?) 아니면. 요 모순을 몰랐다면 아마 이제 그냥 사회와 타협하고 이렇게 했을건데. 머릿속에서는 나라도 함께 해야겠다. 그런 어떤 숙명적 사고?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혔으니까 그랬겠지.
--- p.382

6월 항쟁은 시민의 역사이다. 백골단에게 쫒기는 군산대 학생들을 숨겨주었던 가게 사장님들. 목이 마른 시위대에게 맛있는 수박을 내준 과수원 아저씨. 지나가는 시위대에게 물을 주기 위해 바가지와 양동이에 물을 퍼준 아주머니들. 백골단에게 쫒기는 학생을 오토바이에 태워 달아난 아저씨. 질타와 멸시의 대상이었지만 함께 싸우고 지원한 아메리카 타운 아가씨들과 술집 종사자들. 본인들의 생계 문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에게 돈을 건넨 명산시장 상인들. 위험을 무릅쓰고 불평하며 유인물 인쇄를 도운 인쇄사 사장님들. 이 책을 잡고 그 당시를 떠올린 당신들 모두가 시민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의 신념에 배신을 배신하고 억누르라는 엄청난 압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순응의 함정과 확증 편향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보다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더 큰 만족을 얻고, 세상에 큰 기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양심을 지키고,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공동선이 뭔지 고민해봐야 한다. 무거운 주제라고 외면한다면, 시민은 우민이 된다.

--- p.392

출판사 리뷰

‘박창신 신부의 오룡동 성당 시민강좌’는 문익환 목사, 김태홍 언론인, 이부영 민통련 사무 처장, 문정현 신부, 백기완 선생, 유인호 교수 등 많은 인사들이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故문익환 목사 시민강좌 수록

최근에 문익환 목사님의 자료들이 국가기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익환 목사님 육성강의가 수록되어있습니다.
그 외에도 김태홍 선생님, 이부영 선생님의 육성 강의를 실었습니다.


이 책의 활동가들은 군산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방에서 6월 항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경험과 동력을 서술한다.

눈에 띄는 동력은 당연히 ‘광주’이다. 항상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주가 왜 중요한지 모른다. ‘광주가 국가적 잔혹 행위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라는 ‘피해자’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당대 민중 선동가들이 광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구술을 통해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그 중요성을 부각 시킨다.

만약 지금 한국 사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광주가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졌다면 지방의 활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 데이터가 없다. 지방사를 각 지역에서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만 지방 현대사는 열외이다. 6월 항쟁은 때로는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그들의 삶은 거의 다 끝나가고, 기억도 예전 같지 않다. 자료도 사라져가고 있다.

약자를 위해 평생을 희생한 이런 활동가들의 삶은 누가 알아줄까? 저자가 아니라 지역 시민들이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작가는 잃어버린 시민적 덕목을 사람들이 떠올리길 바란다. 대상은 시민과 변해버린 운동권이요, 제도권에 진출하지 않고 시민사회를 리드하는데 도움을 준 사회운동가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공동선을 추구하기위해 현대사에서 배울점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뱉은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700부 가까운 책을 무료로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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