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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윤미량 / 이재정(전 통일부 장관)
책을 펴내며 / 간행위원회 1장. 북한체제, 남북대화, 통일준비 북한체제의 내구성 평가에 있어서의 쟁점 북한의 남북대화 전략과 평가 2.13합의 지켜보는 워싱턴 남북 환경협력에 대해 85 평화통일교육의 제도적 정착 방안 남북교류협력의 동향과 통일정책 방향 통일준비와 통일 항아리 2장. 북한인권, 이산가족, 납북자, 새터민 북한인권과 한반도 평화 북한인권법 1년, 우린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이산가족문제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 납북자 관련 대북 협상의 경과와 성과 하나원을 통해 본 북한이탈주민의 특성과 정착문제 탈북여성의 정착교육 실태와 과제 하나원 25시: 탈북민 이야기 하나원 일기 3장. 북한 여성과 보육 북한의 여성정책에 관한 연구 남·북한 보육 및 유아교육 체제 및 제도 북한의 여성 북한의 여성생활(1): 경제난 속 북한여성 북한여성 엿보기와 이해하기 북한사회와 여성 북한 여성의 위상과 역할 4장. 북한 문학 북한 문학에서의 혁명적 낙관주의 북한사회와 아동문학 5장. 윤미량이 살아온 길 |
Miryang 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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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량 박사,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윤미량 박사는 지금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 당당하고 거침없고 늘 재잘거리 면서 자신을 내세우던 그녀는 우리 곁을 먼저 떠났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돌이 켜보니그녀는우리곁을떠난것이아니라우리의추억과그리움속에그리고 이복잡하고어두운사회현장의한가운데에여전히그웃음기띤깨끗한소녀 의 모습으로 살아있습니다. 이제 생전에 끝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책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서가에 꽂혀서 우리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줄줄이 쏟아낼 것입니다. 제가 몸담은 성공 회의 신학적 표현을 빌자면 그녀는 이제 새로운 몸으로 이 세상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저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알 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2006년 겨울에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에 저의 지인 가운데 한 분이 통일부에 똑똑하고 당당하고 용기 있고 신념에 가득 찬 여성 공무원이 있다는 소개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보 고 싶었지만, 당시 윤미량 박사는 미국 의회가 설립한 Woodl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Washington, D.C.에서 초빙연구원 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윤 박사를 알고 있는 분들은 이미 그녀가 중앙대 학을 졸업한 후 제3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통일부에서 행정사무관으로 공 무원 생활을 시작한 남다른 재원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윤미 량 박사가 통일부의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역량을 펼 치면서 정책분야, 남북회담 분야 그리고 대북 인도적 사업 등에 참여하였다는 이야기만 무성하게 들었습니다. 마침내 2007년 8월에 윤미량 박사는 1년 남 짓 미국에서의 연구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여 첫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눈에저는그녀의열정과자신감과그리고남다른패기를느낄수있었기때 문에 주저 없이 그녀를 부이사관으로 승진시켜 사회문화총괄팀장으로 임명 하였습니다. 그녀는 통일행정에서 이룬 여러 과정은 물론 1991년 서울대학 교 행정대학원에서 “북한 여성정책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마쳤고 더 나 아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4년간의 연구를 마 치고 1997년 “Women in the Two Nations and Four States”라는 논문으 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Post-Doc. 프로그램의 목 적으로 미국 연구까지 마친 그녀는 통일부가 의지를 다지고 발굴하고 키운 보기가 드문 여성 통일지도력이었습니다. 북한에 관한 그녀의 연구는 단순히 학 자로서의 목표나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루어야 할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역사적 과제를 정면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감의 결실이었습니다. 그 후 여성 최초로 통일부에서 고위공무원 가급으로 승진했 던 윤미량 박사는 남북회담 본부의 상근 회담 대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일교 육원장을 역임하면서 그녀의 평생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갔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녀가 2015년 2월 통일부를 퇴직한 후 제가 당시 일하던 경기도교육청에서 그녀는 정책자문위원으로서 학생들을 위한 통일교 육과 평화교육을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그녀의 평화와 통일의 열정은 결코 한가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 계를 넘어 참여하고 설득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하였 습니다. 2년 전 어느 날 문득 윤 박사는 제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당시 윤 석렬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요청이 와서 평화통일정책 자문을 위한 역할을 하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호하게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느냐고 따졌 습니다. 저는 정말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한반도의 미래 그리고 통일부의 역사적 사명을 위하여 윤미량 박사의 역량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정치적인 여야를 넘어 오히려 그곳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녀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꿈 그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평화와 통일이라 는 위대한 그녀의 삶을 만들어 온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돌이며 보면 통일과 평화의 올바른 정책이 역설적으로 그곳에 더 절실한 과제였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그녀의 그 꿈을 그곳에서 열어 보지도 못한 채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꿈과는 다른 그런 험한 상황을 보기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무슨 정치적 이해관계나 무슨 자리 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더욱 충실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순수한 열 정과 용기였습니다. 그때는 그녀를 향한 내 생각이 정말 짧았습니다. 윤미량 박사. 그녀는 결코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꿈은 여전히 우리들 의 꿈이며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과 제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역할은 숙명여자대학교의 글로벌거 버넌스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일 하고 싶어 했고 자신이 만들어 온 경력을 어디에선가 이바지할 수 있기를 주 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그녀에게 빚진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면서 그녀 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윤미량 박 사, 당신은 스스로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온 선구자이셨습니다. 당신의 평화와 통일의 꿈은 오늘도 생생하게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묘비명을 쓸 수 있다면 이렇게 남기겠습니다. 윤미량, 영원한 평화의 꽃으로 여기에!” -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