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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 비잔틴 동방교회 영내로 이슬람 군대가 침공했을 때, 교회가 분열되어 있던 탓에 이슬람 군대에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손쉽게 무너졌다.“
--- p.81 “초기 정복전쟁에서 이슬람이 칼과 무력에 의지한 전투를 통해 침공하고 점령해 나갔다. 그러나 정복 이후에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지는 않았다.“ --- p.106 “꾸란에서 비무슬림을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행위를 금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 이 조항은 공허한 법률조항으로만 존재했다.” --- p.125 “732년 10월 프랑스 중서부의 거점 도시 푸아티에와 투르 사이에서 벌어진 투르(Tours) 혹은 투르-푸아티에(Tours-Poitiers) 전투는 이슬람의 유럽 침공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기독교 유럽을 지킨 승리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p.135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이슬람의 북상을 가로막은 전투였으며 유럽을 이슬람 정복의 위기에서 구출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기번(Edward Gibbon)은 투르에서 무슬림이 승리했다면, ‘옥스퍼드 대학에서 꾸란 해석을 가르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p.137 “로드니 스타크(Stark)는 『신(神)의 전사들』(God’s Battalions)에서 예루살렘의 무슬림 수비대가 항복을 거부했기 때문에, 당시의 전쟁 규범에 따라 행한 학살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 p.153 “적군이 항복을 거부할 경우 자행되던 대량 학살과 전리품 약탈은 중세의 일반적인 전투 관행이었으며, 기독교나 이슬람 진영 모두 이러한 전쟁 규범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십자군이 무슬림들에게 가했던 불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는 학자들이 무슬림이 자행한 비관용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침묵한다.” --- p.150 “오스만 투르크에는 데브시르메(Dev?irme)라는 소년 징집 제도가 있었다. 이슬람이 유럽(발칸 국가)을 정복하면서 기독교인 소년들을 데려다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후 엄격한 규율과 강한 군사훈련을 시켜 술탄의 정예 상비군 및 친위 부대로 양성하는 제도였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보병 군단이 ‘예니체리’(yeniceri)였다.” --- p.176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구약성경 아브라함에서 파생한 세 개의 종교이다. 이 세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 p.181 “무슬림들도 예수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무슬림들이 이해하는 예수는 이슬람 경전인 꾸란이 묘사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 근거하고 있다.” --- p.192 “꾸란이 묘사하는 예수는 복음서의 예수와는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회의 정경뿐 아니라 외경 자료 등을 바탕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 p.208 “이슬람의 팽창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초기 정복은 칼과 무력으로 했지만, 정복한 후에는 교묘한 차별화 정책을 통해 정복 지역의 교인들을 점진적으로 이슬람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 p.226 “인두세 납부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슬람 개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무거운 세금 부담(지즈야)과 억압적 상황과 차별로 인해 이슬람 치하 기독교인의 50%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까지 250~300년이 소요되었다.” --- p.249 “종교개혁을 뒤이어 이슬람 군대가 유럽을 침공함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이슬람과 개신교 두 개의 적을 상대해야 했다. 종교개혁으로 흔들리고 있던 상황에서 가톨릭은 이슬람 공격에도 대처해야 했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더 직접적인 위협인 이슬람의 침공을 먼저 막아내야 했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세력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 p.272 “715년 기독교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 정복에 성공한 이슬람은 스페인 전역에서 대부분의 교회 건물(성당)을 파괴했으며, 견고하게 지어진 교회 건물들은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 p.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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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9.11 테러 등 이슬람은 현대 역사에 뚜렷한 궤적을 남기며 갈등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 역시 현대는 물론 과거부터 이슬람교와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해 서로 대립·경쟁하며 깊은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는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라고 말한다.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 7세기에 발흥한 이슬람이 여러 세기에 걸쳐 정치적·군사적·종교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분석하고 이슬람에 대한 균형 있는 정보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기독공보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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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국가의 출생률이 감소하고, 높은 출생률과 개종활동 때문에 이슬람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이슬람이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서는 7세기에 발흥한 이슬람이 이후 여러 세기에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슬람 선교에서 직면하게 되는 실제적인 도전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학문적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매우 재미있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 Richard Yoon (박사, 미국 Underwood University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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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정복하는 나라마다 세금 경감을 통해 사람들의 환심을 얻기도 하고, 인두세(지즈야)를 부과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어느 정도 허용해 주기도 했습니다. 개종하면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고 물질적 이익을 얻게 함으로써 이슬람으로 집단개종을 유도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슬람은 이집트, 북아프리카와 스페인까지 정복지에서 기독교를 고사시켜 나갔습니다.“ - 강대흥 (선교사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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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후 등장한 유일한 세계종교인 이슬람은 처음부터 기독교와 고통스런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유일신 신앙의 공통의 기반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종교의 만남은 반목과 충돌로 이어져왔습니다. 광범위한 자료를 토대로 비잔틴과 페르시아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난 부족 종교였던 이슬람이 어떻게 세계로 확장되어 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 김아영 (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한국이슬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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