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며 말이 되지 못한 마음들
1부 기다리는 마음은 결코 틀리지 않아 행복을 그리는 말 울타리 세우기 거절을 연습하는 시간 별이가 용기를 내는 법 오답으로 이루어진 세계 기다리는 마음은 결코 틀리지 않아 차이를 건너는 법 2부 아이들은 언제나 말하고 싶어 한다 언어로 채워진 세계 회복과 기다림의 언어 말하는 순간 마주할 것들 칭찬이 공감의 언어가 될 때 아이들과 나누는 특별한 농담 사랑하는 토끼에게 바깥으로 나가야 할 때 까꿍 놀이 3부 우리가 서로의 약점에 의지한다면 바이올린과 반칙하기 숨바꼭질 우리의 거리, 다섯 걸음 회복을 위한 용기 머머이와 도도이 고집 센 아이와 외로운 어른의 대화법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우리가 서로의 약점에 의지한다면 |
김지호의 다른 상품
|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을 먼저 배운다.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어른들은 아이가 몸을 뒤집기도 전에, 배밀이를 하기도 전에 아이와 눈을 맞추며 “엄마, 엄마 해봐”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손을 내민다. 이마와 귀를 만지고 코와 뺨을 더듬는다. ‘아, 이렇게 부드럽고 굴곡이 있으며 내 몸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존재, 눈을 감았다 떠도 계속 거기에 있는 존재를 엄마라고 하는구나.’ 언어를 매개로 아이의 말랑말랑한 뇌에는 감각과 ‘엄마’라는 존재를 연결하는 회로가 생긴다.
아이는 다시 한번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해 ‘엄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이의 여린 기관들은 물리적으로 ‘엄마’를 구현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건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다. 마침내 아이가 ‘엄마’라는 최초의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면 보고 싶었던 존재가, 이번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엄마? 방금 엄마라고 했어?” 최초의 말은 그래서 행복과 희열의 순간이다. --- pp.18~19 「행복을 그리는 말」 중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만큼 벌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상벌의 방식이다. 폭력이 벌의 목록에서 제외된 지는 오래되었다. 윽박지르거나 무시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것 역시 아동학대에 불과하다. 벌을 받은 아이가 ‘내가 못나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행동을 바꿀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계산을 하지 않고 과자 봉지를 뜯었을 때 받는 불이익은 며칠 과자를 먹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불이익의 목표는 과자를 먹고 싶을 때 손으로 가리키며 기다리는 행동이나 “먹고 싶어요”와 같은 언어적 표현이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안정된 규범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성장해서 당당한 ‘나’가 되고 ‘우리’에 속할 수 있다. ‘울타리 치기’는 그 출발점이다. --- pp.30~31 「울타리 치기」 중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초조하다. 그래서 한 번에 두 계단씩 올라야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며 등을 떠민다. 스스로 걸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대신 시간이 없다며 어른들이 대신 안고 오르기도 하고, 올라야 할 계단을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았던 적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키우고 어른들은 쉽게 지친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우린 틀렸어’, ‘나는 안 돼’ 같은 좌절뿐이다.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는 성취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취를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판단 기준이 ‘평균’ 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계단의 높이다. 계단이 높으면 스스로 오를 수 없고, 남이 오르게 해주면 성취의 기쁨이 없다. 한편 기대치가 높으면 아이의 성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칭찬해주지 않는다.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하려면 계단의 높이를,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른들의 결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틀리는 법이 없다. --- pp.69~70 「기다리는 마음은 결코 틀리지 않아」 중에서 대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성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 말하고 싶지만 대화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의 부재(不在). 아이들은 어른들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늘 바쁘다. 어렵게 기회가 마련됐다고 해도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른다. 어른의 눈에 미숙한 것투성이인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참지 못하고 그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들은 입을 닫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 pp.84~85 「언어로 채워진 세계」 중에서 많은 경우 아이의 ‘재능’은 어른의 잣대로 선정된다. 학습 외의 특별한 능력, 이를테면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는 능력 같은 건 쉽게 간과된다. 주로 영어나 수학, 음악이나 미술 등 눈에 보이는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태도에 따라 자기들이 정말 좋아하는 걸 바꾼다. 아이들에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재능을 판단하면 오해가 생긴다. 부모는 아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부모가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해온 경우, 그 때문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피폐해진 후에야 아이의 본심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p.159 「바이올린과 반칙하기」 중에서 율이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엄마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금지하는 사람과는 싸울 수 있지만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그럴 수 없다. 극복할 수도 없다. 엄마의 말을 받아들이면 율이는 부끄럽고 창피한 사람이 된다. 부정하면 율이는 엄마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된다. 율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 p.203 「고집 센 아이와 외로운 어른의 대화법」 중에서 어른들은 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 의지한다.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은 그 자체로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된다. “엄마 아빠 때문에 살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보다 “너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부모가 훨씬 많은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아이들은 고마워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안다. 어른들은 기꺼이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희망을 키운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어른이 될 기회가 생긴다. --- pp.218~219 「우리가 서로의 약점에 의지한다면」 중에서 |
|
말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들으려 하지 않는 어른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잘할 수 있을까요?” 언어치료사인 저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아이들의 언어는 질병이나 사고가 없는 한 퇴행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아이와 말을 주고받으며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언어는 쑥쑥 자란다. 아이와 대화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말하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에 너무 바쁘다. 어렵게 대화할 시간이 생기더라도 아이의 부족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무언가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교정’을 통해 아이를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여기는 탓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에게서 재능을, 남다른 점을 발견하려 애쓴다. 주로 영어와 수학, 음악과 미술처럼 눈에 보이는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재능’으로 포착된다. 그러나 ‘친구의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채는 공감 능력’이나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는 다정함’은 쉽게 간과된다. 사회적 성취를 위주로 ‘아이가 이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바꾼다. 바이올린을 너무 지루해하는 아이도 어른들이 칭찬하고 예뻐하면 바이올린을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아이가 힘겹게 재능을 발휘하는 동안 공감 능력과 다정함은 시들어간다. 그런 태도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높다란 장벽을 쌓는다. 언뜻 견고해 보이는 그 벽을 허무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본보기를 보이고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어른’이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즐겁게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즐거워하고,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낀다. 너무 당연한 일을 궁금해하고 깨닫는 기쁨을 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감각을 다른 사람에게 느끼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와 대화하는 기쁨을 자꾸만 잊는다. “이 아이들의 마음이 지켜지기를. 온전한 영토로 남아 있기를.” 어른은 아이를 위한 울타리를 지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장애아동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극단적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무조건 봐주거나 남들보다 이해력이 부족하니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식이다. 아이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특히 그렇다. 가령 발달장애 아동이 과자가 먹고 싶어서 마트에서 계산도 하지 않고 과자 봉지를 뜯는다. 어떤 어른은 아이를 타이르며 과자 봉지를 한 아름 안겨주려 하고, 어떤 어른은 눈물이 쏙 빠지도록 엄하게 다그친다. 그러면 아이는 잘못을 반복하거나 어딜 가도 소극적이고 입을 꾹 닫게 된다. 장애아동에게 보살핌이 필요한 만큼 벌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다. 아이가 ‘내가 못나서 벌을 받는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행동을 바꿀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게에서 마음대로 과자 봉지를 뜯었다면, 그 벌은 며칠 과자를 먹지 못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목표는 과자 봉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행동이나 “먹고 싶어요”라는 언어적 표현일 것이다. 폭력은 당연하고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벌은 모두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다. 어른은 단지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으로 짜인 울타리를 지어줘야 한다. 그 안에서 아이는 마음을 다치지 않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울타리는 점차 넓어지다가 사라진다. 언젠가 아이는 자기 힘으로 울타리를 걷어내며 성숙한 어른이 된다. ‘가족’이라는 자그마한 울타리부터 ‘사회’라는 거대한 울타리까지,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울타리를 짓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할 일이다. “아이의 첫 말은 행복과 희열의 순간이다.” 아이들이 행복을 그리는 세상이 되려면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을 먼저 배운다. 아이가 몸을 뒤집기도 전에,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부모의 품에 안겨 눈을 맞춘다. 코와 뺨을 어루만지고 입을 맞춘다. 애정이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눈앞의 존재가 나에게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확인하고, 그 감각들은 말의 씨앗이 된다. 아이는 다시 한번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해 ‘엄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이의 여린 기관들은 물리적으로 ‘엄마’를 구현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건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다. 마침내 아이가 ‘엄마’라는 최초의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면 보고 싶었던 존재가, 이번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엄마? 방금 엄마라고 했어?” 최초의 말은 그래서 행복과 희열의 순간이다 _본문 중에서 최초의 말에서 행복을 느낀 아이는, 그 순간의 행복을 그리며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아이를 침묵하게 만드는 세상은 아이가 행복을 그릴 수 없는 곳이다. 아이가 ‘엄마’라고 말하든 ‘어므’라고 말하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온전한’ 말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목소리니까. |
|
자기 소리를 내고 싶은 아이를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어른을 위한 이야기였다. 읽고 나는 알았다. 언어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구나. 마음속에 심긴 씨앗 같은 것이구나. 마음을 돌봐주는 마음의 힘으로 자라날 미래의 나무 같은 것이구나. 책장을 덮고 나는 봤다. 이해받지 못해 스스로를 가둔 내 안의 어린 나. 용기를 내어 울타리를 넘어 내일을 향해 걷고 있었다. - 정용준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