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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씨부터 만난 사람
2 운명아, 덤벼라! 3 한서 이불, 논어 병풍 4 백탑동 사랑방 5 누이여! 아, 누이여! 6 중국을 밟다 7 청을 배우리라 8 대궐에 들어가다 9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10 눈앞이 캄캄해지다 11 반성문을 써 올리라 12 세상에 나 홀로구나 13 벗 만나러 가는 길 14 작가의 말_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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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음을, 나의 운명이 나만의 운명이 아닌, 우리의 운명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세상은 우리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 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여기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세상이 곁을 내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자리를 만들면 된다. 운명이 나를 휘두른다면, 나도 운명을 휘두를 테다.
운명아, 덤벼라! 내가 맞서 주마. --- p.26 그런데 요동 벌판에 서고 보니, 내 삶을 가두던 높은 담장도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원해 온 대로 요동 땅을 밟았듯, 내 꿈도 내 길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야지요.” “가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덕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씽긋 웃었다. 이젠 내 후손에게도 꿈을 가지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요동의 흙바람을 씻어 내듯, 나는 슬쩍 눈가를 훔쳐 냈다. --- p.63 “박제가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하니, 분부대로 행하라.” 규장각? 검서관? 규장각이라면 주상 전하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새로이 세운 기관이었다. 조선의 학문을 새롭게 세우려는 전하의 뜻을 담은 곳이었다. 게다가 검서관이라면 책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는 땅에 납작 엎드렸다. 왈칵 눈물이 솟았다. 서얼 출신으로 이 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줄 알았건만, 중국에 갈 기회도 있었고 이번엔 정식 벼슬을 얻어 궁궐에 드나들게 된 것이다. 꿈만 같았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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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와 이덕무의 삶과 우정
가난과 서얼이라는 제약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한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와 이덕무. 30년 세월을 함께한 두 사람의 특별한 우정! “우리 처지가 그렇긴 해도,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 어디 있겠나?” 가난과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게 한 박제가와 이덕무의 우정 『운명아, 덤벼라!』는 가난과 신분이라는 굴레에 지지 않고,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한 실학자 박제가와 이덕무의 삶과 우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박제가는 좋은 글씨로 일찍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이덕무 역시 『간서치전』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인물입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두 사람이었지만, 조선 사회는 이들이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벼슬길에 오를 수 없도록 했지요. 첩의 자식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따라오는 가난 역시 박제가와 이덕무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어느 날, 설움에 받친 박제가가 이덕무를 찾아가 신세를 한탄하자 이덕무는 말합니다. “우리 처지가 그렇긴 해도,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 어디 있겠나?” 그 말에 박제가는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은 스스로 만들겠다며 다짐합니다. 신분과 가난이라는 굴레가 두 사람의 벼슬길은 막았을지언정, 단단한 마음까지 스러지게 하지는 못한 것이죠. 백탑 아래, 서얼 문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 이덕무는 박제가를 처음 만나고, “너무 마음에 들어 즐거움을 견딜 수 없었다”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박제가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덕무에게 그날의 만남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박제가는 키가 작고 땅땅한 체격인 반면, 이덕무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습니다. 성품도 이덕무는 부드럽고 온화하다면 박제가는 할 말이 있으면 꼭 할 만큼 거침없었지요. 나이도 이덕무가 9살이나 많았습니다. 이처럼 외모도, 성격도, 나이도 달랐지만 두 사람 다 이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굳건함과 글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습니다. 첫 만남 이후 박제가와 이덕무는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친해졌고,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말하는 ‘백탑’ 아래 모여 시를 쓰고 글을 나누며 학문을 키워 나갔습니다. 백탑동 사랑방에 모인 서얼 출신의 문인들은 차별의 벽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나아가 조선의 변혁을 꿈꾸었습니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박제가와 이덕무의 인생이 늘 꿈결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둘은 한때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수많은 책을 집필하고 청나라에 다녀오는 행운을 누리지만, 서얼이란 신분과 가난은 끝까지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이덕무는 오랜 검서관 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박제가는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게 됩니다. 이렇듯 세상은 이들에게 시시때때로 분노와 절망을 안겨 주었지만, 박제가와 이덕무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생각하며 거친 세상의 파도를 견뎌 냅니다. 이 책을 쓴 강민경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박제가와 이덕무가 나눈 우정처럼, 독자들 곁에도 함께 웃고 함께 울어 줄 든든한 친구가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힘을 내며 살아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는 두 사람의 우정처럼, 이 이야기가 독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