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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 머리말 2. 가례도감의궤의 제작 및 현존 현황 3. 1600년대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 행렬의 구성 소현세자 가례도감의궤(1627) 숙종 가례도감의궤(1681) 1600년대 기타 가례반차도의 특징적 구성 요소 4. 1700년대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 행렬의 구성 영조와 정순후 가례(1759) 이전 영조 가례도감의궤(1759) 왕세손〔정조〕효의후 가례도감의궤(1762) 5. 1800년대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 행렬의 구성 순조 가례도감의궤(1802) 왕세자〔익종/문조〕 가례도감의궤(1819) 헌종 효현후 가례도감의궤(1837) 헌종 효정후 가례도감의궤(1844) 철종 가례도감의궤(1851) 고종 가례도감의궤(1866) 왕세손〔순종〕 가례도감의궤(1882) 6. 대한제국의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 행렬의 구성 황태자〔순종〕 가례도감의궤(1906) 7. 가례반차도의 회화 양식 육필화 가례반차도(1627, 1638, 1651) 육필화와 판화기법의 혼용(1671, 1681, 1696) 판화기법의 본격적인 사용(1700년대 이후) 8. 조선왕조 가례도감에 봉사한 화가들과 그들의 임무 가례 행사 때 화가들의 임무 가례도감에 참여한 화가들의 명단 9. 맺음말 에필로그 : 나와 의궤연구 부록 헌종 효현후 가례도감의궤(1837) 내용 요약 『화사양가보록』에 기재된 화가들의 명단(가나다순) 참고문헌 도판목록 표목록 용어해설 찾아보기 |
이성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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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자 소현세자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인조는 청나라의 10만 대군에게 패하고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세자에 오른지 3년밖에 안 된 소현세자 부부는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가게 되었고 수많은 충신들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9년간의 인질 생활 끝에 1645년 귀국한 그는 두달만에 병으로 사망하고, 그의 아내 세자빈 강씨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친정 일가가 몰살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비운의 왕자 소현세자와 그의 아내는 8면 반차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 p.34 혼례를 검소하게 치르라는 영조의 분부 금주령을 내렸고, 이를 어기는 고을 수령을 참수했으며, 본인 스스로 3첩 밥상을 받았다는 영조의 검소함은 혼례에서도 드러났다. 영조는 왕세손의 혼례의 앞두고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왕이 명하되, 옛 학자들이 이르길"혼인에 있어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나 야만인들의 할 짓이다"라고 한 것은 격언이며 마음속에 항상 새겨둘 만하다.(중략)요즈음 사치풍조가 날로 성행하는 때 마땅히 왕공으로부터 시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 왕세손(정조)의 혼례에 사용되는 물건들은 이전에 금으로 만들었던 것들도 은으로 만들고 겉에 도금을 하여 사용하였다. --- pp.159~160 인물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반차도는? 왕실의 힘이 약해지던 조선 후기 철종 대에 오히려 가례반차도의 행렬은 길고 화려해진다. 1600년대에 8면에 불과하던 반차도는 철종 가례에 이르러 무려 92면으로 늘어나고, 총 인원 1922명에 말이 559필이 동원되었다. 당시의 말은 곧 현대의 자동차와 같으니, 그 장대한 대열을 짐작할 수 있다. --- p.212 국력이 쇠퇴하면 그림도 쇠퇴?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국이 되었지만, 국력은 급속한 쇠퇴일로에 있었다. 이 시기에도 전통적인 가례도감의궤가 만들어졌고, 반차도 또한 그려졌다. 새롭게 바뀐 근대적 복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흥미로운 이 반차도는 그러나 쓰러질 듯한 장난감 병정 같은 군인들,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무렇게나 그린 윤곽선, 악기도 없이 작대기만 들고 있는 군악대 등 전반적인 쇠퇴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일반 풍속화의 쇠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pp.275~278 화원들은 반차도만 그렸을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에서는 어디에도 수록되지 않은 왕실에서 활동한 화가 234명의 화가를 발굴하였다. 이들은 반차도를 그릴 뿐만 아니라 가마를 장식하거나 병풍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였다. 특히 혼례에 사용된 병풍들은 그들의 화려한 그림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들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그 실물 도판 사례를 수록하였다. ---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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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이산의 결혼식을 공개합니다.
훗날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 22대 임금으로 등극하는 정조 이산은 왕세손 시절 결혼을 합니다. 세손빈 은 감사 김시묵의 딸 효의후 김씨였습니다. 그의 결혼식 장면은 당시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상세한 그 림으로 남아 있습니다.(158쪽 이하) 지극히 검소하게 혼례를 치르라는 영조의 명에 따라 그의 결혼식 행렬은 총인원 394명과 92필의 말이 세손빈의 가마를 호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천으 로 만든 드리개를 쓴 상궁들, 화려한 색채의 군복에 무기를 든 호위군, 왕세손빈에게 내리는 교훈을 옥 에 새겨 만든 책(옥책)을 실은 가마 등이 모두 상세하게 그려졌습니다. 이처럼 왕실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를 『가례도감의궤』라 하는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12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7건, 그리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13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실의 의궤, 의궤의 꽃 반차도 조선왕조가 남긴 빛나는 유산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의궤입니다. 의궤의 문화사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2007년 6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왕실 행사의 기안에서부터 진행과정, 각 부서 간에 오고간 공문서, 왕의 지시와 신하의 건의, 사용된 물품과 물품을 만든 사람과 소요된 비용 등이 상세히 적혀 있는 의궤에는 이 모든 것이 집약된 행렬도가 그림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반차도이며, 의궤의 모든 내용을 상세한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반차도는 곧 의궤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가례도감의궤와 그 반차도의 미술사적 고찰입니다. 1. 기획의도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 턱없이 부족한 연구 성과 2007년 8차 세계문화유산 자문회의에 참석했던 서경호 교수는 의궤가 왜 지역유산이 아닌 세계유산이 되어야 하는지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느라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려 900여 종 3600여 책 이상 되는 방대한 의궤 자료에 대해 국내에서 출간된 연구성과는 한영우 교수를 비롯한 두어 명 역사학자가 쓴 개론서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7년에 열린 세계문화유산 기념 심포지움에서는 연구성과보다는 장래 연구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즉 의궤가 기초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복식, 음식, 건축, 공예,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정밀한 연구의 필요성이 강도 높게 제기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는 이 중에서 미술사 분야의 기준이 될 만한 기념비적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반차도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 의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반차도에 대한 연구는 이성미 교수에 의해 20여년간 이루어졌다. 저자는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의궤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특히 의궤의 미술사적 측면에 기준이 될 만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2006년 위 연구원을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보다 폭넓은 자료, 보다 체계적인 연구로 나아갔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을 통해 왕실 혼례의 기록인 가례도감의궤에 실린 반차도가 거의 전부 일반에 공개될 수 있게 되었고, 가례반차도의 특징과 내용, 시대별 변화 양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이후에도 그의 연구 성과는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과정이 담겨 있는 『어진 관련 의궤와 미술사』, 왕실의 잔치를 기록한 『진연·진찬의궤와 미술사』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2. 주요 내용 의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현재 남아있는 의궤의 현황과 종류에 대해, 그 종류를 간략한 표로 정리하고, 각 종류별 내용을 소개하였다. 가례도감의궤를 비롯한 진연,진찬의궤, 산릉도감의궤 등이 무슨 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현재 의궤들이 어느 곳에 얼마나 소장되어 있는지, 그 연유는 어떻게 된 것인지를 간략하게 요약하였다.(제1장) 가례도감의궤에는 무엇이 실려 있나 여러 의궤들 중에서도 특히 왕실 혼례의 기록인 가례도감의궤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에는 혼례 절차 가운데 간택된 처자가 별궁에 머무르다 왕실로 들어오는 행렬이 묘사되었는데, 문무백관, 각종 의장, 악대 등이 길고 화려하게 그려졌다. 이외에도 혼례 때 사용된 병풍들, 각종 의장기 제작에 관한 상세한 기록, 행사 참여자 및 물품 생산 종사자에 대한 기록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절차에 의해 얼마나 많은 가례도감의궤가 제작되었는지, 반차도는 얼마나 그려졌는지, 그 의궤들은 현재 어디에 어떻게 소장되어 있는지를 상세하게 정리하였다.(2장) 시대별 반차도의 현황과 특징 임진왜란 이전의 의궤들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가례도감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1627년 소현세자 가례도감의궤에서부터 대한제국 시기 1906년 황태자 가례도감의궤에 이르기까지 남아있는 모든 가례도감의궤들에 대한 분석과 그 특징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 실렸다. 시기별로 1600년대, 1700년대, 1800년대로 나누어 각 시기의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의 특징을 살피고, 그 변화 과정을 비교하였다. 왕비 혹은 세자빈이 궁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위주로 하는 의궤 반차도의 기본적인 유형은 1600년대 반차도에서 이미 마련되었으며, 이후 1759년 영조의 가례반차도에서는 신부를 마중하는 왕의 행렬이 추가되어 이후 반차도의 전형이 되었다. 이 책에는 각 반차도 각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기물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제3장~제6장) 반차도의 회화적 기법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철종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는 무려 1922명의 인물과 559필의 말이 등장한다. 이 많은 인원과 기물들을 어떻게 그렸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연구 결과 그 비밀은 반차도 제작 기법에 있었다. 초기의 반차도들은 손으로 직접 그렸고, 분량도 8면에 불과했으나 후대로 가면서 판화 기법이 응용되었고, 면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즉 인물이나 말의 윤곽선은 도장을 만들어서 찍고, 그 안에 채색을 가미하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1800년대에는 오히려 판화 기법이 위주가 되고 특별한 변화 요소들만 육필화로 그렸다. 의궤의 각 장면들을 비교 분석하여 구도와 채색, 회화 기법의 상세한 측면들을 밝혔다.(제7장) 새롭게 발굴된 조선의 화가들 일제시대에 오세창 선생은 사라져가는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서『근역서화징』과『화사양가보록』이라는 빛나는 저작을 남겼다. 후자에 실린 조선조 화가와 서예가 명단은 총 189명으로,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조선조화가의 거의 전부가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의궤 연구 결과 1627년부터 1906년까지 가례도감의궤에만 수록된 화가들이 무려 234명이었고, 그 중에서 화사양가보록은 물론 어떠한 서화가 인명사전에도 수록되지 않은 화가들이 142명으로, 가례도감에 참여한 화가 가운데 약 60.6%는 처음 이름이 알려지는 화가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 명단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 해에 어느 도감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일목요연한 표로 정리하였다. 또한 이들의 직책의 변화, 상급의 종류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제8장) 반차도 컬러 도판 가례도감의궤에 수록된 반차도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대 규장각,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등에서 모두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일반인의 열람이 어렵다.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 중요한 반차도를 정밀 촬영하여 풀 페이지 컬러 도판으로 수록하였다. 반출은 물론 사진 촬영의 조명까지 엄격히 제한된 고서실에서 직접 촬영한 도판들이 수록됨으로서 이제 누구나 조선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1762년 정조 가례도감의궤 반차도 18면 전체가 수록되었고, 이외에도 1906년 대한제국 황태자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 이르기까지 총 20건의 주요 장면들이 수록되었다. 상세한 용어해설 가례도감의궤는 물론 한자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읽기 어렵다. 한자를 안다고 하더라도 궁중 용어들이나 독특한 이두가 섞여 있어 전문가가 아니면 해독이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더구나 당시 사용된 각종 기물들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 것이 많고, 또한 사용된다 하더라도 명칭이 달라졌기 때문에 의궤의 기록이 아무리 자세하다 하더라도 접근이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의궤에 사용된 혼례 관련 용어, 이두의 해석, 각 기물의 명칭에 대한 설명을 따로 실어 의궤 이해를 도왔다.(부록. 용어해설 참조) 프랑스 소장 의궤 반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 그 허와 실 본문 말미에는 필자가 의궤를 연구하게 된 과정, 의궤에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가 에필로그로 실려있다. 의궤 연구의 어려움, 독특한 재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떼제베가 수입될 무렵,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한다는 낭설은 통역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후로 외교부에서 반환을 위한 위원회를 추진하는 과정 또한 간략하게 실려 있는데, 위원회에 참여했던 필자의 회고를 적었다. 바뀌는 정권과 더 자주 바뀌는 장관에 따라 그 중요한 문제가 얼마나 소홀하게 다루어졌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의궤 전문가일뿐만 아니라 주미대사 및 외무장관의 아내로서 외교 일선에 봉직했던 저자의 의견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