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여는 말: 소설을 살린 소설
제1장 고독에 관한 이야기 1.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2. 백년의 고독 제2장 경이로운 현실과 마술적 사실주의 1. 경이로운 현실 2. 마술적 사실주의 제3장 현실과 허구의 경계 허물기 1. 현실의 시적 변형 2. 고독한 사람들의 마술적인 삶 3. 규정이 불가능한 소설 제4장 문학으로 부활한 역사와 정치 1. 호모 폴리티쿠스와 호모 로켄스 2. 역사 속 개인의 정치적인 삶 3. 정치적 ‘기억’의 문학화 4. ‘유토피아’ 건설하기 맺는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야기한다 부록1: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 부록2: 가보의 외가댁 평면도 참고문헌 |
조구호의 다른 상품
|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에 원시의 토착 신화와 전설을 ‘마술적으로’ 결합해 ‘시적(詩的)’으로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소설 미학을 창조했다. 고독으로 점철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소멸해 가는 부엔디아 가문의 운명에 블랙 유머와 풍자, 패러디를 마술적·시적으로 융합시킨 이 소설은 소설의 덕목이 ‘재미’에 있음을 확인해 준다.
--- p.14 이런 상황에서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그는 1976년 정치적인 이유로 멕시코에 정착한 뒤에 삐노체뜨가 권좌에 머무는 한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기자·작가 정신을 되살려 5년 동안 언론매체에 정치적인 기사를 주로 썼다. 이렇게 하는 것이 칠레의 군사 독재에 항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투쟁이라는 논리였다. --- p.29 『백년의 고독』에서 ‘고독’이 테마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100년’은 그 시간적 의미와 함께 작품의 서사적인 면을 포함하는 플롯에 해당한다.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작가로서 고심한 것은 자신이 설정한 테마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 즉 작품의 ‘톤’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였다. --- p.42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초기의 연대기 작가들보다 더 현실에 집착한 작가는 없을 터인데, 이들 역시 그 경이로운 현실이 상상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술적 사실주의의 경향성을 띠는 문학의 생산으로 연결되었다. 카리브에서는 신대륙 발견 이전의 마술적 세계관과 독창적인 원시 신앙에 아주 다양한 문화가 더해지면서 일종의 마술적 종합이 이루어졌고, 이 마술적 종합은 끊임없는 예술적 관심의 대상이자 결코 고갈되지 않는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 --- p.80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이성이나 합리성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환상이라는 것을 현실로 전위시킨다. 그가 “상상력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기반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말했다시피, 다른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그에게는 자연과의 동일화 과정을 통해,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실로 바뀌게 된다. --- p.135 프란시스꼬 엘 옴브레와 관련해서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들은 내 노벨 문학상 수상식의 배경음악으로 벨라 바르톡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3번’을 틀어놓았다. 나는 그 음악을 틀어 준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나, 그들이 배경음악으로 어떤 것이 좋을지 내게 물었더라면 ─나는 그들과 벨라 바르톡에게 진정으로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면서─ 어렸을 때 열리던 파티에서 들은 프란시스꼬 엘 옴브레의 즉흥 로만사들 가운데 한 곡을 선정했을 것이다.” --- p.178 콜롬비아 현대사를 핏빛으로 물들인 폭력의 문제는 가르시아 마르께스에게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를 다루는 것은 작가의 숭고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 p.218 『백년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창세기이며 묵시록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이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더욱 넓고 깊게 바라봄으로써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초월적 지역주의, 다시 말해, 좁게는 콜롬비아 넓게는 라틴아메리카라는 특정한 지역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추구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 --- pp.230-231 |
|
20세기와 ‘소설의 죽음’
20세기 들어 모더니스트 사이에서는 “소설의 죽음(Death of the novel)”이라는 인식이 싹텄다. 그러한 ‘소설의 죽음’은 소설의 화두가 ‘인간’에서 벗어났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인간’에 관한, ‘인간’을 위한 이야기였던 소설이 어느새 그저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영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 속 인간의 종말에 대해 윌리엄 포크너는 “나는 인간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며 “인간은 단지 견뎌 내는 것이 아니라 승리할 것”이고 그것은 “그가 영혼, 동정심과 희생과 인내를 갖춘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광산 속 카나리아 같은” “시인과 작가의 의무는 이러한 것에 관해 쓰는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위대한 선언에 영향을 받은 또 한 명의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 『백년의 고독』 그리고 ‘소설의 부활’ 1967년 5월 30일, 포크너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꾼’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드디어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써 내려간 소설, 『백년의 고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소설은 곧이어 자신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의 고독과 현실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이 다시 ‘인간’과 그를 둘러싼 ‘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자신의 의무를 되찾은 것이었다. 밀란 쿤데라는 이 마술적인 소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소설의 종말에 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바야흐로 ‘소설의 죽음’이 끝난 시점이었다. 소설은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금 종이 위의 현실이 되었다. 가르시아 마르께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저자는 그렇게 “소설의 죽음”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킨 『백년의 고독』을 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다. 사실, 마르께스 스스로가 말했듯, 종이 위의 현실인 『백년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특히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삶을 이해할 때 더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백년의 고독』의 맛을 잘 느낄 수 있게 도우면서도 그저 정보를 제공하는 딱딱한 해설서 방식의 해설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 살”았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시적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하기”의 방식으로 쓰였다.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와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마술적인 시적 변형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읽다 보면, 『백년의 고독』과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