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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자유에 관한 가장 명료한 통찰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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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규정하기 힘든 개념

· 1부 · 자유의 오랜 역사

1 누구의 노예도 아닌 삶: 고대 그리스의
자유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적 자유의 발명
-그리스의 자유: 환상인가 현실인가?
-자유의 비평가: 과두제 집권층과 소피스트
-자유의 비평가: 플라톤
-카이로네이아 전투 이후: 내적 자유로의
전환
2 고대 로마 시대 자유의 흥망성쇠
-공화정 초기의 자유
-자유를 위한 투쟁: 공화정 중기에서 후기
까지
-아우구스투스 이후: 제정 초기의 자유
-제정 후기 자유 숭배의 종말
-고대 로마 이후: 중세 시대의 자유

· 2부 · 자유의 부흥

3 르네상스 시대의 자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고대 자유:
인문주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고대 자유:
-인문주의 이후
-알프스 인근 지역에서의 고대 자유의 부흥
-잉글랜드의 고대 자유
-자유의 재고? 종교 개혁의 영향
-자유와 자연권
-18세기 초의 자유
4 대서양 혁명 시대의 자유
-대서양 혁명의 민주적 자유
-민주적 자유의 한계
-고대 자유 숭배의 승리
-미국 독립 혁명에 나타난 자연권과 자유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 3부 · 자유의 재고

5 근대 자유의 발명
-1776~1815년의 자유와 반혁명 운동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프랑스 왕정복고 시기 근대 자유의 발명
-독일과 영국의 자유주의적 자유
-미국 공화국 초기의 자유 논쟁
6 근대 자유의 승리
-1848년 이후: 프랑스의 근대 자유
-1848년 이후: 영국과 중유럽의 자유주의적 자유
-19세기 말 유럽의 자유주의와 집산주의
-1848~1914년 미국의 근대 자유
-1880~1945년 유럽의 근대 자유에 대한 저항
-미국 도금 시대 자유주의 논쟁
-냉전 시대 이후의 자유

나가는 말: 21세기의 자유
감사의 말

삽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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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안넬리엔 드 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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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 정치사학과 교수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 정치 철학과 정치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와 정치 사상에 관한 탁월한 전문가로서, 정치 철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주류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을 전공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수학의 역사를 만든 놀라운 발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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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5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84쪽 | 153*225*28mm
ISBN13
9791159715853

책 속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를 해방하는 의식을 행할 때 해방 노예에게 원뿔 모양의 모자를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자는 정치적 의미의 자유를 상징하게 되었는데, 일례로 로마에 비밀 투표가 도입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 주화에 이 모자가 새겨졌다. 1760년대와 1770년대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뉴욕 반군은 영국 통치에 대한 저항의 뜻을 알리기 위해 이 자유의 모자로 장식된 자유의 기둥을 세웠다. 1790년대에는 프랑스 혁명가들이 일상의 복장에서 이 상징을 사용했는데, 그들은 붉은 모직 모자를 쓰는 것으로 자유에 대해 지지를 표현했다.
---「들어가는 말: 규정하기 힘든 개념」중에서

헤로도토스가 전한 이 일화에는 그리스인들에게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는 명백한 교훈이 담겨 있다. 실제로 스페르티아스와 불리스가 보여준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사회적 체면보다 자유를 더 소중하게 여겼고, 심지어는 자유를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인들은 크세르크세스와 같은 절대 군주에게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굴복한 페르시아인들과 달랐다.
---「1. 누구의 노예도 아닌 삶: 고대 그리스의 자유」중에서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도 개인의 안전과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중 자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인들은 타르퀴니우스의 통치를 경험하면서 군주정은 언제나 전제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파트리키(귀족)의 폭압적 행동, 특히 플레브스(평민)의 삶과 이익을 무시하는 행동에 대한 불만은 평민이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고대 로마 시대 자유의 흥망성쇠」중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은 고대의 것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자극으로 고대 후기와 중세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과는 매우 다른 정치적 전통을 재발견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즉, 왕과 군주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가치로 삼은 전통이다.
---「3. 르네상스 시대의 자유」중에서

세계를 해방하려던 대서양 혁명에서 모순점은 동산 노예제를 근절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권력을 민중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담론에도 불구하고 혁명가 대부분이 민주주의와 민중 통치 체제에서 많은 사람, 특히 여자를 배제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혁명가가 하인 등 특정 부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역시 정치 참여에서 제외하기를 원했다.
---「4. 대서양 혁명 시대의 자유」중에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반혁명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자유보다는 방종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중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들이 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법이라도 무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 주권에 기반을 둔 정부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질 수 있으며, 따라서 자유가 파괴될 수 있었다.
---「5. 근대 자유의 발명」중에서

냉전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국가의 개입이나 경제 안보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 반드시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필요악으로서 최대한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국가조차도 국가는 결코 해방적 행위자로 간주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편협’하고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던, 도금 시대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제한된 자유 개념을 수용했다.

---「6. 근대 자유의 승리」중에서

출판사 리뷰

자유에 대한 인식과 자유를 둘러싼 논쟁

시대에 따라 지식인들은 자유에 관해 어떤 주장을 펼쳤으며 자유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자유를 둘러싸고 당대에는 어떤 논쟁이 오갔을까? 저자는 헤로도토스, 플라톤, 티투스 리비우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 등 저명한 사상가, 역사가, 정치가의 저서를 비롯해 자유와 관련된 방대한 문헌을 분석해 자유의 계보를 세밀히 추적한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자유의 사상이 발전하는 데 이 지식인들과 이들의 저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힌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자유는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들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자유 국가란 민중이 국가의 통치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를 뜻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정치적 자유, 다시 말해 민중 자치가 중요하며 이런 형태의 정치 체제만이 개인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민주적 개념의 자유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니콜로 마키아벨리, 에티엔 드 라 보에시 등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부흥했다. 인문주의 사상은 이후 18세기에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의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유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겨 자유가 정부 권력의 제한에 달려 있다는 개념이 수용되었다. 그리고 뱅자맹 콩스탕 등 당대의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는 전혀 다른 개념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자유에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는 요한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냉전 시대 이후에는 정부의 영역 및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자유를 잘 누릴 수 있다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

자유의 역사는 많은 이들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온 투쟁사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공화정을 전복하고 일인 통치를 시작하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시도를 막아 로마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불명예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없다. 노예 제도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강조하며, “우리는 영광스럽고 자유롭게 태어났다. 이것들을 수호하자. 그럴 수 없다면 존엄하게 죽자.”라고 역설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인 소小 카토는 카이사르와의 결전에서 패한 뒤 자결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유인으로 남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 독립 혁명에 앞장섰던 패트릭 헨리는 1775년 영국에 대항해 싸울 것을 촉구한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한다. 이후 미국의 혁명가들은 자유의 가치를 잘 표현한 이 유명한 구호를 반공식적 강령으로 채택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처럼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돌아봄으로써 자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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