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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내리비친 햇살이 벽을 타고 내려와 집들의 그림자를 내려놓고 빛과 그들의 경계를 긋는다. 지금은 없어진, 어린 시절 늘 다니던 그 골목은 카메라 플래시가 퍽 하고 터지는 순간처럼 내 안에 정지되어 있다. 나는 뛰어가다가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가 났는지 무척 쓰라렸다. 일어나서 손과 옷에 묻은 작은 돌 부스러기와 먼지를 털어내다가 멀뚱히 상처를 쳐다봤다.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울음이 나오지 않았던 건지, 너무 조용해서 차마 울지 못했던 건지 여하튼 나는 울지 않았다. 골목에 소리가 사라지고 바람도 멎었다. 완전히 혼자였고 나는 존재했다. 살아있음을 느낀 첫 경험이었다. 나는 골목의 아아. 어린 나와 현재의 내가 빛과 그늘의 경계에서 그렇게 잠시 서 있다가 각자 다른 길로 간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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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더이상 유아동만이 향유하는 문학 분야가 아니다.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도 다양해 졌다. 요즘의 그림책은 독자의 성별을 떠나 일상을 담고 있는 생활예술로 기능하고 있다. 구해인 작가의 [물통책]은 부산의 골목과 산복도로를 배경으로 모두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글 없이 그림으로만 담아낸 작품이다. 지형의 특성상 주거지의 70%가 산복도로에 위치해 있는 부산의 주거환경은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으며‘인간이 그린 무늬’라는 [인문]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동주택 문화로 주거의 형태가 바뀌어져 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와 시간의 곧 돈이 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편리와 안전,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주거환경의 변화가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길과 길을 잇고 집과 집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관계와 관계를 만들어 나가던 골목이 무너지자 우리들은 더 이상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울 기회 또한 잃어버리고 말았다. 도시는 이제 거대한 시장이 되고 물건의 생산과 소비의 기능이 우선시 되며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점점 피곤한 과업으로 치부되어 가고 있다. 이간이‘사회적 동물’이라서 이룩한 고도의 문명이 더 이상‘사회적 인간’으로 기능하기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점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점으로 선으로 만들고 선을 통해 면을 만들고 면을 통해 공동체라는 거대한 장을 만들 때 제도를 벗어난 건강한 사회적 돌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통책]은 생명의 수단으로서의 물탱크를 건강한 공동체의 상징으로 은유하며 전기선처럼 얽히고설켜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다 말하지 않지만 더 말하는 그림 없는 그림책의 구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모두 연결되어진 견고한 삶의 형태들이 우리가 살아온, 또 살아갈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ME라는 글자를 아래로 뒤집으면 WE라는 글자가 된다고 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 질수록 나 보다는 우리라는 시선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구해인 작가의 [물통책]은 우리로 살아가야 할 방법을 스스로 고민하게 할 시작점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