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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정희 여름, 하민 가을, 동민 겨울, 영한그리고 봄, 정희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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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善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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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아니라 사과를 준비해야겠어.” (봄, 정희)엄마(정희) 아빠(영한)의 결혼기념일 점심에 딸(하민)이 근사한 비건 파인다이 닝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을 때, 거기에 2년 전 통기타 하나만 들고 집을 나갔던 아들(동민)도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정희는 그날이 최악 의 하루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그마치 네 식구의 3년 만의 외 식이었고, 대선이 끝난 이후 지리멸렬한 이유로 해체되었던 4인 가족의 재결 합 자리였으니까.“파트너를 찾은 거 같아. 아니, 찾았어. 결혼 상대.” “얘가 정말 사람 놀래키네. 남자친구 생긴 거야?” “그게… 그런데… 남자가 아니고. 여자야.” _본문에서“내 결혼 소동과 대통령선거, 어떤 게 엄마에게 더 큰 도전이었을까.” (여름, 하민)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에 커밍아웃까지 했지만, 결국 엘리사 부모님의 반대 로 결혼식이 취소되었다. 이명이 심해지는 엄마(정희)도 신경 쓰이고, 동성 결 혼에 대해 쿨하게 반응했던 아빠(영한)도 마음에 걸린다. 하민은 다시 ‘그라운 드 제로’로 돌아왔다. 하민이 엘리사를 처음 만난 건 언어교환 모임이었다. 당시 엘리사는 여행 중이었고 튀르키예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엘리사는 내일 서울을 떠난다. 하지만 그때, 엘리사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온다. ‘하민, 지 금 일하고 있어? 나를 만날 수 있어?’ 하민과 엘리사는 어떻게 될까? 결국 헤어지게 될까?하지만 서른은 판타지와 결별하는 나이, 이제 내 인생 은 시시해지는 일만 남은 걸까. 책임에 가위눌리는 일 만 남은 걸까. 집과 회사 사이의 셔틀인생, 연봉과 승진 에 목을 매는 따분한 군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걸까. 또는 워킹맘이라는 고단한 트랙에 올라타서 무면허 엄 마 노릇을 하게 되는 걸까. 발신인 불명의 선물상자 앞 에서 두근거리는 일은 더 이상 없는 걸까. 올해 일어난 일들은 길고 긴 판타지영화의 엔딩 세리머니였는지도 모른다. _본문에서“자꾸 5.16하고 5.18이 헷갈려.” (가을, 동민)입사지원서를 쓰고 또 쓰다가 지쳐 있던 동민은 인디 밴드 하자고 꼬시는 94(친구)의 말에 넘어가 통기타 하나만 들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홍대 앞에 서 동민을 맞은 건 코로나였다. 지난봄, 미호(친구)가 밴드를 나갔고, 밴드는 해체한 것도 활동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동민은 아빠(영한)와 자꾸만 부딪치기까지 한다.전철을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동민은 정엽이나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스 타트업에 들어간 친구인데 3년째 잘 다니고 있다. 누나 얘기에 발끈했었는데 어느새 음악 접고 집에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직장을 갖고서 음악은 취 미로 해도 되지 않냐? 동민에게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 빠뿐이 아니었다. _본문에서“혐오의 팬데믹이 우리 사이를 너무 벌려놨구나.” (겨울, 영한)영한은 대학 4학년 때 노동야학을 하다가 조직 사건으로 엮여서 학교에서 제적되어 남영동 지하실을 겪고 감옥에도 다녀왔다. 1년 6개월이면 병역면제인 데 2개월이 모자라 30개월 군대를 또 갔다. 7년 만에 학교에 복적이 된 영한 은 뒤늦게 전공을 바꿔 공부해, 이름도 잘 모르던 지방대에 전임 자리를 얻어 취업했다. 하지만 수강 신청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면서 전공과목이 하나씩 폐 강되더니 결국 영한이 있던 사회학과가 없어졌다. 하지만 뒤늦게 교수가 된 영한은 사학연금 20년 기준을 마저 채우고서야 퇴직을 할 수 있었다. 은퇴 스트레스에 섹스리스 부부생활, 그리고 동시다발로 닥쳐온 갱년기 슬럼프에, 검사가 대통령이 되는 정치 스트레스까지.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가 된 어느 가을날, 영한은 아들(동민)과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아들 얼굴에 핸드폰 을 던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이겨내기 위해서 왕년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영한은 지금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은 ‘혐오의 팬데믹을 넘어’.영한은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는 아들 앞에 망연자실, 앉아 있다. 뭔가가 다 깨지고 다 무너졌다. 가슴속이 삭 막하고 눈앞이 자욱했다. 영한은 울고 싶어졌다. 하룻저 녁 가벼운 대화로 아들과 화기애애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처럼의 화통한 대화는 아 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것이 작은 틈이 아니라 깊은 계 곡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핸드폰 사건은 사소한 해 프닝에 불과했다. 영한은 어깻죽지가 축 늘어졌다. 혐오 의 팬데믹이 우리 사이를 너무 벌려놨구나. 이걸 건너 갈 수 있을까. 이걸 메우는 게 가능할까. 당장은 아니라 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메워질 수 있는 골인가. 갑자기 이 사회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_본문에서“봄은 참 좋다.” (그리고 봄, 정희)딸(하민)이 베를린으로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다. 수시로 카톡과 전화통화를 하지만, 비행기 열두 시간 거리에 여덟 시간의 시차가 심리적 거리를 벌려놓 는다. 딸(하민)은 정희에게 여전히 지독한 혼란이다. 베를린에서 자신을 품어 주는 커뮤니티를 만났다는 게 흐뭇하면서도 씁쓸하다.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는데 이국의 사회가 환대하고 있다는 게 마냥 박수 칠 기분은 아니다. 동민(아들)은 출근한 지 세 달째다. 사장 포함해서 다섯이 일하는 작 은 맥주 회사다. 동민(아들)이 집에 돌아왔다 했더니 다시 남편(영한)과 둘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화장대엔 약병들이 늘어나면서 화장품을 밀어내고 있다. 남편(영한)은 한참 가위에 눌려 고생하더니 벗어난 듯하다. 불면증에 우 울증으로 남성호르몬제를 발랐던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정희와 영한은 둘 중 하나가 인내심이 조금만 모자랐어도 지금은 남남이 되 었을지도 모른다. 영한은 거의 집에 없었고, 정희는 기자 일을 하는 워킹맘이 었다. 당시에 정희는 늘 영한에게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하민이 대학생이 되고 동민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집안일이 줄자 좀 지낼 만해지더니,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와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벌리자 둘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혐오의 팬데믹을 넘고 있는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겨울이 가고 나면 봄이 오듯이 이 가족은 다시 명랑해질 수 있을까?“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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