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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한국 영화광의 행운 가득한 여정
플라스틱과 종이로 덮인 벽, 내 꿈의 세계 미스터리는 어디에 있는가? 호러영화: 한국의 젊고 배고픈 영화감독의 놀잇감 투신자살하는 회사원 새벽의 근사한 공포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한국 SF가 계속 실망스러운 이유 악귀를 피해 가려면 한국 장례식이 아일랜드 장례식보다 낫다 세 부인에게 보낸 편지 편지를 통해 발전하는 관계와 언어 실력 내가 선 자리가 고향이다 괴짜 감독 이상우와 나 마력馬力과 어린 시절의 냄새 아이언맨을 만났을 때 한 손엔 여러 가지 명함, 한 손엔 고양이 배변 상자 알쏭달쏭한 한국 고층아파트와 부동산의 세계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소리 영화 속 음주의 역사 공포의 낮과 환희의 밤으로 떠나는 연간 행사 빅 아이디어, 고립적 스토리텔링에 발목 잡히다 추자현의 얼굴이 들려주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내 한국 영화 사랑에 다시 불을 붙여준 ‘안티 로맨스’ 사고실험―한국 미디어의 세계 진출 이후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 사진들―봄을 기다리며 |
권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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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혹은 어떤 것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안다 해도, 새로운 것을 계속 발견하려고 노력하면 신비함과 열정은 식지 않는다. 최고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영화들은 아무리 뜯어보고 분해하고 이야기해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이론, 새로운 느낌을 준다. 나는 대학교 졸업논문으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대해 썼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느끼기로는, 그 후로 다시 볼 때마다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만 갖고도 완전히 새로운 논문을 쓸 수도 있다(다시 본 것만 스무 번 정도 될 것이다).
--- p.23~24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자유로운 생각 표현을 억압한 정부 덕분에,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어떤 것에 대해 에둘러 말하는 방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요한 영화들은 서브텍스트를 이어 붙여 작품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 p.24 한국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영화에 대한 내 ‘덕통사고’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비롯되었다(당시 나는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실수로 이 영화를 골랐다). 영화 속 잔인함에 충격이 심했지만 이미지들이 뇌리에 남았고, 몇 주 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았지만, 다시 보니 의도는 느껴졌다. 이렇게 마법처럼 한국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시작되었다. --- p.25 한국 영화에 빠져드는 것은 기쁨이었다. 장르에 관계 없이, 이야기에 층이 정말 많았다. 나는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자라지 않았지만, 한국 로맨스는 좋아했다. 특히 연인이 시간, 장애나 병 등으로 인해 헤어지는 〈시월애〉 〈…ing (아이엔지)〉 〈내 머릿속의 지우개〉 같은 영화가 좋았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당시 나는 이 영화들이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 분단의 은유라고 상상했다. --- p.27 최면에 걸린 듯했고, 몸이 서늘했다. 영화를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공포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포는 마음속과 깜깜한 밤의 그림자일 수도, 과거와 미래의 유령일 수도 있다. 영화는 가장 깊은 곳의 공포를 비추고, 마주하고, 끌어안게도 해준다. --- p.32 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더블린 개봉 날에 처음 보았고, 관객은 대부분 한국 교민이었다. 영화에서 합동 장례식 때 가족이 드러누워 뒤엉켜 우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웃었다. 며칠 후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또 보러 갔는데, 그때는 관객이 모두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그 장면에서 웃지 않았다. 내가 속한 문화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보고 웃을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죽으면 우리는 검은 옷을 입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 p.70~71 서구 영화에도 술이 넘치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 역시 좋은 의미에서 술판이다. 한국 미술감독들의 단골 메뉴(이자 홍상수 감독 영화의 기본 재료)는 당연히 초록색 소주병이다. 식당과 거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소주병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상록수’ 같은 상징물이다. --- p.146~147 정서경 작가가 작품에서 그리는 여성들의 연대에는 근본적이고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특히 TV 드라마에서는 이것이 더 잘 드러난다. 정서경 작가는 여성들의 연대를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생생한 모티프와 상징에 담는다. 〈작은 아씨들〉 속 푸른 난초꽃도 그러한 상징이다. --- 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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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낯선 이국으로 오게 한,
신비로운 존재 한국 영화에 대하여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그의 오랜 친구이자 그를 존재하게 하는 또 다른 세계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그 세계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인도했다. 피어스 콘란에게 한국 영화는 ‘미스터리’였고, 그는 이 이해 불가한 존재에 빠져드는 것을 가리켜 “기쁨”이었다고 고백한다.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의 잔인함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지들이 뇌리에 남았고, 몇 주 후 다시 본 영화에서 한국의 트라우마와 의도를 발견하고선 ‘마법처럼 한국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 영화의 특징으로 사회적 ‘메시지’의 표현을 말하는데,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에 등장하는 ‘투신자살하는 회사원’의 이미지가 그 예다. ‘할 수 있다’식 낙관주의가 끝이 없는 할리우드에서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매력적인 주인공의 긍정적인 대사로 고쳐지지만, 한국 영화는 자살하면서 시작한다. (…) 경직된 사회, 고통스러운 노동문화, 위험한 투기 등으로 악화되는 한국 사회의 압박은 너무도 만연해서, 난간 너머를 바라보는 회사원의 이미지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낙담한 회사원들은, 혼나는 며느리들, 학대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학생들과 함께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 ―43쪽 그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정서경 작가가 보여준 여성들의 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와의 비교가 인상적이다. 후자가 여성의 연대를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작은 아씨들〉은 “푸른 난초꽃” 같은 생생한 상징과 함께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각 장의 끝에는 글의 원천이 되는, 엄선한 영화들에 대한 글이 함께한다. 여기에는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이 포함되었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품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거나 혹은 낯선 영화의 매력을 알도록 도와준다. “내가 선 자리가 고향이다” 돌고 돌아 정착한 한국의 문화 그리고 빛나는 사람들 피어스 콘란의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은 한국의 문화와 풍경을 파고드는 일로 자연스레 이동한다. 그중 한국의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계층을 가르는 궁극의 척도”로, 영화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허름한 아파트와 고급 신축 아파트가 이를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드라마 〈해피니스〉에서 벌어지는 일반 분양 입주자들과 임대 입주자들의 충돌은 “좀비들과의 싸움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의 아이러니한 소음 역시 그에게는 영화를 경계로 낯설고도 익숙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사이렌,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라디오와 내비게이션의 침범에 당황하다가도 매미들이 한데 모여 내는 “엔진”과도 같은 소리에는 덤덤한 까닭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이미 보았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한국에서의 삶, 그리고 영화 일에 있어 작가에게 중요한 인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이원석 감독은 피어스 콘란에게 지금의 아내인 이경미 감독을 소개해주었고, 잠시 시들해졌던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에 〈킬링 로맨스〉로 다시 불을 붙여주었다. 〈나는 쓰레기다〉의 이상우 감독은 처음으로 그에게 영화 제작 일을 제안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서툰 솜씨로 한국식 인사법 절을 배우던 피어스 콘란은 이제 소주를 들이키며 크, 소리를 낸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을 거쳐 오면서 어디에서든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하지만 “지난 11년간 고향이 되어준” 한국에서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하다. 의심스러운 눈초리, 질문들이 없고, 나 또한 숨을 필요가 없다.” 한국 영화에 대한 열정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영화제의 불빛만큼이나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나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그에게 한국은 이름만큼이나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악수하며 굽신굽신하지만, 정해진 기준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피어스 콘란의 한국 정착기에는 한국인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 넘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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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과 악수할 때 잘도 굽신굽신하지만 알고 보면 아일랜드 사람 필수 씨는 누가 정해준 기준을 따르는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나름대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필수 씨는, 무슨 일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요당하면 몹시 곤란해할 사람이다. 그래서 ‘필수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우리 한국인이 필수 씨 말을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 - 박찬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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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는 평소에 pun(말놀이)을 즐긴다. 이 책을 쓰면서도 분명히 pun을 애용했을 텐데 번역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일이 다 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낯선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살아가는 피어스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 아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책을 읽었다가 무척 재미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는 얘기는 차마 내 입으로 말 못 하겠다. 누가 내 말을 믿겠는가. 팔불출 아내의 소감으로밖에 안 보일 텐데. 내 마음이야 객관적으로다가 100퍼센트 진심이지만! - 이경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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