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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 … 5
고독의 몸부림 … 12 일기 쓰기의 부끄러움 … 17 꽃 정기구독 … 24 헛헛한 마음을 위한 소비 … 30 책으로 방공호 쌓기 … 34 계절 실책 … 38 내 우울을 나도 모르게 하는 것 … 42 빈티지 옷 쇼핑 … 47 사랑을 멀리하는 버릇 … 53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기 … 57 삶의 방지턱 놓기 … 61 타이레놀 먹기 … 64 패스트 드링크 러브 … 67 내가 아닌 것 되기 … 70 딸기 집착 … 74 버티는 일 … 78 나를 소재로 말하는 진실함 … 82 내 얼굴 외면하기 … 87 약점 숨기기 … 92 심리 상담 … 96 혹독한 자기검열 … 107 빵 욕심 … 112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꿈 … 120 재난 속에서 주눅 들기 … 124 바다에 대한 설명 … 129 밤을 서성이기 … 135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일 … 139 겨울을 원망하는 마음 … 143 시적 허용 … 149 뭐든 배우려는 태도 … 153 다시 태어나기 … 157 무섭고 매운 것 먹기 … 160 깨지지 않기로 한 약속 …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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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자기모순을 일으키며 느낄 수 있는 모든 통점을 자극한다. 고독은 내가 함부로 길들이거나 달랠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내 몸에 박힌 고독의 이빨 자국을 세어보며 살아갈 날들의 용기를 잃어갈 때마다 나는 몸부림을 치는 대신 고독을 천천히 이해해보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되거나 스스로 굴복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내 생활의 밑천이기도 하다.”
--- pp.15-16 「고독의 몸부림」중에서 “오래된 문장마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야기가 맺혀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신기하게도 아무런 다짐 없이 잘 살고 싶어진다. 예전과는 다소 달라진 생각과 취향을 발견할 때에도 좋았다. 스스로 변함없다고 착각하는 나를 자주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문장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경험은 은근히 흔하지 않다. 생활에 부대끼거나 몸살을 앓으며 겨우내 쓴 몇 줄의 문장이 오늘에서야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은 일기의 기막힌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 --- pp.20-21 「일기 쓰기의 부끄러움」중에서 “물건에 치여서 혹은 새것에 눈이 멀어서 모자람을 잠깐이라도 잊게 되는 시간이 지나면, 숨겨왔던 모자란 부분이 다시 벌어지곤 했다. 그럴 땐 많이 먹었다. 배고픔 없이 음식 앞에서 고꾸라졌다. 고장 난 로봇처럼 음식을 씹고 소화제를 먹거나 변기를 붙잡고 넘치는 것을 게워냈다. 채울수록 허전해지는 일은 내 생활에서 가장 오래된 멀미이기도 하다.” --- pp.30-31 「헛헛한 마음을 위한 소비」중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산수유를 보면서 봄이 왔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봄이라고 생각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밀려드는 따뜻한 파도를 꼼지락거리며 여름이라 하였고, 단풍놀이에 다녀온 엄마의 사진을 전해받았을 땐 늦게나마 가을을, 학교 가는 아이의 옷소매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민트색 내복을 보면 기나긴 혹한기를 예감했다. 사계절의 트랙을 뛰는 흰 운동화도 때에 맞게 발을 굴렀고, 모두가 땀 흘리기에 좋은 계절이 있었다.” --- p.41 「계절 실책」중에서 “제철 과일의 싱그러움 같은 것을 동경했다. 퍽퍽하고 무료한 삶에 과일 한 접시를 먹는다는 것, 특히 제철 과일을 먹으며 어떤 한때를 오롯하게 당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 p.76 「딸기 집착」중에서 “이 글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포말이라는 단어를 썼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단어였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그 단어를 잊은 게 아니라, 그 단어가 나를 잊었다는 느낌이 든다. 빠져 죽는 상상보다 말라 죽는 상상에 더 가까워진 내 어항에 담긴 바다를, 나의 얕은 수심과 슬픔을 기어코 바다는 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바다에 대해 그만 말하기로 한다.” --- p.134 「바다에 대한 설명」중에서 “내 생활 반경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들을 헤아리던 이 목록은 내 파편의 반짝거림을 찾아내는 기쁜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땐 열렬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들이다. 훗날에 다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며, 머지않아 철회해야 할 목록들도 있겠지만. 이토록 서로 같은 모양 없이 깨져버린 실패의 목록이, 나를 어떻게 이루고 있었는지를 본다.” --- p.166 「깨지지 않기로 한 약속」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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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버리고 다시 무언가를 제자리에 가져다둠으로써
되찾는 일상의 여백 “이제 내게 없는 것, 스스로 그만두었거나, 나를 떠나간 것을 떠올리며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채워나갔다. 할 일로 빼곡한 생활의 숨겨진 여백이 회복될 것을 내심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 목록은 첫 마음과는 다르게, 내가 지켜내고 있거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떠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무언가 남겨져 있고,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것이 나를 밀어내는 작은 실랑이의 현장이었다.” (본문 5-6쪽)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은 의외로 쉽게 확정되지 못한다. 한 번의 작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목록은 자꾸만 수정된다. 의도치 않게 그만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만두지 못한 일이 반복해 생겨났으므로. 서윤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은 어느새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33가지 목록은 불완전하다. 대부분 결심의 변화 속에서 채택된 것들이다. 그만둘 수 있다고 믿었던 일들은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릴 때마다 재평가되고, 그는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온 일들을 간편하게 정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목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코 완벽한 계획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유연하게 돌볼 수 있는 탄력성을 터득하는 일임을 깨우친다. “생활을 돌보는 것은 나의 여분을 정확히 확보하는 것.” 그는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며 숨어 있는 생활의 여백을 되찾는다. 이 여백에서 다시 잘 살아내고 싶은 용기를,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을 공글릴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가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통해 생활의 균형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오늘보다 내일을 잘 살아내고 싶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그러니 함께 이 목록을 작성해봐도 좋지 않을까.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줄 아는 삶의 기술 서윤후는 「깨지지 않기로 한 약속」(본문 163쪽)에서 오키나와 한복판에서 유리 공예품이 깨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깨진 유리 파편이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와 쏟아지는 햇빛 속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잘 만들어진 공예품을 볼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깨지고 나서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니.” 그는 이 강렬한 기억을 담아 「유리물산」이라는 시를 쓰며 자신의 생활을 떠올린다. 깨지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은 삶에 대한 어리석은 아집이라고 서윤후는 말한다. 그는 생각을 돌이켜 삶의 안간힘을 내려놓는 미덕을 설명한다. 미완성의 아름다움이 우리 삶 속에 있음을 길어올린다.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유리 공예품일 땐 지나치고야 말았던 완성된 세계보다, 뜻밖의 일로 자신의 형체를 잃고서 아름다움을 발휘하게 된 미완성의 순간이 더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본문 166쪽) 서윤후는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 실패의 경험을 기쁘게 끌어안는다. 깨진 유리 조각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생활을 기껍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생활을 긍정하며, 안간힘을 다하던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생활이라는 풍경을 환히 비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