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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버려둬 (큰글자책)
전민식
파람북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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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 풍문이 사실이라면 006

Ⅰ 오류들

궤도에서 궤도로 011
내 것이 아닌 기억들 026
때론 위대함도 멈춰서지 033
전선의 별 049
질문과 심문 057
자리 081
흔적 085
화장터 남자 092
힘의 여자 101

Ⅱ 또 다른 오류들

낯설면서도 신선한 113
들숨과 날숨 125
죽어도 죽지 않은 132
화장터 가는 길 143
버려지는 사람 146
사선에서 수평으로 153
페달러는 페달러일 뿐 159
낡은 세계 164
물의 기억 166
비를 먹는 사람들 173
회상에 잠길 수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지 179
페달러로 살고 페달러를 위해 살고 페달러에 의해 살아 188
달라질 건 없어 197
단순한 반대 205
세상의 끝이 세상의 시작 211

작가의 말 - Let It Be로부터 224

저자 소개 1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평택의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 기지촌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향은 미국과 한국 문화가 범벅이 되어 있던 캠프 험프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하며 유랑의 세월을 보냈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생활고로 다니다 쉬기를 반복하며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오로지 글만 쓰기 위해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겠기에 온갖 종류의 대필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두 군데 스포츠신문에 3년 정도 연재소설을 썼다. 기획된 연재물을 쓸 때도 대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평택의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 기지촌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향은 미국과 한국 문화가 범벅이 되어 있던 캠프 험프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하며 유랑의 세월을 보냈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생활고로 다니다 쉬기를 반복하며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오로지 글만 쓰기 위해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겠기에 온갖 종류의 대필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두 군데 스포츠신문에 3년 정도 연재소설을 썼다. 기획된 연재물을 쓸 때도 대필을 할 때도 자투리로 남는 시간엔 소설을 썼다. 많이도 썼다. 세계문학상에 당선되기까지 장편소설로 아홉 번쯤 최종심에서 고배를 마셨다. 단편에서도 수차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령작가이자 통속작가였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지아비다.

장편소설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알 수도 있는 사람』, 『강치』, 『해정』,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치킨 런』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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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10*290*16mm
ISBN13
9791192964973

책 속으로

고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는 궤도의 밭이었다. 전후좌우는 물론 위와 아래에도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거대한 궤도뿐이다. 궤도는 도시의 건물이며 산이며 길이고 빛이며 밥이었다. 궤도는 검고, 레일에 잠긴 톱니바퀴들엔 회색빛이 감돌았다. 그 회색들 속에서 레일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검은 안장과 체인과 페달이 반짝거렸다. 이 도시엔 몇 개의 궤도가 존재하고 몇 개의 페달이 돌아가고 있을까.
--- 「프롤로그_ 풍문이 사실이라면」중에서

첫 번째 사이렌이 울었다. 발바닥에 고여 있던 긴장이 빠져나갔다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가슴에 맺혀있던 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뭔가 변한 듯한데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바람에 실린 쇳내와 모빌유의 달콤한 냄새도 여전했고 톱니들의 신음 또한 그대로였다. 검은 하늘을 향해 뻗은 마스터 방의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어긋난 데라곤 없는데 발바닥에 고여 있던 긴장이 사라지는 느낌이 달랐다.
그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기도 전에 두 번째 사이렌이 울었다. 1200단위 구역의 작업이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 「Ⅰ.오류들_ 궤도에서 궤도로」중에서

페달을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페달러들의 힘이 톱니를 타고 미세하게 전달되었다. 그 힘 속에서 슬픔이나 아픔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고 가끔 기쁨이나 행복이 전달되기도 했다. 페달러들은 하나의 몸에서 뻗어 나간 근육이나 신경들과 비슷했다. 페달을 밟으며 호흡의 리듬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고 페달이 어느 지점을 지날 때 힘을 주어야 하는지도 닮아갔다. 내 발의 오른쪽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그 힘이 마지막 자리의 페달러에게까지 전달되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는 똑같은 근육을 사용했고 비슷한 힘으로 페달을 밟았다. 닮지 않으려 해도 닮을 수밖에.
--- 「Ⅰ.오류들_ 질문과 심문」중에서

히로의 집 문의 비밀번호는 단순했다. 그의 궤도 넘버였다. ‘1212-50’은 그처럼 단순한 인간이었다. 분명한 목표를 좋아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순수한 인간은 자살 따위는 하지 않을 터였다. 아니 순수한 인간이라 다른 페달러들보다 죽는다는 사실에 쉽게 전염되는 것일까. 나는 금방 나의 가정이 편협하다는 걸 인정했다. 누구든 스스로 죽을 수 있었다. 순수한 인간이든 타락한 인간이든.
--- 「Ⅰ.오류들_ 흔적」중에서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1212궤도의 위용은 위압적이었다. 도시의 핵심은 1200급 궤도였다. 1200궤도가 돌지 못하면 도시는 암흑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단위의 궤도들은 관공서 정도에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1200급 궤도가 돌아야 비로소 지하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리고 거리의 등을 밝히고 집안의 전기를 공급했다. 1200급 궤도가 돌아야 병원도 학교도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그 1200급 궤도들 가운데 1212궤도는 페달과 톱니의 크기가 가장 컸다. 1212궤도 하나만으로도 도시 전체의 전등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
--- 「Ⅱ.또 다른 오류들_ 낯설면서도 신선한」중에서

나는 그 말에는 대꾸할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그녀나 내가 궁금해하는 사실들이 밝혀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망상에 가까운 기억들의 실체나 진실 따위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무의식은 자꾸만 궤도를 떠나게 했다.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흘러왔다. 문이 열리면 이 세상과 완전한 이별이 될지도 몰랐다.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심장이 델 정도였다.

--- 「Ⅱ.또 다른 오류들_ 단순한 반대」중에서

출판사 리뷰

회전하는 궤도, 그것을 움직이는 땀과 근육, 그 물성이 은폐하는 삶의 진실들.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전민식의 SF 장편소설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세상은 역시나 어딘가 망가져 있고, 관리자들은 늘 그렇듯 일반 사람들을 기만하려고 들고, 평범한 이들은 나름의 불만은 품으면서도 주어진 규범에 내몰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소설 《1984》 이래 독자들에게는 무척 익숙한 소설적 풍경이다. 언제나 그랬듯 작품 안의 사람들은 자신이 갇혔음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실 이런 디스토피아는 우리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소설들은 우리 세계의 그런 본질을 내보이며 우리 역시 숱한 작품들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고 또 깨닫지만, 책을 덮는 순간 바로 거대한 일상에 휩쓸리며 늘 그 사실을 망각하고 만다.

소설의 도시에는 ‘궤도’, 굳이 더 정확히 말하면 궤도‘들’이 있다. 자전거처럼 사람이 페달을 밟아 돌리면 이 거대한 장치가 회전하며 도시에 필요한 전력이 생산되는 구조로 그려진다. (물론 그것이 정말 전기를 만드는지는 소설 내에서 꽤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도시의 궤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1212번을 움직이는 ‘페달러’다. 배급받는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신의 단련된 근육으로 바퀴를 밟아 궤도를 움직이는 기계적인 일상을 그는 반복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지속적인 기억의 훼손이 있었음을 자각하고, 친한 친구의 수상한 실종과 새로운 인물과의 조우는 그를 익숙했던 일상의 바깥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외적 양식을 충실히 따르는, 장편치고는 심플한 분량의 이 소설에서 돋보이는 요소는 육체다. 신체의 부분 부분을 이루는 근육들이 조여지고 부풀면서 하체로 에너지를 내뿜고, 그런 몸뚱이들이 열을 짓고 그들만의 운율에 맞추어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조정이나 사이클 경기 중계방송이나 다름없다. 그 육체의 운동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세계 속 주인공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고통이자 쾌락으로 기능한다. 또한 그것은 개인이 모종의 이유로 기억을 주기적으로 상실하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과, 심지어 타인들의 날것의 감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궤도는 확장된 감각이고 사회를 이루는 물적 뼈대이며 어떤 의미로는 ‘주어진 삶’의 목적론적 동의어다. 그러나 이 궤도는 어쨌든 실재하긴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의미나 역할이 과연 그 안에 들어 있는지는 무척 미심쩍은 존재다. 이 점에서 그것은 현실의 매스미디어나 SNS와 매우 닮았다. 우리가 가령 유튜브 영상에서 느끼는 감각들, 가령 환희는, 분노는, 심지어 어떤 깨달음마저 모두 실존하는 것이었지만, 그 단편적인 감상들은 이내 휘발하며 삶을 분절시키고야 말았다. 그리고 인터넷 업체들이 직조하는 웹과 네트워크 사회는 인터넷이 분권적이고 민주적일 것이라는 과거의 상상과는 전혀 반대로, 중앙에 어떤 거미가 도사린 거미줄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에게 삶에서 마주치는 날것의 감각은 소중하다. 심지어 그 너머에 어떤 대상이 없는 가짜 감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아도 드립커피는 마셔야 하고 스마트폰은 잠들기 직전까지 끌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우리 개개인의 삶이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더욱 물신적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런 감각들의 제국이 우리 현실의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데 공헌했음은 다들 잘 알고 있을지라도. 그 감각의 미학은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가능성을 주시하는 소설 《그냥, 내버려둬》.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전민식의 신작 장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라는 객체는 분명 나 자신에게만은 세상의 중심이겠지만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나는 인간 세상의 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혼자만 산다면 그런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지만, 인간 누구나 결국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기에 우린 구속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역시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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