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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톤즈 학교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
구수환
북루덴스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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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에세이 top2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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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울지마톤즈 학교』개정판에 붙여

추천의 말_ 감동의 씨앗이 실천의 열매를 맺으리라

감사의 말_ 이태석 신부의 선물을 받으며

프롤로그_ 절망의 황무지에서 빛을 보다

1부 참을 수 없는 이타심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다미안 신부
고아원
아프리카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다

2부 죽음을 잊은 용기

톤즈
마을 성당 운동장
마지막 부탁
다리를 저는 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
일그러진 발을 만지는 신부
자신의 삶을 바쳐
뻥 뚫린 지붕을 양철로 덮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
브라스밴드의 눈물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다시 가져갈 가방

3부 절실하고 헌신적인 실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주위를 살펴보고 함께 사는 지혜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
심각하게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하라

4부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

자신이 보살핀 사람들에게 오히려 감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
자꾸만 자꾸만 나눌 것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도 이런 마음이었습니까?

에필로그

저자 소개1

구수환

 
KBS 피디로 30여 년간 취재현장을 누볐다. 영화 [울지만 톤즈]를 만들며 이태석 신부를 만나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회사 퇴직 후 이태석재단 이사장, 구수환PD 저널리즘스쿨 교장으로 이 신부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있다. 그는 KBS 피디로 [추적60분], [일요스페셜] 등 수많은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취재현장이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화두에서 점점 멀어지던 순간, 운명처럼 이태석 신부를 만났다. [울지마 톤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자는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나눔이 세상을 바꿀 힘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남수단의 이태석 신부 제자
KBS 피디로 30여 년간 취재현장을 누볐다. 영화 [울지만 톤즈]를 만들며 이태석 신부를 만나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회사 퇴직 후 이태석재단 이사장, 구수환PD 저널리즘스쿨 교장으로 이 신부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있다. 그는 KBS 피디로 [추적60분], [일요스페셜] 등 수많은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취재현장이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화두에서 점점 멀어지던 순간, 운명처럼 이태석 신부를 만났다. [울지마 톤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자는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나눔이 세상을 바꿀 힘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남수단의 이태석 신부 제자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한국의 청소년에게는 이태석 정신을 알리기 위해 강연에 힘쓰고 있다.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제자들과 이태석재단의 활동을 담은 영화 [부활](2020)을 만들었다. 저널리스트, 감독으로 노력을 인정받아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분상(1996), 한국방송대상 심층보도부문상(2008),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대상(2011), 도산인상 사회통합상(2021)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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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54g | 150*220*16mm
ISBN13
9791198125699

책 속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이태석 신부와 가까이 지내던 분들을 만났다. 기억은 곧 눈물로 이어졌다. 모두의 눈물이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인제대 의대에서 만난 60대 선배 교수는 내가 의사인데 후배의 병을 지켜만 보았다며 서럽게 울었다. ‘이태석 신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사람들은 그의 이름 석 자에 무너지는 것일까?’ 내가 만난 사람들처럼 나도 이태석 신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 p.27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에 도착한 후 참혹한 전쟁의 그림자를 지켜봤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가고 집과 건물은 파괴되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절망했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희망을 갖도록 했다. 2005년 북수단과 남수단이 평화협정에 사인을 했다. 이태석 신부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격스러워 노래를 만들었다.
--- p.51

톤즈는 밤만 되면 18 세기로 되돌아간다. 전기가 없어 암흑천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손전등이 없으면 걸어 다니기도 어렵다. 불빛이 없으니 하늘의 별빛은 유난히 밝다. 그동안 전 세계의 열악한 지역을 다녀봤지만, 이곳은 정말 최악이었다. 톤즈에 도착한 후 숙소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서울을 떠나기 전, 톤즈 공동체로부터 외국 손님들이 와 있어 방을 내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톤즈에 있는 호텔도 알아봤지만 도저히 묵을 만한 시설이 아니었다. 특히 카메라 담당이 여성이어서 함부로 나가 잘 수도 없었다.
--- p.78

이 신부는 매주 수요일이면 병원에 오지 못하는 마을로 이동 진료를 나갔다. 비포장도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길이 없는 곳도 많다. 마을에 차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파서 모이고, 구경하려 모이고, 개인적인 고민과 동네 민원을 이야기하고 싶어 모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이동진료소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 p.83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 고통의 세월이 배어 있는 자신의 일그러진 발을 만지는 신부를 바라보며 한센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저려왔다. 최근, 유행처럼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한센인의 신발이야말로 맞춤형 복지가 왜 필요하고 어떤 마음을 갖고 임해야 하는 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03

병원 복도 맨 끝에 이 신부가 가장 좋아하던 방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에 그림이 걸려 있다. 원숭이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와 이 신부가 다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신부가 그린 그림이었다. 오토바이도 있었다. 진료를 위해 구입했지만 이틀밖에 타지 못했다고 한다. 한쪽 벽에 한글로 쓰여진 과자 이름이 적힌 상자들이 보였다. 안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가방에 무언가 들어 있었다. 브라스밴드 단복이었다. 1년 반 동안 세탁 한 번 하지 않은 단복, 양말과 스타킹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신부가 떠난 후 지원은 모두 끊긴 상태였다.
--- p.121

12월 초 〈울지마 톤즈〉가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관객이 줄자 영화를 내린 것이다. 흥행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아쉬운 것은 좀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에 더없이 좋은 사례를 이제는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밝은청소년지원센터’의 임정희 이사장이 다른 영화관을 알아볼 테니 재상영을 하자고 했다. 12월 중순 방학을 앞두고 〈울지마 톤즈〉는 다시 스크린에 올랐다.
--- p.162

학생들은 영화를 통해 이태석 신부가 살아온 삶의 근원이 예수였음을 보았고 그것이 자신들이 생각해 왔던 성직의 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정배 교수는 ‘이 신부를 통해 삶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본연의 꽃을 피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물음 앞에서 한참 멀어져 있는 자신을 보고 너무나 부끄러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 p.181

‘이태석 리더십’에는 거창한 구호가 없다. 말보다는 실천이었다. 헌신과 겸손 그리고 진정성, 이것이 톤즈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리더십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 극단을 치닫는 이념 갈등,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는 정치에 대한 불신, 게다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다.
--- p.211

이태석 신부의 삶을 하나의 종교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의 삶이 구현하고 있는 것은 사랑과 헌신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다. 인류의 가치를 실천했기에 종교를 떠나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영웅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만들 수도 없다. 그것은 국민들이 더욱 잘 안다. 성직자라고 모두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무나 아프리카에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부끄럽다며 고백하는 성직자들의 눈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 다.
--- p. 228

이태석 신부가 돌아간 후, 교민들은 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신부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졌다. 이 신부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민들은 이 신부의 정신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09년 1월 17일 ‘미주 아프리카 희망후원회’가 출범했다.
--- p.239

이태석 신부님은 순백의 깨끗한 마음을 지닌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분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한 우리의 영웅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남수단과 한국을 잇는 지렛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랑이라는 자부심이 뿌려졌습니다.

--- p.261

출판사 리뷰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 난지 십삼 년이 되었다. 저자 구수환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깊어지고 있다고 하며 그것을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한 발 더 나가, 저자는 한 사제의 삶이 그렇게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이태석 신부가 전하는 네 개의 메시지’로 콕 집어 독자에게 전한다.

참을 수 없는 이타심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이태석 신부가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참을 수 없는 이타심’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추적하는 구수환은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구수환의 불꽃 같은 시간에 등장한 이태석 신부의 죽음은 우연한 사건이었다. 구수환은 신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부산 기장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언덕, 그곳 성당에 이태영 신부(이태석 신부의 형)는 한센인을 돌보며 함께 지내고 있다. 형제는 부산 송도 가난한 골목길에 놀며, 다미안 신부 일생을 보여주는 영화를 봤다.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 어린 이태석에게 다미안 신부의 삶은 빙의되었을 것이다.
이 신부의 어머니는 열 살 때의 태석을 회상한다, ”새 옷을 사주면 없는 아이들에게 벗어주고 들어왔지요.” 심지어 고아원을 지나가면서, 그 안의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나중에 크면 고아원을 차리겠다는 꿈을 말하던 아이였다.

이태석이 로마에서 부제 서품을 받을 때, 이미 그는 아프리카로 갈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 무덤덤한 결정에, 어머니는 슬퍼했으면서도 몸부림치며 아들을 잡을 수 없었다. 소년 이태석은 중3 때 「묵상」이란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의 가사에 이태석 신부가 온몸으로 말하는 ‘참을 수 없는 이타심’의 메시지를 잉태하고 있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죽음을 잊은 용기
그는 맨손으로 한센인들 발을 만지며 치료했어요

두 번째 메시지는 ‘죽음을 잊은 용기’이다. 구수환은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접하고 직접 아프리카로 날아가기로 했다. 이태석 신부가 먹고, 자고, 숨 쉬고, 웃음을 짓던 생생한 현장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구수환의 톤즈로 향하는 시간은 길 없는 길을 앞에 둔 엄숙한 여행자의 순간이었다. 마침내 이태석 신부가 지은 병원과 건물에 도착했다. 그의 땀 냄새가 배어 나왔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마을 성당 앞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썰물처럼 구수환의 온몸을 덮쳐버렸다. 바로 ‘사랑해 당신을’ 노래였다. 감동을 안고 구수환은 잠자리에 들었다. 각오는 했지만 그 시간은 지옥이었다. 50도가 넘은 낮시간 이후, 암흑천지로 변한 밤. 모기를 피하기 위해 온몸을 이불로 둘둘 감아야 했다.구수환은 이태석 신부를 생각했다. ‘이태석 신부의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태석 신부의 흔적은 톤즈 병원 곳곳에서도 여전했다. 자물쇠로 잠겨진 병원, 그 주변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동분서주한 모습을 증언했다. “그는 맨손으로 한센인들 발을 만지며 치료했어요” 이태석 신부의 용기는 톤즈에서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고 버텨가는 생활이었다.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실존적 고민, “내가 왜?”라는 물음은 단 한 번도 이태석 신부의 마음을 흔들지 않았으리.

헌신적인 실천
이것보다 더 한 메시지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그의 ‘헌신적인 실천’하는 자세이다. 구수환은 톤즈 마을에서 이태석 신부의 ‘사랑’을 발견했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마을 구석구석에 남은 이태석 신부의 절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결과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석 신부의 실천적 행동은 이후 구수환에게 전이되었다. 구수환은 인천에서 목포에 이르기까지 그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지 스스로 찾아가면서 ‘이태석 신부의 절실하고 헌신적인 실천하는 모습’을 알리기 위해 무자비할 정도로 뛰어다녔다. 심지어 불교계에서도 이태석 신부의 실천하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 이태석 신부의 ‘절실하고도 헌신적인 실천’은 지금 저자 구수환에게 와 있다. 이것보다 더 한 메시지가 있을 수 있을까?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
이태석 신부는 단지 그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메시지는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이다. 톤즈 마을에 도착한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 위에 군림하지도 않았다. 이태석 신부는 단지 그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살핀 사람들에게 오히려 감사했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종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 나눌 것이 더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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