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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_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01_한 예술가의 초상02_유년의 빛과 그림자03_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가다04_사랑에는 참된 힘이 있다 05_영감의 근원06_공동체와 유토피아07_파국으로 끝난 꿈의 공동체08_정신병이라는 영감09_영원한 휴식10_정다운 분신, 테오 EPILOGUE_영원의 문 앞에서 반 고흐 예술의 키워드반 고흐 생애의 결정적 장면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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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 반 고흐의 인생은 주로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보낸 전기와, 프랑스의 파리,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보낸 후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는 큰아버지 센트가 운영하던 구필화랑 덴하흐 지점의 화상으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때 유명 화가들과 작품들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는데, 특히 장 프랑수아 밀레를 필두로 한 바르비종파의 자연 친화적 화풍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림 파는 일을 그만둔 뒤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종교적 포부를 안고 평신도 전도사로서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보리나주 광산촌으로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교단으로부터 전도사로서 부적합하다는 판결을 받은 그는 종교 대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반 고흐의 인생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파리에서는 무엇보다도 인상주의 사조를 접하면서 그의 그림도 초기의 어둡고 무거운 색조에서 강렬하고 생기 있는 색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색채 속에서 삶을 찾고자 했으며, 진정한 그림이란 색채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파리보다는 보다 밝은 빛과 따뜻한 색채가 있는 곳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밀레와 앙리 루소가 주축이 되어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반 고흐의 아를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장 폭발적으로 분출한 생의 마지막 3년의 시작점이다. 밝고 화사한 색으로 뒤덮인 남프랑스 아를의 봄은 마치 그가 꿈꾼 유토피아에서 온 편지 같았다. 그리고 반 고흐가 테오의 돈으로 심혈을 기울여 꾸민 ‘노란 집’은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꿈의 아지트 같았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 건설의 동지라고 여긴 폴 고갱과의 갈등이 끝내 비극적 결말로 치달으면서 반 고흐의 꿈도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이후 정신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그는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있는 생폴드모졸요양원에서 약 1년간 머물렀다. 당시 반복되는 발작과 불안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 〈꽃핀 아몬드나무〉를 비롯하여 〈올리브나무〉, 〈사이프러스나무〉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이후 요양원을 떠나 파리와 가까운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작은 마을로 거처를 옮긴 반 고흐는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드넓게 펼쳐진 밀밭, 포도밭, 나무, 정원 등을 그렸다. 특히 죽기 얼마 전에 그린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밑밭〉,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생의 끄트머리에 선 그가 느꼈을 절망감과 고독감이 사무치게 묻어난다. 1890년 7월, 그는 저물녘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고, 이틀 뒤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살아생전에 그는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그의 예견대로 이제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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