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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빈 그릇 앞에 두고 달빛 서재 봄밤의 파접罷接 별 아래서 거먹구름 밤, 소쩍새 우는 백련 동백 8월 끝머리에서 변새邊塞, 화살나무는 봄빛 한 점 홍엽전정紅葉傳情 금니 유감遺憾 우주 쇼 풀리지 않는 노여움으로 인생 정류장 제2부 늦저녁 안부 봄빛 시집 서운암을 거닐다 폭설, 내리다 오후 네 시의 봄빛 물방울 삭풍朔風 앞에서 봄 끝 길다 오름 신전 정월 세한도 눈 오는 날에 그곳, 굴피집 그 동네 골목길은 어떤 존엄성 근황, 너에게 제3부 사막 밤이 깊었다 버스는 떠나가고 인생 동화 평일 고해苦海 내설악, 단풍 아래서 영웅 돋을볕 들녘에서 꽃의 화엄 월경을, 했다 지독한, 사랑 2018, 폭염 오죽 잘났으면 내 생의 품사학 한글수업시간 가시엉컹퀴에게 가을입디다 캔 음료수를 마시면서 제4부 흘러간다 봄의 약사略史 평일의 문장 배롱나무 저 가지 끝에 눈 내리는 밤 목련꽃 환한 날 오월의 숲에서 목포, 가을 바다의 詩 한 잎의 사랑 어머니의 도마 붉은 귀향 식민의 밤 한 시대를 건너는 법 둑방길 저녁 대구, 시월의 그날 가을볕에 대한 기억 청도, 그곳 먹먹한날 제5부 지구별 통신 1 지구별 통신 2 지구별 통신 3 지구별 통신 4 지구별 통신 5 지구별 통신 6 지구별 통신 7 지구별 통신 8 지구별 통신 9 지구별 통신 10 · 해설_유성호_ 이 저녁 천지간에 그리움을 깔아놓는 일 ―오종문의 시조 미학 |
吳鍾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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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살짝 닿아도 갈잎처럼 바스라질
어둠 속 별을 가둔 무량한 이 고요함 누추한 바람 서재에 만월 달빛 찾아왔다 발정난 들고양이 긴 밤을 밀어올리고 두꺼운 책장 속에 수자리 선 낱말들이 세상이 너무 궁금해 마음 길을 내고 있다 변새邊塞 뻐꾹새 울음 산처럼 무거워서 참나무 잔가지를 부러뜨리는 고단한 날 큰 나라 백성이 되어 개활지를 내달린다 ---「달빛 서재」중에서 한 권의 시집 속에 탈고된 성전의 봄 얼마나 많은 꽃이 피기도 전 스러졌던가 하늬 끝 칼날을 지나 구름 밟고 떠났던가 삼월과 오월 사이 태어난 사생아 같은 치열한 세상 하나 마음 끝 오르기까지 구름을 연못에 던진 바람의 몸 보았다 심장의 체온이 흐른 은유의 꽃숭어리 홀로 꿈꾸게 한 것 품을 수 있었을 때 얼룩진 독백을 접고 사랑 하나 들였다 와락 안아도 좋을 숨이 멎는 골목 달빛 눈빛 너무나 깊어 눈물에 이르지 못한 봄 그늘 앉기도 좁은 강물 소리 참 멀다 ---「봄밤의 파접罷接」중에서 지상에 떨어지는 한 잎의 푸른 저녁 망초꽃 숨겨 놓은 천기를 읽으려고 달무리 바람의 뼈들 운행하는 별을 본다 드넓은 우주 평야 참혹한 꽃 은하수 진화를 계속하는 별 궤적의 결을 따라 켜켜이 흙먼지 생이 움칠 몸을 뒤척인다 홀로이 먼저 떠난 봄꽃도 늦는다는데 사람 기다리는 일 뭐가 그리 어려울까 상처 난 별자리들이 와락 품에 안긴다 ---「별 아래서」중에서 낮은 산등성이에 살 발라낸 시詩가 있다 그 길밖에 없다는 듯 허공을 붙들고 살며 시위를 떠나지 못한 절규하는 시?가 있다 바람에 선동당하며 뻐꾹새가 목을 풀던 그 울음 받아쓰는 전쟁터 전사 같다 아니다 영웅과 같다 순교하는 투사처럼 변새 외재적 불빛 마음에 아스라하다 고요를 깨트리고 깨달은 의미처럼 과녁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변새邊塞, 화살나무는」중에서 B병동 머물렀을 때 남은 생을 생각한다 노동의 인질이 된 암울했던 인간사가 옷 사이 연한 공기를 알몸으로 만진다 일생 현기증 나는 뜬세상 부둥켜안고 그토록 아름다운 그늘 거둬들이기까지 아껴둔 눈물 한 방울 파도처럼 높았다 곤궁한 한 계절이 위태롭게 건너가고 버스 맨 뒷자리에 풀어놓은 봄빛 한 점 따뜻한 존엄의 숨을 불어넣고 떠났다 ---「봄빛 한 점」중에서 보리밭 봄눈들의 주체못한 한가로움 종일 어쩌지 못해 한가지로 수작 건다 우르르 몰려나와서 참던 말을 터트린다 웅크린 낱말들이 문장 속에 깨어나고 시절은 시절대로 무한대로 흘러가서 들바람 콸콸 쏟으며 젖어가는 중이다 흙발 속 불덩이로 타오르는 것이리라 필경 먼 휘파람에 젖어가는 것이리라 한 사람 여생의 봄을 함께 사는 것이리라 해 뜨고 해 지는 일 한가지로 바라볼 때 푸르게 더 푸르게 나부끼는 풀꽃 심상?象 마침내 봄빛 깨치고 은유 하나 새긴다 ---「봄빛 시집」중에서 그예 모란이 졌다 눈물도 뚝뚝 졌다 간혹 외로웠구나 사는 일도 잠시인지라 한철을 건너가는 데 너를 잃고 서 있다 참말로 그날 그때 꽃 맵시는 이뻤다고 연둣빛 스며드는 오월의 바람 사이 사랑은 낙화 직전의 봄을 밟고 떠났다 한 날은 흙이 되고 돌덩이가 되더라도 또 한날은 구름 되고 하늘이 될지라도 사월은 눈빛이 짧다 몹쓸 봄 끝 참 길다 ---「봄 끝 길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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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 시조 텍스트에서 찾은‘ 풀빛’ 시학 !
오종문의 시조는 내면과 사물의 접점에서 발원하여 세계 해석의 유추 가능한 지점을 선명하게 부조(浮彫)하는 창의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우뚝하다. 그는 직정 토로나 사실 묘사의 양 편향을 가뿐하게 뛰어넘으면서, 내면과 사물이 부딪치는 현장이 바로 ‘시적인 것’의 발원지라는 자각을 줄곧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는 이 짧은 양식을 통해 인지 경험과 초월 경험을 동시에 치르게 되는데, 그러한 정서적 감염을 꾀하려는 의지가 오종문의 시조 미학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할 것이다. 절제된 언어와 시상을 담은 단시조가 ‘시인 오종문’의 존재론을 이렇게 품격 있게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오종문 시인은 자연이 품은 풍경과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일에 매진해 간다. 이제 우리는 시인의 중요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억과 그것의 심미적 형상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재현 과정 외에도 그는 자연 사물이나 현상을 삶에 대한 해석의 상관물로 활용하고 있는데, 가령 그것은 삶의 국면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의 시조에 나타난 자연 세목은 단순한 관조 대상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구체적 정서가 투영된 상관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오종문 시인은 이러한 원리를 시조가 가지는 형식 미학적 장처(長處)를 최대한 살려 구현해 가고 있다. 자연 사물을 통한 존재론적 해석과 성찰 과정이 여기서 생성되고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의 범례(範例)가 되는 시조 작품들은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인생론적 경향을 띠면서 고전적 성정과 깨달음을 우리에게 하염없이 전해준 것이다. 오종문 시조 역시 이러한 고전적이고 인생론적인 질감과 무게를 지니면서, 섬세한 사유와 감각을 거느리고 있는 우리 시대 정형 미학의 대표 사례일 것이다. 오종문의 시조는 이처럼 초월과 안착,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같은 대립적 지표들을 한결같이 재구성하면서 서정시를 통한 상상적 전회(轉回)를 감행하고 있다. 우리도 이 저녁 천지간에 그리움을 깔아놓는 그의 일을 따라 우리의 사유와 감각을 새롭게 갱신해 가게 된다. 정형 양식인 시조는 언어의 이러한 이중적 욕망을 동시에 표상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의미 지향과 탈(脫)의미 지향의 욕망을 균형감 있게 결속하면서 ‘시적인 것’의 내용과 형식을 이루어온 것이다. 오종문의 이번 시조집은 이러한 균형 아래서 특유의 아름다운 파문을 그려냈다. 그가 그려낸 아름다운 파문이란 짧은 언어를 통한 사랑의 회상, 자연 사물을 통한 해석과 성찰, 초월과 안착의 심상 제시 등이고, 그것을 모두 감싸고 있는 것이 ‘사랑’의 에너지일 것이다. -유성호 평론가/교수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어떤 작품을 시인의 의도대로 해석해서 공감하는 일이 가능할까.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까. 그런데도 시조를 읽는 이들은 그 글자의 세계로 빠져들어 난독難讀의 어려움을 뚫고서라도 시인의 심중心中을 꿰뚫어 보고자 시인이 지은 미로를 기꺼이 헤맨다. 시인과 독자 사이에 놓인 글자가 만든 시조 행간의 미로에는 탈출구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입구도 출구도 모호한 글자 사이사이에 놓인 심연 속에서 헤매는 것, 바로 거기서 시조 읽기의 즐거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