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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부 · 전환 시대의 비평 논리 ‘뉴노멀’ 시대의 소설: 김세희와 김봉곤의 소설 우리 이웃의 문학: 장류진, 이주란, 윤이형의 소설을 통해 본 한국 소설의 인간학 아폴로 프로젝트, AGAIN!: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 장강명, 김혜진, 김세희의 소설 세계의 불안을 견디는 두가지 방식: 조해진의 「산책자의 행복」과 윤고은의 『알로하』 ‘한류’와 협동적 창조의 가능성: 「오징어 게임」과 「지옥」을 통해 본 ‘K-콘텐츠’의 문명 비판 제2부 · ‘문학의 윤리’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윤리의 행방: 윤리비평 비판을 위한 예비적 검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지만: 임현론 자유주의, 캔슬컬처, 윤리: 기리노 나쓰오의 『일몰의 저편』 컴플라이언스와 ‘선의 범속성’ 고유한 삶: 이주란의 『어느 날의 나』 긍정할 수 없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 윤이형의 「버킷」 제3부 · 비평의 안과 밖 자아 생산 장치로서의 에세이: ‘에세이 열풍’을 읽는 하나의 시각 김봉곤 사태와 창작의 쟁점들 문학성(文學性)에서 문학성(文學+城)으로, 그리고 그 밖으로 ‘촛불혁명’ 시대의 비평: 한기욱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 비평적 대화를 수행하는 섬세한 독해의 힘: 정홍수 평론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제4부 · 문학은 어디에서나 온다 혁명이 끝나고 난 뒤: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 관음하는 견자: 김소진론 폐허의 반복, 이면의 낙관: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와 한정현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 소설을 왜 쓰는가: 김덕희의 『사이드 미러』와 오한기의 『인간만세』 문학은 어디에서나 온다: 정지돈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우익’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과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 겹쳐 읽기 친밀한 적: 성혜령의 『버섯 농장』 이토록 서늘한 우연의 세계: 우다영의 『밤의 징조와 연인들』 그녀들의 천진 시절: 금희의 『천진 시절』 잔존하는 잔열: 윤고은의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평범해서 쓸쓸한 존재들을 위한 노트: 김미월의 『여덟 번째 방』 다시 읽기 수록글 발표지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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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확행이 단지 저성장과 불평등의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당히 현실에 만족하고 살라는 세뇌에 불과한 걸까. 소확행에는 변화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주체의 실천이 자리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일까. 소확행의 기본정신이 욕망의 통제를 통해 삶의 만족을 획득하려는 데 있다면 거기에는 자신의 욕망을 반성하고 적정한 삶의 형식을 스스로 정립하려는 능동적인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다보면 의외로 근대 산업사회가 제시한 ‘위대한 약속’이 (거짓으로 탄로 났음에도) 아직 우리에게 뿌리 깊게 남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프롬이 말한 보편적 부르주아에의 이상은 그 불가능성이 폭로된 지금에도 여전히 모두가 도달해야 할 사회적 욕망으로 기능하고 있는 건 아닐까.
--- 「‘뉴노멀’ 시대의 소설」중에서 이웃은 누구인가? 한때 비평 담론을 주도했던 ‘타자의 윤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 물음은 사실 많은 종교들이 초창기부터 붙잡고 씨름하던 화두이기도 했다. 사랑의 종교로 일컬어지는 기독교에서 사랑의 소여 대상으로 다름 아닌 이웃을 지목한 것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衆生) 역시 희로애락에 긴박된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이웃을 가리킨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종교들이 지녔던 시대적 혁명성은 정복전쟁 과정에서 제거와 종속의 대상이었던 타자를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어 끌어안아 마땅한 ‘이웃’이라는 범주로 도약시킬 것을 요청한 데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도 쉽게 내뱉고 그칠 일이 아니다. 이웃은 그 지옥 같은 타인을 ‘목숨을 건 도약’ 끝에 끌어올려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세울 때 간신히탄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문학은 (그리고 이따금 철학은) 그 도약의 과정에 어떤 시적인 순간이 내재해 있음을 안다. --- 「우리 이웃의 문학」중에서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희망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유명한 책 제목처럼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이 없다면 우리가 삶을 이어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체가 꽉 막힌 현실을 돌파하여 희망을 자신의 수중에 거머쥘 수 없는 형편이라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때 희망은 생(生)을 위한 자산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부패되어 이내 절망으로 변질되고 마는 치명적인 위험을 자신의 속성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 「세계의 불안을 견디는 두가지 방식」중에서 이후 윤리는 보다 세심하고 관계지향적인 것이 되었다. 그건 아마 한때 힘주어 옹립하려 했던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폭력적인 세계에 맞선 낭만적 저항의 최종 심급이 아니라 일상의 폭력을 무반성적으로 (재)생산하는 미시적 장치일 수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사정이 그와 같다면 타락한 세계와 부대끼는 개인의 (극단적) 주관성으로부터 윤리를 길어내는 일은 자족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터, 이후 윤리는 사회-내-존재로서의 주체가 주변의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탐구의 방편으로 기능의 중심을 옮아갔다. 이때의 ‘올바름’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타자로부터 촉발되는 생각, 태도, 언설 등이 포함되었는데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정동이 한국사회를 배회하면서 이와 같은 폭력에 대해 주체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에 대한 고민 역시 윤리가 그 자신의 이름하에 포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의 일부가 되었다.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지만」중에서 오늘날 캔슬컬처의 출현이 잦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면서 기존에는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폭력으로 규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가 문명화됨에 따라 폭력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병행하여 미시적인 폭력이 새롭게 발명되는 측면도 있다. 이 새로운 폭력은 윤리적 감수성이 약해져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지면서 발생한다. 마쓰 유메이를 태우고 수용소로 향하던 니시모리가,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그녀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언어폭력도 폭력”이라고 힐난하는 장면은 시사적이다. --- 「자유주의, 캔슬컬처, 윤리」중에서 성혜령(成慧玲)의 소설은 차갑고 건조한 문체와 서스펜스의 능란한 활용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불안과 원한의 정동을 서늘하게 묘파해낸다. 그의 소설을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이러한 서술에서 성혜령 소설의 개성적인 문제틀을 구성하는 핵심인자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사회’이다. 그의 소설이 사회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재현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다채롭고 모순적인 풍경을 객관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 날카롭게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와 그 결을 달리한다. 그의 소설적 배경은 현실의 일부를 뚝 떼어내 전경화한 무대장치에 가까우며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여타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절연된 채 고립되어 존재한다. --- 「친밀한 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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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스펙트럼, 균형 잡힌 시선
사회와 문화를 연결하는 문학의 힘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평론집의 제1부 제목은 ‘전환 시대의 비평 논리’로, 고(故) 리영희 선생의 명저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사 1974)를 오마주한 것이다. 이 장에는 「‘뉴노멀’ 시대의 소설」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 「‘한류’와 협동적 창조의 가능성」 등이 실려 있는데, 전환기에 소설적 주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한국 소설의 주체들이 내보이는 모순적 욕망, 즉 과거 산업사회에서 추구하던 성장의 욕망을 간직한 동시에 여기에서 탈피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보려는 욕망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이를 성급하게 재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역사화해낸 것이 큰 미덕이다. 독자들은 한국사회의 면면을 소설의 문장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최근 한국 소설의 뚜렷한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2부는 ‘‘문학의 윤리’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윤리’의 문제는 최근 사회·문화계 전반에서 첨예한 이슈인바, 읽는 이에게 넓고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문단 내 성폭력’ ‘캔슬컬처’ ‘정치적 올바름’ 등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어서 평소 문학평론을 자주 접하지 않은 독자도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 포진되어 있다. 저자는 “문학이 감당해야 하는 새로운 윤리적 지침을 내세우기보다 그 지침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의 목록을 제출”(7면)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 덕분에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방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사안을 균형잡힌 시선으로 파악했다. 제3부 ‘비평의 안과 밖’은 비평가로서의 고민이 응축된 장이다. 최근의 에세이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써내려간 「자아 생산 장치로서의 에세이」, 그리고 ‘문학성’이란 무엇인지 고찰해보는 「문학성(文學性)에서 문학성(文學+城)으로, 그리고 그 밖으로」 등이 담겼다. 개인적인 소회와 내밀한 고민이 도드라지는 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만큼 읽어나가는 동안 저자와 대화하는 기분이 되어 속도감 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제4부 ‘문학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작품론 모음으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여타 평론집의 작품론 모음과 그 구성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우선 작품 간의 진폭이 무척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뚜렷한 관점과 확고한 주장이 있음에도 한영인은 자기 입맛에 맞는 작품 경향을 좇기보다는 과감하게 다양한 작품을 선정한다. 그 결과 이 책에는 고인이 된 김소진의 소설부터 신예 성혜령의 소설까지, 조선족 작가인 금희의 소설부터 노벨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까지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이 담겼다. 한권의 평론집에서 읽을 수 있는 스펙트럼의 최대치라 할 만하다. 판이해 보이는 작품을 한 궤로 꿰뚫는 저자의 분석이 감탄스러운 한편으로, 독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간접 독서가 가능하다. “한영인의 글은 문학비평의 근본적인 자리와 이것이 도달할 수 있는 저 먼 지점까지를 상상해보게 한다. 특히 한국어 단어가 유통되는 사회적인 맥락을 섬세하게 감식하고 감안하는 그의 비평을 통해서 문학은 전후좌우 상하로 열린, 매순간 사방팔방으로 한 사회와 문화의 요소가 형성하는 기류가 나고 드는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추천사, 김나영 평론가) 그렇기에 한영인의 문학평론은 그저 비평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문과 토론의 연쇄로 이어진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갈라지는 욕망들』이 한권의 비평집 이상의 의미가 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생각을 나누며 토론의 장에 참여하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며, 이는 또다른 질문과 주장이 되어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