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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국학총서〉를 펴내며
1. 서문 ······························································································ 005 2. 『구당서』 ······················································································ 025 동이열전 ···························································································· 029 고려전·009~182 백제전·183~262 신라전·263~338 북적열전 ··························································································· 117 말갈전·240~368 발해말갈전·369~425 찬자평 ····························································································· 203 3. 『자치통감』 ················································································· 025 당기 고조기·429~437 태종기·438~611 고종기·612~757 측천기·758~764 중종기·765~765 예종기·766~767 현종기·768~796 4. 찾아보기 ······················································································ 797 |
文盛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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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 동쪽’ 즉 요동(遼東)은 명·청대만 해도 산해관(山海關) 동쪽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보다 한참 동쪽에 있는 요동반도부터가 요동이라는 역사인식은 최근 100년 전에 갑자기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 p.147 안시성(安市城) 전투의 영웅 양만춘(楊萬春)은 후세에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었다! 16세기 명나라에서 지어진 역사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에 ‘량만춘(梁萬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급기야 7세기 안시성의 전쟁 영웅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각인되었다. --- p.140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과 신라 무열왕 김춘추(金春秋) 사이에 맺어진 밀약에 따라 신라가 획득한 ‘패강 이남(浿江以南)’의 고구려 땅은 지금의 요동반도 이남의 땅이었다! 지금의 평안도 평양시 이남으로 해석한 기존의 해석들은 잘못된 것이다. --- p.304 동유럽에서 헝가리(Hungary)를 건국한 마갸르(Magyar)는 고구려 구성원의 한 갈래였던 말갈(靺鞨)이었다! 미국 학자 주학연(朱學淵)은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에서 이 마갸르가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서쪽으로 이주해 간 고구려 말갈의 후예들이라고 보았다. --- p.363 1922년에 발견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의 묘지명 『천남생 묘지명(泉男生墓誌銘)』(7세기 제작)에 따르면 연씨의 연고지이자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平壤城)은 ‘요동군(遼東郡)’에 있었다! 지금의 평안도 평양시는 고구려의 평양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 p.153 대조영(大祚榮)의 발해(渤海)가 말갈족이 세운 나라라는 중·일 학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대조영 본인은 물론이고 당시의 당나라에서조차 대씨 발해는 고구려의 정체성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 p.373 신라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의 당나라군을 맞이한 덕물도(德物島)는 지금의 중국 요동만(遼東灣)에 있는 섬이었다! 나·당 연합군의 회합은 통설로 알려져 있는 경기도 옹진군의 덕적도(德積島)가 아니라는 뜻이다. --- p.663 대씨 발해의 국호가 ‘발해(渤海)’였다는 사실은 그 강역이 중국의 바다인 발해를 끼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발해가 요동반도 동쪽에 치우쳐 있었다는 기존의 고증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 p.397 우리에게 익숙한 백제어 ‘고마(固麻)’의 뜻은 ‘도읍(capital)’이지 ‘곰(bear)’이 아니다! ‘고마’가 ‘곰나루’라는 의미의 웅진(熊津, 지금의 충남 공주시)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 p.188 백제 부흥군을 이끌고 나중에는 당나라에서 활약한 명장 흑치상지(黑齒常之)의 집안인 ‘흑치씨’는 백제 왕가 부여씨(扶餘氏)의 한 갈래였다! --- p.670 지금의 충남 공주시에 자리잡고 있는 공산성(公山城)은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을 잘못 쓴 것이다! ‘공’산성의 진짜 이름은 ‘옹’산성이거나 오히려 ‘태’산성(兌山城)이었다고 보아야 옳다. --- p.647 백제와 신라의 발상지인 대방(帶方)과 낙랑(樂浪)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 하북지역에 있었다! 대방과 낙랑을 영국 잉글랜드의 욕(York)으로 친다면 백제와 신라는 신대륙의 뉴욕(New York)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 p.433 중국 진·한대 만리장성(萬里長城)의 동쪽 끝인 낙랑의 갈석산(碣石山)은 중국 하북성의 동북방에 있었다. 만리장성의 끝이 황해도 수안군(遂安郡)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일·중·한 학자들의 기존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 p.488 고구려의 관직명인 막리지(莫離支)는 ‘모리치’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몽골어에서 ‘말(horse)’을 뜻하는 말이 ‘모리(mori)’이고 ‘사람(person)'을 뜻하는 말이 ’-치(chi)‘인 점을 감안할 때 ‘모리-치’는 당시 군사적으로 중요한 군마를 관장하는 ‘병마사(兵馬使)’ 즉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관직이었을 것이다. --- p.462 시신을 포개어 쌓아 올린 무더기를 뜻하는 ‘경관(京觀)’은 고구려어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의 사서들에 수시로 사용되던 중국식 이름이라는 뜻이다. --- p.77 고구려 난세의 영웅 연개소문 이름 ‘蓋蘇文’은 ‘합소문’으로 읽어야 옳다! 『정관정요(貞觀政要)』 등에는 ‘합소문(?蘇文)’으로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관정요』는 『구당서』보다 225년이나 앞서 편찬되었으므로 실제로 연개소문이 아니라 ‘연합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p.82 한·중·일 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와 백제를 침공한 당나라 수군의 황해(黃海, 서해) 횡단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7세기 당시까지만 해도 산동반도에서 서해안으로의 횡단이나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의 항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으며, 오로지 ‘산동 → 하북 → 요동 → 한반도’ 식의 ‘연안항법(沿岸航法)’으로만 항해가 가능하였다. --- p.195 7세기 고대의 압록수(鴨綠水)는 지금의 한·중 양국의 자연적인 국경선을 이루는 압록강(鴨綠江)과 다른 강이었다! 말갈족의 영역에 있는 장백산(長白山)에서 발원하는 압록수는 오히려 지금의 중국 요녕지역을 흐르는 요하(遼河)일 가능성이 높다. --- p.508 고구려 멸망 이후로 신라의 영토는 동서로 1천 리, 남북으로 3천 리로, 그 북계(北界) 즉 북방한계선이 지금의 압록강을 넘어가 있었다! 통일 이후의 신라 강역을 지금의 평안도 평양시 이남으로 추정하는 기존의 한·중·일 학계의 주장은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 p.280 신라는 법흥왕(法興王)으로부터 진덕여왕(眞德女王) 때까지 100여 년 동안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하였다! 독자적인 연호는 날로 거세지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탈로부터 벗어나자면 당나라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 최종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 p.284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여황제인 무측천(武則天)의 롤 모델은 신라의 여왕들이었을 것이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신라의 국왕이 여자(선덕)임을 조롱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롱은 누워서 침뱉기가 되고 말았다. 그 사후에 아들인 고종(高宗) 이치(李治)가 황후로 책봉한 측천무후가 국정을 농단하고 급기야 황제로 즉위했기 때문이다. --- p.278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건국 초기에 신라로부터 제5등의 대아찬(大阿?) 관작을 받았다! 나중에는 국력 강화와 영토 확장으로 신라와 경쟁관계로 전환되었으나 건국 초기에는 당나라에 맞서기 위하여 신라·돌궐과 우호·제휴관계를 유지했다는 뜻이다. --- p.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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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연구재단에서 역자가 지난 몇 년동안 ‘국학총서(國學叢書)’로 선보인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시리즈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한·중 고대사의 역사적 사건·인물·장소들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고증을 제안해 왔다. 그렇다 보니 ‘반도사관(半島史觀)’이 지배하는 국내 학계로부터는 역자의 이같은 주장과 노력의 결실이 일종의 ‘금서(禁書)’처럼 취급되어진 것이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23년 현재 하버드 대의 옌칭(燕京) 도서관, 스탠포드 대의 동아시아 도서관을 위시하여 콜럼비아·프린스턴·UCLA·사우스 캘리포니아·코넬 등 미국 유수의 명문대 및 미국 의회(Congress)·일본 국회(日本國會)·일본 토쿄 도립(東京都立) 등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도서관들에 소장되어 현지의 한국사·중국사·동양사 연구자들의 참고서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역자의 노력과 주장들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오히려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 4』(구당서권)에서는 독자·연구자들이 ‘기전체’ 정사 『구당서』에 수록된 〈동이전(東夷傳)〉과 〈북적전(北狄傳)〉에서 소개한 고[구]려·백제·신라·와국(倭國)·말갈·발해말갈(대씨 발해) 등의 연혁·지리·풍속 및 당나라와의 교섭·책봉·전쟁 관련 내용들을 보다 쉽고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편년체’ 『자치통감』의 관련 대목들에 대한 번역과 주석을 추가로 부록하였다. 그리고 기존 정사들에 자주 등장한 중원의 각종 지명들로부터 고구려의 요택(遼澤)·요동성(遼東城)·백애성(白崖城, 백암성)·안시성(安市城), 백제의 취리산(就利山)·옹산성(甕山城, 공산성), 신라의 덕물도(德物島), 발해의 동모산(東牟山)·천문령(天門嶺) 등까지, 그동안 7~8세기 한·중 고대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역사의 현장들에 대한 새로운 지리·언어·고고적 고증과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 중에서도 7세기 고구려-당나라의 요동전쟁 과정에서 핵심적인 공간인 요택의 좌표를 기존의 요녕성 중부인 요동반도의 요하 유역이 아니라 하북의 택주(澤州) 즉 하북성과 요녕성의 집경지대로 본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책은 주제별·사건별로 소개된 『구당서』 열전들의 내용을 연도별·월별·일별로 정밀하게 대조하고, 나아가 한·중 고대사의 역사적 진실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독자들은 7~8세기 한·중 고대사의 명장면들을 『구당서』와 『자치통감』을 함께 엮은 이 한 권으로 동시에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