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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필요한
아껴 쓴다면 크리스마스 택배 겨울의 색채 뒷이야기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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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리, 내일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봤니? 그럼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내일은 어떻게 할 거냐니?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한단 말이야?
--- p.33 재규가 놀러 오라고 하면서 한 말도 낚시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낚시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재규도 낚시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낚시를 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아니었다. --- p.45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그러니까 암에 걸려 직장에서 권고사직이라고 하는 걸 당하기 전에― 그는 차량용 시트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가끔씩 월급 대신 그런 걸 받기도 했다. 시트를 줬다고? 멋지군, 나는 말했었다. 내가 다니는 색종이 회사는 빌어먹을 곳이지만 적어도 나한테 월급 대신 색종이를 주지는 않는다고도 말했었다. 하지만 앞일은 모르는 것이다. 월급 대신 받은 시트가 결국 쓸 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 p.51 집이 불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냐고? 중요한 것만 챙겨서 나와야 해. 아니면 다 죽는 거야. 이렇게도 말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그녀가 거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 pp.61~62 택배도 부익부 빈익빈 상품이다. 뭐랄까, 유통계의 지니계수랄까, 받는 사람은 계속 받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에게는 아프리카에 사는 북극곰 같은 것이다. 평생 볼일이 없다는 거다. 말하자면 그 택배는 그런 사람의 것이었다. --- p.72 갑자기 돌아선 그녀가 내 앞으로 깐 생밤을 들이밀었다.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었다. 하얀 생밤 냄새가 코끝을 울렸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등을 돌렸고 나는 소처럼 우두커니 앉아 생밤을 씹으며 그녀의 앙상한 그림자가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평 남짓한 재래식 온돌방에서 노인과 젊은이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밤을 까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여름내 모아 둔 곡식을 겨울철에 꺼내 먹는 설치류 가족이 이런 모습일까. 나는 입안에서 생밤의 옅은 단맛이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 p.92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보고 만질 수는 없지만, 어둠 저편에서 어떤 신호를,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그가 죽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를 이해하고 싶다. 생애 내내, 나는 언제나 그를 이해하고픈 충동에 휩싸이곤 했던 것이다. --- p.101 “나와 함께 있으면 넌 죽어갈 거야.” 나는 그에게 말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가 헤어져야만 그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 p.114 나는 살면서 울어서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민호가 나에게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울었다. --- p.144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써야만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 소설은 그렇게 힘들게 쓰일 때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힘들게 쓰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도 않고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힘도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 p.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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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어요. 여기에 당장 필요한 거요.”
함께 주사위를 던지거나 낚싯대를 드리우는 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인간을 위로하는 방법과 글쓰기 『겨울의 색채』 속 등장인물들은 오래도록 추운 겨울을 홀로 지냈던 이들이다. 그들은 제 몸을 데워 줄 안락한 곳을 찾거나 더 두꺼운 옷을 껴입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처럼 오도카니 서 있는 인물을 알아차리고 그 곁으로 간다. 소설 속에 서로를 얼싸안는 것 같은 극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은 부루마블을 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거나 나란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건물을 살 수도 있고 무인도에 갇히는 바람에 한 차례 쉬면서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마치 물고기를 낚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낚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운과 불운 그 자체가 아니라, 운과 불운 ‘사이’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일 테다. 『겨울의 색채』를 읽고 맨 처음 떠올린 것은 장면이었다. 주사위가 던져진 직후, 말은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한다. 낚싯대가 드리워진 직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 장면은 회화나 사진처럼 으레 2차원으로 시작되지만, 평면에서 우리는 입체적인 삶을 상상해야 한다. (…) 눈은 진눈깨비로 내리기도 하고 폭설로 퍼붓기도 한다. 장면에 색을 입히는 것도, 눈의 감촉을 떠올리며 볼을 쓸어내리는 것도, 등장인물의 말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적극적으로 장면에 가담하는 일이다. -「추천사」 중에서 홀로 견디던 이들이 일시적일지언정 누군가와 함께하는 장면들은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극적인 행위나 결말 없이도 서동욱의 소설에서 변화의 ‘파동’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고요한 응시와 그들이 함께 견디는 시간은 소설 바깥으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가의 말」에서 서동욱은 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위로는 “비어 있고 별거 없다고 생각한 공간 속에서 불현듯 몸을 부르르 떨게 되는 경험”이다. 소설 속 인물과 인물들의 사이, 그들이 무심하게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들. 그 장면 속으로 ‘적극적’으로 가담할 때 그들 사이로 흐르는 저 보일 듯 말 듯 한 온기가 불시에 우리에게 전달될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호밀밭 소설선, 각기 다른 ‘사연의 고고학’을 꿈꾸며 서동욱 작가의 『겨울의 색채』는 소설의 바다로 향하는 호밀밭 소설선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는 한국 소설의 사회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미적 형식을 타고 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새롭게 탐사하는 서사적 항해를 꿈꾼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난파한 세상 속으로 함께 나아가는 문학적 모험을 지향하는 것이다. 호밀밭의 소설은 우리가 상실한 생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되물으며, 동시에 우리 삶에 필요한 따뜻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연의 고고학자’가 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은 분명 오래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여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유이다. ―호밀밭 문학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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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색채』를 읽고 맨 처음 떠올린 것은 장면이었다. 주사위가 던져진 직후, 말은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한다. 낚싯대가 드리워진 직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 장면은 회화나 사진처럼 으레 2차원으로 시작되지만, 평면에서 우리는 입체적인 삶을 상상해야 한다. 이는 활자를 마주한 뒤 머릿속에서 그것을 움직임으로 변환하는 과정과도 닮았다. 눈은 진눈깨비로 내리기도 하고 폭설로 퍼붓기도 한다. 장면에 색을 입히는 것도, 눈의 감촉을 떠올리며 볼을 쓸어내리 는 것도, 등장인물의 말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적극적으로 장면에 가담하는 일이다. 소설집을 읽고 마지막으로 떠올린 단어는 속수무책이었다. 정확히는 손이 묶인 상태에서도 어칠비칠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말이다. 덕분에 앞이 캄캄할 때는 뒤가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함을 알았다. 눈밭 위에 발자국이 오종종 찍혀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의 첫발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 이 책으로 올겨울의 색채는 더한층 강렬해질 것이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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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색채』는 소설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교란하고 있다. 하나의 집약된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대단원까지 정점을 향해 내달리는 근대 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나, 대안과 전망이 부재하는 한국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서동욱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목적을 바탕으로 ‘완성’된 서사를 구축해 갈 수 없는 이들의 사연에 주목하고 있다. 그 어떤 감상적 장치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소설집을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이다. 이 소설집은 명사형 인간으로 정립되지 못한 존재들, 오로지 부사와 형용사적인 표현으로만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문학적 응시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과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 박형준 (문학평론가,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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