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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머리글 ·프롤로그 1부. 수집 1. 오래된 ‘수집 유전자’-모정의 상실과 수집 2. 쓸데없는 짓을 하는 중학생-수집의 즐거움과 단편소설 ‘친구’ 3. 죽으려 했지만, 수집은 하고 싶었던-헌책방 키드의 서양 미술 스크랩 4. 나만의 ‘상상의 미술관’-고3 때 만든 『서양미술전집』 10권 5. 한국 미술자료를 수집할 결심-고3 때 본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의 감동 6. 막노동과 미술자료 수집-청년 김달진의 일과 꿈 7. 수집 경험과 미술 잡지 기사-월간 『전시계』 시절의 빛과 그늘 8. 삶을 바꾼 만남-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 관장을 만나다 9. 임시직으로 시작해 기능직까지-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근무의 시작과 끝 *수집의 열매인 글들 1. 관람객은 속고 있다 2. 미술자료센터를 설립하자 3. 미술연감은 발행되어야 한다 2부. 공유 1. 묵묵히 쏘아올린 ‘김달진미술연구소’-가나미술문화연구소에서 김달진미술연구소로 2. 손 안의 전시 안내 플랫폼-한 달치 전시회 가이드북 『서울아트가이드』 3. ‘수집의 밀실’ 옆 ‘공유의 광장’-월간지와 미술 종합 포털 ‘달진닷컴’, 그리고 소셜 미디어 4. 수집의 꽃, 미술자료박물관-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탄생 5. 땀으로 일군 한국 미술가 ‘D폴더’-작가 335명에 대한 개별 스크랩북 6. 아트 아키비스트와 라키비움-한국미술정보센터와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7. 40여 년 걸린 ‘한국 미술가 인명록’-『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Ⅰ』과 『미술인 인명사전』 발간 8. 마침내 품은 한국 최초의 미술 잡지-일생일대의 수집품, 『서화협회보』 9. 하마터면 한국 미술사에서 사라졌을-1952년 ‘벨기에 현대미술전’, 1958년 에카르트의 기고문 *공유의 뿌리와 가지 1. 음표 같은 ‘하루 일기’, 악보 같은 ‘60년 일기’ 2. 미래로 디지털 사료를 송출하는 백발의 유튜버 3. 소장품 속의 일제 강점기 미술 ·연보 ·참고자료 |
김재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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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는 고향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김달진은 거기에 진열된 알록달록한 공산품 포장지를 눈여겨보고,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가 중학생이던 1960년대 후반에는 공산품 회사가 많이 생겨났다. 1965년에 농심이 창립했고, 1967년 롯데제과가 설립되었다. 롯데제과에서는 ‘쿨민트껌’, ‘바브민트껌’ 같은 껌을 출시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껌 상표는 관심을 가지고 볼 정도로 특별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귀했다. 학생들은 씹던 껌을 책상 밑에 붙여놓았다가 다시 떼서 씹는 일도 흔했다. 김달진은 다양한 껌 상표를 모았다. 이는 곧 담뱃갑, 우표 등의 수집으로 확장되었다. (중략) 때로는 일본에서 나온 『서양미술전집』 문고판 책도 대전 동구 원동의 헌책방에서 사 모았다. 가끔 『주부생활』이나 『여원』 같은 잡지는 명화를 한 달에 한 점 컬러 화보로 소개했다. 서양 명화는 보이는 대로 모았다. 깔끔하게 오려낸 명화를 흰 도화지에 붙이고 자세히 감상했다. 수집한 것들을 방에서 만지작거리는 기쁨이 컸다.
---「1부. 수집」중에서 김달진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화 도판을 스크랩해서 색 켄트지에 정리했다. 『주부생활』, 『여원』, 『독서신문』, 『신동아』 같은 잡지에서 명화를 찾아 그것을 오려서 붙여 두었다. 해외 미술관에 가서 원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보지 못했다. 박영사에서 출간한 이영환의 책 『서양 미술사-미술 현상의 시원부터 오늘의미술까지(1965)』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모으고 알아가는 재미가 컸다. 김달진은 이 책보다 더 많은 도판을 수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하나씩 오려서 모았다. 나중에는 그것들을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으로 분류했다. 르네상스에서부터 20세기까지 시대별, 유파별로 색 켄트지를 이용해서 구분했다. 오귀스트 르느와르(1841~1919)의 일반적인 도판은 거의 다 모았을 정도였다. 서양 미술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도판을 유파별로 모았다. 스크랩북이 10권이었다. (중략) 이렇게 김달진의 머릿속에는 ‘상상의 미술관’이 완성되었다. ---「1부. 수집」중에서 김달진에게는 수집 방향을 바꾸게 한 결정적인 전시회가 있었다. 『서양미술전집』을 완성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 1972년 7월 18일 화요일에 관람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6. 27~7. 26)’이 바로 그것이다. 그 전시회를 관람하고 김달진은 감동이 일었다. 수많은 우리나라작품을, 대표 작가 작품을 실물로 처음 접한 것이다. 도판으로 볼 때와 실물은 감동의 질부터가 달랐다. 이 전시는 우리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72년 경복궁 내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은 처음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대대적으로 선보였는데, 전시 준비 과정에서 많은 근대 미술 작품들이 발굴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소장품의 역사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학예사가 한 명도 없어서 추진위원 15명이 전시를 주도했다. 그동안 인쇄물로 된 서양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실물로 보자 환희에 찬 기쁨과 전율이 함께 일었다. ---「1부. 수집」중에서 김달진은 『전시계』에 근무하면서도 홍익대 박물관 이경성 관장에게 찾아가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포트폴리오처럼 보여주기도 하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특히 미술계에서 오용한 사례를 발견하면 자료를 근거로 수정하여 전달한 일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필요성을 인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예를 들면, 화가 오승우(1930~2023)는 1972년도에 5·16 민족상을 받았다고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김달진이 자료를 찾아보니 5·16혁명 10주년 기념 작품 모집에서 회화부에 당선된 것이었다. 1972년도 학예 부문은 ‘해당 없음’으로 발표되었다. 이처럼 그는 단순한 미술자료 수집에서 벗어나 자료와 자료의 행간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이경성 관장은 이런 김달진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필요한 인재로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김달진은 이경성 관장을 인격적으로 흠모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취직되기 전해에 새해 인사를 가겠다고 한 적도 있고, 이경성 관장이 자기 집에 찾아오는 꿈도 꾼 적이 있었다. 김달진은 고졸 학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국가 기관에 자리를 만든 셈이다. ---「1부. 수집」중에서 김달진은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직원으로서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인 것은 좋았다. 하지만 가정사로 봤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받는 기능직 월급으로는 가족을 돌볼 수가 없었다. 미술관에서 나가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별정직 7급으로 계약이 3년간 묶여 있다가 풀린 상황이어서 스스로 그만두든지 다시 기능직 10등급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능직 10등급은 타자수나 경비와 같은 직급이었다. 그 월급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내까지 〈한겨레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하는데다 왜소증으로 호르몬 주사를 맞는 아이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김달진은 퇴직을 결심하고, 가나화랑과 현대화랑, 아트선재센터 같은 화랑이나 사립 미술관 같은 곳에 자리를 알아보며 자신의 색깔에 맞는 다른 직장을 물색했다. 그 과정에서 가나화랑 이호재 대표를 만났다. 가나화랑에 근무하던 전승보(현 경기도립미술관 관장)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중간 역할을 해주었다. 김달진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며 『월간 미술』이나 『가나아트』와 같은 미술 잡지에 글을 기고해 대외적으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이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2부. 공유」중에서 월간지 『서울아트가이드』 발간은 김달진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고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2001년 12월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 일을 뒤로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와 몇 달 후 미술 정보 포털 ‘달진닷컴(daljin.com)’을 개시했다. 『서울아트가이드』와 달진닷컴은 ‘가나미술문화연구소’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가나미술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하던 포켓용 미술정보지 『서울전시회가이드』는 김달진이 퇴사하던 시점에 40회로 마감했다.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면서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고, 2002년 1월 『서울아트가이드』 창간으로 재탄생하였다. 또 달진닷컴을 만들 때는 기술적 지식이 없는 김달진이 ‘가나아트닷컴’을 총괄하면서 지켜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따로 준비 기간과 공백 기간 없이 김달진미술연구소 개소와 동시에 마치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서울아트가이드』와 ‘달진닷컴’을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월간 『전시계』에 근무할 때 하던 일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가나아트를 거치면서 숙성·확장한 점도 한몫했다. ---「2부. 공유」중에서 이제는 브랜드가 된 자신의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통해, 그는 소장한 미술자료를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에 주력하고 있다. 더 많이, 더 널리 공유하려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미술문화연구소 자료실장 시절 『서울전시회가이드』 제작과정에 참여하면서, 또 가나아트닷컴에서 인터넷 사업을 추진하면서 배운 기법을 십분 활용하여 미술자료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1년 1월에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하여 갤러리를 방문하는 관람객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고, 이듬해 9월에 선보인 미술 종합 포털 ‘달진닷컴(www.daljin.com)’에 미술계 뉴스, 미술인 인명사전 등을 매일 업데이트하여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하고 있다. 달진닷컴은 『서울아트가이드』의 확장판으로, 콘텐츠 자체로만 보면 일종의 ‘온라인 아카이브’라고 할 만하다. ---「2부. 공유」중에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실에는 소파가 놓인 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미술자료로 채워져 있다. 특히 두 개 벽면은 바닥부터 천정까지 흰색 스크랩북으로 가득하다. 백남준, 김환기, 천경자 같은 한국 대표 작가 335명을 다룬 신문, 잡지 기사와 자료를 수집에 놓은 스크랩북이다. 스크랩북 이름은 ‘D폴더’다. ‘D폴더’의 ‘D’는 ‘Daljin’의 ‘D’와 ‘Data’의 ‘D’, 그리고 ‘Document’의 ‘D’를 동시에 의미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아니면 제공하지 못하는 데이터를 보유했다 해서 ‘달진 폴더’라고도 한다. 김달진은 매일 D폴더에 둘러싸여 사무를 본다. 오늘 신문이 소개한 작가에 관한 기사를 다음 날 D폴더로 정리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D폴더는 항상 현재 진행형 작업이다. D폴더에는 각 작가의 자료를 총체적으로 정리했다. 가로 29.5 센티미터, 세로 38.5센티미터로 제법 큰 크기다. D폴더에는 작가 이름과 생몰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작가 이름은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작가 한 명이스크랩북 여러 권으로 된 것도 있고, 한 권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백남준 이름이 붙은 스크랩북은 열네 권, 이중섭과 김환기는 열 권, 천경자는 아홉 권이다. 김달진은 이렇게 한국 근·현대미술 주요 작가 자료를 D폴더로 아카이브화했다. 스크랩북 안에는 김달진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간 직접 모은 자료들이 있다. 작가 관련 신문·잡지 기사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미술자료가 가득하다. ---「2부 공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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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과 공유라는 키워드로 김달진을 조명한 첫 번째 책!
이 책은 한국 현대미술가들을 다룬『처음 가는 미술관 유혹하는 한국 미술가들』의 저자이자 조각가 김영중 선생의 딸인 김재희가 그런 김달진에 대해 조명한 첫 번째 책으로, 수집에 매료된 한 소년이 미술자료 전문가로 거듭나고, 수집한 미술자료를 공적인 매체와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까지의 과정을 주인공의 삶에 밀착해서 조명한 전기적 에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김달진 관장을 만나 16차례 인터뷰하고, 고등학생 때부터 그가 써온 일기를 읽으며 그의 그늘진 인생과 옮겨 다닌 직장, 수집에 얽힌 일화와 생각, 미술자료 수집과 관련된 정보 등을 두루두루 챙겼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술자료 전문가로서 김달진 관장의 생을 ‘수집’과 ‘공유’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얼개를 짜 ‘집필했다. 참고로 공유 시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을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한 때로 잡았다. 1부는 김달진 관장의 인생을 관통한 ‘오로지 수집’을 다루었다. 이 부분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과 집안 사정, 학생 때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했던 수집과 수집에 대한 생각, 고교 졸업 후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수집을 놓지 않았던 일화, 월간지 기자 시절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딱하고 어려웠던 과정,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글로 썼던 제언 등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수집의 근원과 수집을 향한 그의 진정성, 수집의 결과물과 꿈을 펼치기 위한 대담한 활동, 전문성의 발휘 등에 무게를 두었다. 2부는 김달진 관장의 ‘널리 나누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그만두고 『가나아트』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한 후, 월간지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하고, 달진닷컴을 오픈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그뿐 아니라 ‘미술자료 플랫폼’이 될 미술자료박물관을 열어 일반인들에게 열람을 허락하고, 다양한 전시 활동으로 자료를 공유하는 과정도 들여다보았다. 또한 오프라인 매체는 물론, 온라인으로도 열심히 기록하는 김 관장의 실천정신도 챙겨 담았다. 새로운 가치 창조, 수집에서 공유로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집필 동기와 개인적 바람을 이렇게 전한다. “이 책에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를 알아가는 작업으로서의 ‘수집’,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으로서의 ‘공유’다. ‘내’가 수집하고 싶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내놓기 힘들 정도로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시켜서 한 일이야말로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내’ 마음의 본진(本陣)이다. 또한 애정을 가지고 관찰해서 얻은 결과물을 보듬는 일은 새롭게 알게 된 자신을 긍정하는 것과 같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 책에 소개된 김달진이다. 수집은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될 수 있으나 그것을 공유하면 풍성한 문화의 씨앗이 되어 후대에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한창 전 세계가 한류열풍으로 들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 미술도 그 토대를 마련하려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중에 왜 일등 별만 기억해야 하냐. 이등 별, 삼등 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라는 김달진의 말처럼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공유해 후대에 남겨야 할 것이다. 2013년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의 ‘직업 속 가치 탐구’ 코너에서 김달진은 미술자료 수집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술자료를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데 그쳤다면 인정받을 수 없었겠죠, 그런데 저는 그것을 사회와 공유했어요.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펴냈고, 미술 잡지를 창간하고,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과 ‘한국미술정보센터’를 개관했죠, 자료 하나하나를 우리 현대미술의 역사 자료가 되도록 노력했어요.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와 다른 저만의 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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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본적으로 김달진 한 개인의 서사를 담고 있지만, 틈틈이 등장하는 한국 미술전시의 역사와 소장품의 숨은 이야기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더욱이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으로 교과서에까지 실린 그가 자기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삶을 대하고 살아왔는지, 빙산의 일각만 알고 있던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새로웠다. 물질적인 것만 좇고, 현실의 벽 앞에서 허우적거리며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상임고문,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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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방대한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는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탄생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미술 아카이브 체제의 확립이라는 거대한 작업에 바친 한 인간에 대한 증언이다. 또한 한 인간이 의지와 집념으로 문화 창조의 길을 개척한 ‘인간만세’의 이야기다. 누구 못지않게 미술을 사랑한 김재희라는 한 미술 도슨트가 미술 아키비스트 김달진에게 헌정한 책이기도 하여 더욱 그 의의를 더한다. -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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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옮기려고 삽질한 사람을 가리키는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그들이 역사를 바꾸기 때문이다. 한평생 우공이산으로 살아오며 산을 옮긴 사나이 김달진. 신념과 끈기로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헤치며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길을 만든 그의 삶이 당신에게 큰 감동을 줄 것이다. -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현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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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넝마주이 전설이 이제 역사가 되었다. 항상 돌덩이 같은 자료 가망을 멘 탓에 받은 양쪽 어깨 수술은 그에게 훈장이 되었다. 한국 라키비움(도서관+기록관+박물관)의 전형이 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이 남자의 질긴 뚝심이 일궈낸 왕국이다. ‘걸어 다니는 미술 백과사전’, ‘움직이는 미술 컴퓨터’에서 미술 아키비스트, 나눔의 유튜버로 진화하고 있는 김달진 관장의 삶이 여기 있다. -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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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미술사전 김달진! 미술에 미쳐 관련 자료를 수집한 역사가 어느덧 50여 년에 이르렀다. 이제 김달진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되었다. 매일 전시장을 방문하며 발품을 판 노력의 대가다. 나는 단언한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근면 성실한 김달진 관장의 삶이야말로 타인의 사표가 된다고. 이 책은 그런 그의 삶과 미술자료 수집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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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예술가를 부친으로 둔 저자는 가학(家學)으로 미술에 입문한 후, 미술 관련 글을 쓰고 미술관의 도슨트로 활동하는 등 미술계 저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그런 저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이 시대의 기록자 김달진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특히 저자는 발로 뛰는 수집가 김달진을 한 땀 한 땀 정성 어린 글로 담아 그의 진면목을 한껏 드러내 주었다. -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화첩기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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