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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 020
I 외무부 장관 공관의 안주인 · 025 한승주 외무부 장관 임명 발표의 드라마 · 025 장관 공관 첫 방문 · 027 1993년 2월 말의 공관 상황 · 029 공관에 나무를 심다 · 034 크리스토플 식기를 찾아내다 · 036 공관 부엌살림의 간단한 물목(物目)을 작성하다 · 037 공관 집무실에 한 장관의 개인 컴퓨터를 가져오다 · 038 공관 직원들에게 금연 상금을 걸다 · 040 공관의 만찬 운영 · 040 만찬 테이블의 상화 · 041 우리 역사상 초유의 공직자 재산등록과 공개 · 043 대사 부인들, 직원 부인들과의 대화 · 044 외국 대사 부인들 접견 · 046 공관의 화장실을 고치다 · 049 다시 정든 우리 집 한남하이츠아파트로 · 052 장관 공관 편(篇)후기(後記) · 055 클린턴 대통령 내외의 한국방문 · 057 비행장 영접 · 057 국립 고궁박물관과 경복궁 후원 안내 · 060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 · 065 재외공무원 자녀 기숙사 · 067 장관 내외의 기숙사 첫 방문 · 068 도서실 환경 개선 · 070 기숙사 건물 내에 세탁실을 만들다 · 071 샤워실 개선에 도전하다 · 073 박성용 회장님께 도움을 청하다 · 074 대우자동차의 버스를 기증받다 · 076 외무부 부인회 · 080 당연직 부인회장 · 080 사단법인 외무부 부인회의 태동 · 082 진일보한 외교 행사 · 085 외무부 부인회의 장학사업 · 088 II 주미대사 관저의 안주인 · 095 주미대사 관저 건물은 일본풍? · 096 교수에서 대사 관저 안주인으로 · 103 대연회장 의자에 커버를 만들어 씌우다 · 107 관저 메뉴 기록을 남기다 · 108 밖에서 먹어 본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다 · 112 관저 메뉴 커버를 디자인하다 · 114 관저의 물품 목록을 작성하다 · 117 관저 직원들에게 독감주사를 놓아 주다 · 120 요리사 오정석 군을 영어반에 보내다 · 121 나의 새벽 공부 시간 · 122 주(駐)바하마 대사 부인 · 126 신임장 제정 행사 · 127 바하마 공화국 독립 제31주년 기념 행사 · 131 주미대사관 부인회의 바하마 수재(水災) 돕기 성금 · 133 워싱턴의 각종 모금 만찬 · 137 국제원조구호기구 · 138 아시아협회 · 142 미국위문협회 · 145 한국 콘서트 소사이어티 · 153 [워싱턴 디플로맷]에 소개되다 · 157 대사를 대신하여 · 159 CHSFS - 어린이 가정 모임과 가족봉사 행사 · 160 미네소타대학과 서울대학교의 교류 프로그램 50주년 기념행사 · 164 피바디에섹스 뮤지엄의 유길준 한국미술문화 갤러리 헌정행사 · 167 윤광조 개인전 · 170 주미대사 부인의 문화외교 · 173 스미스소니언의 딜런 리플리 센터 강의 · 174 워싱턴 근교 장교 부인들의 클럽을 위한 강연과 오찬 · 176 국제 이웃클럽 I (International Neighbor’s Club I) 문화행사 · 178 코리아 코커스 미 의회 보좌관들을 위한 만찬과 강좌 · 181 한복차림으로 캐나다에서 강의하다. · 185 미 육군사관학교 대사 내외 강의 · 187 아메리칸대학의 아시아학 센터 · 191 [곽분양행락도]에 관한 두 번의 강의 · 195 의궤에 관한 다섯 차례의 강의 · 198 교포사회를 위한 문화강좌 · 207 III 외교가(外交街)에서 만난 사람들 · 213 중국의 첸치천 외교부 장관 내외 · 213 켄 에드워즈 캐나다대사 부인 · 216 디터 지메스 독일대사 내외 · 218 제임스 레이니 미국대사 내외 · 219 로렌스 미들턴 영국대사 내외 · 221 청와대 만찬에서 만난 인사들 · 223 샌드라 오코너 연방 대법원 대법관 · 225 그레이엄 가(家)의 사람들 · 228 체비 체이스 클럽 만찬 · 229 워싱턴 국립오페라 마이클 존넨라이히 회장 · 230 캐나다의 마이클 커긴 대사 부인 · 235 미국 대통령 부자 · 237 남편을 동행한 해외순방 · 244 아세안 확대 외무 장관 회담(ASEAN PMC) · 245 뉴욕의 UN 총회 · 246 북경과 서안 방문 · 250 스칸디나비아 삼국 순방 · 257 노르웨이의 오슬로 · 257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 262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 265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 270 후기(後記): 남편 퇴임 후 중국과 이스라엘 초청 방문 · 271 나의 학생시절 · 283 미술대학 시절 · 283 유학시절과 우리 가족 · 288 미국에서의 첫 학기 · 288 객지에서의 결혼식 · 290 익숙해진 학교 공부와 미국 생활 · 292 검소한 생활 · 294 사무직으로 취직 · 297 UC 버클리 미술사 석사과정 · 297 첫 유럽 여행 · 301 IV 부록 한국, 대만, 일본 답사여행 · 307 프린스턴대학 동양미술사 박사과정 · 308 에필로그 · 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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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공관 편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당시의 우리나라 개각 관행이 퇴임 장관들에게 얼마나 큰 결례를 범하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라디오를 통해서 자신의 경질 소식을 듣게 되는 당시의 모든 장관들은 각 부처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애쓰신 분들이다. 이분들에게 임명자가 한 분 한 분 직접 전화라도 해 주며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경질의 불가피성을 잘 말씀해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한다.
--- p.55 클린턴 내외의 아시아 순방 소식을 전해 들은 후 나는 그들이 한국에 오기 전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의 TV 뉴스를 열심히 보며 힐러리 여사의 의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녀의 선택은 대개의 경우 멀리서도 눈에 띄는 비교적 짙고 선명한 색상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의상과 상충되지 않도록 흐린 베이지 톤의 의상을 입기로 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의 짐작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 p.60 마지막으로 내가 구상한 행사는 서초동의 외교안보연구원 강당을 빌려 춘계와 추계 각각 한 번씩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과 우리 부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문화강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외교안보연구원의 교학과에서는 외무고시 합격자들, 주한 외교사절, 그리고 연례행사인 재외공관장 회의 차 일시 귀국한 대사 부인들을 위한 강좌 등을 개최하고 있었고, 나는 이 모든 행사에 ‘차출’되어 한국어 또는 영어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강좌를 해 온 바 있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매우 친숙하고 손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 p.86 이렇게 나는 메뉴 기록과 손님 명단을 함께 보관하면서 같은 손님에게 되도록이면 다른 음식을 대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한 대사는 워싱턴의 연구소(think tank) 학자들이나 언론 매체의 기자들을 자주 점심에 초청하여 관저에서 세미나 점심을 하였고, 이때 자연히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의 저자인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의 대기자 오버도퍼(Don Oberdorfer)가 여러 번 관저에 오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Don, since you come here so often, I ran out of menu for you!(당신이 자주 오셔서 새로운 메뉴를 내놓을 수가 없네요)”라고 농담 겸 진담을 했더니 그는 “Oh, Song-mi, you can serve me the same dish every time. Just let me come more often.(나는 늘 같은 음식이라도 자주 불러만 주면 좋겠소이다)” 하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난다. --- pp.110-111 주미대사는 재임 시 다른 여러 주의 대학과 정책 기관 등에 다니며 강연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나도 대사와 같이 여러 가지 행사로 여행할 때 그 기회를 이용하여 많은 강연을 하게 되었다. 워싱턴 DC 내의 대학이나 미술관에서도, 특수한 부인들의 사교단체들을 위한 모임에서도 한국문화에 관한 강연을 많이 함으로써 나의 전공을 살려 우리 문화를 알리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였다. 내가 2003년 8월 말부터 2005년 2월 말까지 약 18개월간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워싱턴은 물론 미국 여러 도시와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대략 20여 차례의 문화강좌를 개최하였다. --- pp.173-174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이태진 교수가 1993년 외무부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공식 반환 요청을 한 후 199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일차 회의가 열렸다. 한국 측 대표는 한상진 당시 원장, 프랑스 측 대표는 자크 살루아(Jacque Sallois) 감사원 최고위원이었다. 사회학자 출신인 한상진 원장은 의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므로 나는 한 원장에게 내가 그동안 출간했던 의궤 관련 영문 논문들을 전달하였다. 그래도 이 첫 번째 회담을 위해서는 한 원장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였다. 2003년 가을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오기 직전까지 나는 이 협상의 자문위원으로 모든 회의에 참석하였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치며 내려진 우리 정부의 결정 사항이나 2차대전 이후 생긴 전시(戰時)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협약 등에 관해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었다. --- pp.205-206 이처럼 나는 한승주 대사 재임 기간에 관저의 만찬에서나 대사의 순방 외교를 동행하였을 때나 항상 한국문화를 미국 사회에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이런 나의 ‘한국문화 전도사’ 모습을 보신 어느 전직 대사님께서 한국 정부가 한승주 대사를 임명한 것은 완전히 ‘two for the price of one(한 사람 봉급으로 두 사람을 활용한 것)’이라고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pp.208-209 이런 모임에 가면 즐겁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우리 관저에서 아무 이유 없이 단순히 사교를 위한 여자들의 오찬 모임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USO나 CARE의 모금 준비 오찬이나 모금 만찬은 명분이 뚜렷하여 내가 대사관 총무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커긴 부인과 같이 활발한 사교를 전개하는 것도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커긴 부인은 남편이 미국대사 발령이 나자 캐나다의 어느 유명 리조트에 직접 가서 그곳의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쉐프를 ‘모셔’왔다고 한다. 우리 관저의 두 젊은 요리사들이 정부에서 지급하는 거의 최저 임금 수준의 봉급을 받고 와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이다. --- p.236 부시 가족의 근거지가 휴스턴인데 마침 내가 그 이틀 전인 2003년 5월 1일에 그곳의 미술관에서 한국미술 관련 강의를 하고 왔으므로 그 이야기도 하였더니 부시 대통령은 남편에게 “이런 학자와 결혼하였으니 앙혼(仰婚)을 하셨네요. 나도 그랬습니다.”라고 하며 로라 여사가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pp.238-239 이처럼 남편이 장관직을 떠난 후 중국과 이스라엘 여행은 미술사학도인 나에게 가장 마음 편하고 유익한 여행이 되었다. 이들 나라의 ‘외교 관행’을 우리 외교부도 조금이라도 도입할 수 있을 만큼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자랑할 만한 국립박물관과 기타 문화유적지도 잘 정비되어 있다. 이런 관행이 자국의 문화외교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 p.280 한국에서 영어로 강의를 들어 볼 기회가 없기는 하였지만, 이화여고 시절에는 영어 모의고사에서는 늘 전 학년에서 일, 이등을 했고 「Time」지나 영문 소설도 열심히 본답시고 들고 다녔다. 그러나 정작 노트 필기를 하며 영어 강의를 들으려니 알아듣는 것보다 놓치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아닌가! 더욱이 숙제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교실을 떠난 적이 태반이었으니 크나큰 좌절감을 느끼며 매일같이 울다시피 한 학기를 지내야 했다. --- p.289 하루는 성원이 학교에서 케이크 굽는 것을 배워 와서 저녁 후에 ‘실습’을 하고 아빠와 같이 맛있게 먹고 잤다고 한다. 그런데 부엌을 어찌나 지저분하게 어질러 놓았는지 다음 날 아침 “네가 케이크 굽고 싶으면 부엌 정리까지 해야 한다.”라고 일렀다. 며칠 후 내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에는 손도 안 댄 아름답게 장식된 케이크가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아이가 부엌 정돈까지 마치니 너무 피곤해서 먹지도 못한 채 잤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 p.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