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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일기 _007남쪽에서 _041영향 _077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_117시차와 시대착오 _161경로 이탈 _215당신의 밝은 미래―현대미술 작가로 살아남기 _263JHY를 위한 짧은 기록 _303해설|김보경(문학평론가) 낭만과 환멸이 지나간 후에 _341작가의 말 _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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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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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원 테이크로 찍는 영화 같은 것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며무슨 일이 벌어져도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전하영 소설의 중요한 특징은 여성 청년 예술가의 삶을 한국문학에서 익숙하게 다뤄져왔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전하영의 인물들은 예술을 성역화하고 작품을 위해 인생을 내던지며 자기파괴적 결말로 내달리던 그간의 예술가 캐릭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전하영이 스스로 소설 속 등장인물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듯이, 그의 인물들도 사랑해 마지않는 예술과 생활 영역 간의 관계를 건강하게 재설정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전하영은 여성 청년 예술가가 오래도록 놓지 못하던 ‘낭만화된 예술’에 대한 기대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그리며 새로운 시대의 여성/예술가 소설을 선보인다. 데뷔작 「영향」에는 전하영 소설의 이러한 지향점이 일찌감치 암시되어 있다. 「영향」의 주인공 ‘난희’는 서른 살을 넘긴 비혼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위치성으로 인해 다양한 각도에서 차별받는다. 그를 둘러싼 차별적 시선은 “이제 더 팔 게 없겠네요”(81쪽)라는 모욕적인 언사로 압축되어 던져진다. 난희는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과 시간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하염없이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그러던 난희가 지난 노력의 기억과 관성에 얽매이기를 멈추고, “내게도 뭔가 팔 게 있을지 생각해봐야지”(115쪽)라고 되뇌며 생계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도모할 생활의 현장으로 나가보기로 마음먹는 모습은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또 한 편의 초기작 「남쪽에서」에는 청춘을 바쳐 쓴 시나리오를 어떻게든 영화화해보려는 ‘남작가’가 등장한다. 남작가의 시나리오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로 지적”(46쪽)되는 등의 수모를 겪으며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다. 암묵적인 경쟁 대상으로 삼았던 한 ‘천만 영화’를 관람한 남작가가 차츰 현실을 자각하며 청춘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동료인 ‘손감독’은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과 기대를 놓지 않고 남작가의 주위를 맴돌며 열정과 치기를 토해낸다. 어느 날 뒤늦게 문제의 ‘천만 영화’를 본 손감독이 남작가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통화하던 두 사람은 이제 곧 그들의 청춘이 진정한 완결을 맞을 것임을 감지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전화기를 부여잡은 채 함께 통곡하는 장면은 비극의 해소를 예비하며 진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예술에 대한 허구적 상상을 벗어던짐으로써, 전하영의 인물들은 실체 없는 예술에 특권을 부여하고 그것에 휘둘리는 대신 예술을 일상화하고 생활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다. 「경로 이탈」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미술관의 부설 상영관으로 영화 필름을 배달하는 노동을 반복하며 몽유병에 걸린 듯한 기분을 느끼는 인물 ‘최사해’를 통해 예술과 생활의 경계면을 따라 배회하는 존재의 내면 풍경을 소설화한다. 「당신의 밝은 미래─현대미술 작가로 살아남기」는 젊은 여성 예술가 ‘당신’이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겪어내는 처절한 과정을 증언하며 ‘당신’이 예술가들을 둘러싼 불건강한 현실과 결별할 때 “당신 인생의 가장 밝은 날이 다가”(302쪽)올지 모른다고 예언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일견 반어적으로 읽혔던 이 단편의 제목이 뜻밖의 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점은 이 소설이 지닌 묘미이다. 전하영 소설은 예술에 대한 빛바랜 낭만에서 벗어난 뒤로도 계속되는 ‘이후의 삶’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인생의 여러 목표 중 하나일 예술적 성취가 인생 그 자체보다 중요해진다면, 그때 예술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일상생활보다 중요해진 예술에는 어떤 비합리적인 아우라가 덧씌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과 삶의 선후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포착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차를 조율해나가는 소설쓰기를 통해, 전하영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물들어 있던 시대착오들을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마지막 꺼풀 밑에는 꿈을 좇는 동안 몇 번을 실패하고 얼마나 깊이 좌절하든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진실이 건조한 위안처럼 자리한다. 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쓰인 전하영의 소설들은 연민이나 단정 없이 인생이라는 영화를 차분히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을 닮았다. 그 촘촘한 발자국들의 궤적이 그의 첫 소설집에 한 행 한 행 수놓아져 있다. 작가의 말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 작은 방에서부터 소설을 써왔던 건 아니었을까. 왜 하필 소설인가, 라는 질문에 그것은 언제나 소설이었다는 대답. 어릴 적 그 방에서 시작한 이야기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지난 수십여 년을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성과 없는 허무한 모험들에도 다 제각각의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대는 작은 여자아이들의 방은 이제 내 마음속에 있다.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은 소설이었다. 그 세계는 거대하지만 단 한 권의 책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기도 하다.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한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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