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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야, 어느 쪽 무가 더 커보이노?”의 구술사적 위치
[야야, 어느 쪽 무가 더 커보이노?]는 요즘 조명되는 구술사의 연장선에 있다. 구술사가 문서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경험을 인터뷰를 통해 사료화하고, 그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구술 생애사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구술사의 범주에 속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록 없는 주체들의 자기 기록이나 구술, 증언, 면접 등을 통해 채집된 자료들은 사료로서의 가치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 일상사나 미시사, 신문화사, 구술사 등의 연구 방법론들이 적극 활용된다는 것은, 구술이나 기억, 그리고 자기 역사 쓰기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것의 반증이라 할 것이다. 구술 생애사가 한 개인의 출생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전체 삶의 경험을 현재화시키는 역사 텍스트로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구술자의 자기 진술과 과거와 현재에 관한 적극적인 자기표현이란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책, [야야, 어느 쪽 무가 더 커보이노?]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남편과 아들 사 형제는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격려였다. [야야, 어느 쪽 무가 더 커보이노?]는 올해 79살인 강금선 여사의 삶 이야기다. 경북 시골에서 살던 강금선 여사는 1958년 남편과 함께 무작정 상경을 하였다. 서울에 가면 꼴머슴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옳았다. 상경 이후 오늘날까지 남편과 함께 둘만의 힘으로 아들 사 형제를 낳고 키우면서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내었다. 강금선 여사는 지금도 새벽 3시면 일어나 남편과 함께 고물을 주우러 길을 나선다. 그리고 고물이 바뀐 돈은 다시 아들들에게 재투자된다. 이런 어머니의 일평생을 지역 풀뿌리 운동을 하는 셋째 아들이 채집하여 글로 옮겼다. [야야, 어느 쪽 무가 더 커보이노?]에는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운동까지 격동기 한국 현대사가 79살 할머니의 시선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 무엇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하루에 최선을 다했던 민중의 신산한 삶이 들어 있다. 오로지 자식들 잘되기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우리 부모의 모습이 살아 숨 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