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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007
캐서린 맨스필드 「미스 브릴」 013
헨리 제임스 「진짜」 027
안톤 체호프 「내기」 093
프란츠 카프카 「단식 예술가」 111
너새니얼 호손 「검은 베일을 쓴 목사」 135
번역자 시선: 그럴 수도 있겠구나 165
엮은이 시선: 타인이라는 심연 169
평론가 시선: 불투명한 진실의 빛 177
질문들 207
다섯 작가의 흥미로운 연결 고리 212
작가 연보 214

저자 소개7

캐서린 맨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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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erine Mansfield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단념하고, 1908년 이후로는 아예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만 거주했다. 전기학자 클레오 토말린은 유럽은 그녀에게 일시성의 습관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단념하고, 1908년 이후로는 아예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만 거주했다. 전기학자 클레오 토말린은 유럽은 그녀에게 일시성의 습관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았는데, 이방인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느낌이 그녀의 제2의 본성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어린 시절의 원고를 제외하고 [뉴에이지]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한 이래로 정기적으로 이 잡지에 기고했으며, 1911년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집 『독일 하숙에서』를 출간했다. 1912년부터는 후에 자신의 남편이 된 존 미들턴 머리가 편집자로 있던 [리듬]지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1916년 「전주곡」에서는 단편소설 작가로서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1917년 결핵에 걸린 이후 여러 휴양지를 전전하며 치료에 몰두하는 한편, 『전주곡』, 『축복』 등 주옥같은 단편집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1921년 두 번째 소설집 『행복』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1년 후 1922년에는 세 번째 소설집이자 생애 마지막 책인 『가든파티』를 출간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고, ‘의식의 흐름’, ‘다중 시점’ 등 실험적인 서사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모더니즘 문학’에 한 획을 긋는다. 이 책은 맨스필드가 연상과 상호 언급이라는 방식을 빌려 책 안의 여러 이야기들을 공조하여 새로운 연관성을 만들어내 완성한 소설집으로, 에피소드적이고 모더니즘적이며 개방적이다. 1923년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중 객혈을 시작하고, 결국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나는 비를 좋아해. 내 얼굴로 비를 느끼고 싶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에 소설집 두 권과 『서간집』, 『일기』가 발간되었다.

맨스필드는 자의식이 강한 모더니즘 작가로서 창작 활동과 인생 모두에서 실험적인 면모를 드러냈으며, 런던에서 버지니아 울프, D. H. 로렌스 등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문필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전 생애를 글쓰기에 투자한 작가로서 “내가 쓰는 모든 것은 나의 존재”라고 피력하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캐서린 맨스필드에 대해 “그녀는 내가 찬미하고 필요로 하는 특성을 갖추었다. 내가 추구하던 예리함과 현실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삶과 창작 모두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이었으며, 그녀가 존경했던 체호프의 작품과 비견되는 그녀의 소설은 단편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모더니즘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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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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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James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헨리 제임스는 1843년,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헨리 제임스 1세의 아들로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혔고, 한 해 먼저 태어난 형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부모를 따라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했고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본 등지에서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뒤 문학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신진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리얼리즘 소설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되는 헨리 제임스는 1843년,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헨리 제임스 1세의 아들로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혔고, 한 해 먼저 태어난 형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부모를 따라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했고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본 등지에서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뒤 문학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신진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발표한 것이 최초의 단편 「실수의 비극」(1864)이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며 1966년에서 1869년까지, 1871년에서 1872년까지 『네이션』과 『애틀랜틱 먼슬리』에 기고자로 참여하였다.

1875년 고국을 떠나 파리로 갔고 거기서 이반 투르게네프,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알게 된다. 특히 투르게네프에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작중인물이라는 점을 배우는 등 유럽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베네치아와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최초의 소설 『파수꾼』(1871)을 내놓은 후, 『뉴욕 트리뷴』의 기고자로 활동하며 파리에 거주하다 1876년 영국으로 가서 그곳에 정착한다. 그리고 잇따라 『미국인』(1877), 『데이지 밀러』(1878), 『워싱턴 스퀘어』(1880), ‘영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여인의 초상』(1881)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중에서 『워싱턴 스퀘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제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한동안 사회소설에 손을 대어 『보스턴 사람들』(1886), 『카사마시마 공작부인』(1886) 등을 발표하였고, 극작에도 관심을 가져 「가이 돔빌」(1895) 등 몇 편의 희극을 썼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사의 회전』(1898), 『비둘기의 날개』(1902), 『특사들』(1903) 『황금 주발』(190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05년에는 2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을 방문하고 『미국 기행』(1907)을 썼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1912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1916년에는 국왕 조지 5세가 수여하는 명예 훈장을 받기도 했다. 사망하기 바로 전 해인 1915년 영국에 귀화하였다.

제임스의 성취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인도 아니고 유럽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을 버텨 내면서 제임스는 “국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둘째, 리얼리즘의 대가이면서 모더니즘의 선구로서 제임스는 형식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던 소설에 형식적 완결성을 부여했고, 소설 비평과 이론의 기반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내면 갈등을 겪는 여성 인물을 전면에 배치했다.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그려 냈을 뿐 아니라, 남성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이들을 내면이 있는 개인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스퀘어』는 세 번째 성취의 사례이다.

쉼 없는 창작열로 23편의 장편, 112편의 단편과 중편, 각종 평론과 여행기, 250여 편의 서평과 수십여 편에 달하는 비평문 그리고 만 통 이상의 편지를 남긴 그는 19세기 문학 리얼리즘에 있어 주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소설을 직접 해설한 『소설의 기예』(사후 1934년 간행)는 소설 이론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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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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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 Pavlovich Chekhov,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1879년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 의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나섰다. ‘안토샤 체혼테’, ‘내 형의 아우’, ‘쓸개 빠진 남자’와 같은 필명으로 생계를 위해 유머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885년 12월 체호프는 레이킨의 초대를 받아 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된다.

거기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로비치와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수보린을 알게 된다. 1884년 의사 자격을 얻은 후 결핵을 앓는 와중에도 의료 봉사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풍자와 유머가 담긴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의 『사냥꾼』을 읽으면서 그의 위대한 재능이 소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무렵 그에게 당대 최고의 작가 그리고로비치가 천재적인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문학에 집중하라는 조언의 편지를 보내 온다.

이 충고 이후 1887년 봄 무렵부터 체호프는 이전과는 다른, 보다 객관적인 작가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으로 수보린은 체호프에게 고정 지면을 내주었고, 경제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의 경제적 후원 덕택에 체호프는 원고 마감 시간과 주제의 제약과 같은 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황야』, 『지루한 이야기』, 『등불』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고, 30세 때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기점으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다루며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하여 단편집 『황혼』(1887)으로 푸슈킨상을 받고 희곡 『이바노프』(1887), 중편소설 『대초원』(1888)을 발표하며 그동안의 스타일에 작별을 고했다. 1890년에는 사할린 섬으로 가 당시 제정 러시아의 유형 제도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관한 르포르타주 『사할린 섬』(1895)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대중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며, 사할린에서 만난 하층민 유형수들과 정부 제도의 부조리는 이후 발표되는 그의 작품이 민중의 삶에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정착한 작가는 왕성한 창작열로 『6호실』(1892), 『문학 선생』(1889∼1894), 『롯실트의 바이올린』(1894), 『대학생』(1894), 『3년』(1895),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갈매기』(1896), 『농군들』(1897)과 같은 후기 걸작들을 집필했다.

한편으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톨스토이, 코롤렌코와 함께 기근(饑饉)과 콜레라 퇴치 자선사업을 펼쳤으며, 학교와 병원 건립 등 사회사업에도 참여했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크림 반도의 얄타로 이사한 체호프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용무가 있어서』(1899), 『사랑스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바냐 외삼촌』(1899), 『골짜기에서』(1900), 『세 자매』(1901), 『약혼녀』(1903) 등을 발표했다.

1904년 1월 17일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된 [벚나무 동산]과 창작 25주년 축하연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만, 그의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같은 해 6월 독일 바덴베일레르(Баденвейлер)로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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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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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Kafka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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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 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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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ial Hawthorn, Nathaniel Hawthorne

1804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청교도의 사상,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많은 작품을 썼다. 1825년 보든 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칩거 생활을 하며 독서와 습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1828년 첫 소설 『팬쇼』를 출판하지만 작품에 불만을 느껴 모두 수거해 파기한다. 한동안 주로 단편을 집필했고,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작품 중 18편을 추려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라는 단편집을 출간해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신의 이름으로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개탄하며 성을 Hathorne에서 Hawthorne으로
1804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청교도의 사상,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많은 작품을 썼다. 1825년 보든 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칩거 생활을 하며 독서와 습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1828년 첫 소설 『팬쇼』를 출판하지만 작품에 불만을 느껴 모두 수거해 파기한다. 한동안 주로 단편을 집필했고,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작품 중 18편을 추려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라는 단편집을 출간해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신의 이름으로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개탄하며 성을 Hathorne에서 Hawthorne으로 개명했다. 초월주의자들의 농촌공동체에서 일 년간 생활했고, 소피아 피바디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청교도 식민지 시대의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삶과 결을 함께한다. 초현실주의와 로맨스를 결합하여 인간의 본성이 내재한 악을 경고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상징적이고 엄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세 무렵 「로저 맬빈의 매장」, 「젊은 굿맨 브라운」 등의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지만 작품의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수입은 얻지 못해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스턴 세관에 취직하기도 했고 협동 농장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850년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의 어두운 사회상을 그린 소설 『주홍 글씨』를 발표했다. 이외에 작품 『일곱 박공의 집』 등이 있다. 1864년 여행 중 6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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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한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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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가평, 용인, 의정부, 연천 등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1970년대 ‘창작과비평’ 민족문학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자음과모음』에 첫 평론을 발표했고 현재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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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플로리다 주립대 로스쿨에서 JD 과정을 밟으며 영문학을 복수전공했다. 법과 문학, 두 세계를 오가며 언어가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뉴욕에서 번역 일을 하며 한국어와 영어 사이를 성실히 오갔고, 섬세한 일상의 결을 포착하는 작품을 특히 사랑한다. 옮긴 책으로는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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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02g | 128*188*13mm
ISBN13
9791192514215

책 속으로

“완전한 이해와 완전한 오해 사이에는, 우리가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회색 지대가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이 바라보는 자리도 바로 그 지대에 가깝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서 시작한 질문이, 이 단편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번역가 시선」중에서

“단편선에 나오는 다섯 명의 주인공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동의해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해되지 못한 ‘타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섯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어딘가 닮아 있다.”
---「엮은이 시선」중에서

“문학은 우리에게 빛을 던져준다. 그 빛은 세계에 관한 명석한 깨달음의 빛일 수도 있고 우리 이웃을 향해 따뜻하게 불타오르는 감동의 빛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은 그 빛을 결코 밝고 투명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그 빛은 환한 드러냄이 아니라 오히려 비밀스러운 숨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와 같은 역설은 무엇보다 문학이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삶이 그 본질적인 성격에 있어 타인에게 투명하게 개방될 수 없기에 발생한다.”

---「문학평론가 시선」중에서

출판사 리뷰

『저 사람은 왜 저럴까?』는 읽는 내내 질문이 따라붙는 책이다. 제목의 물음표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다 끝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독서의 방향을 정확히 가리킨다. 다섯 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시대와 문체를 지녔지만, 낯설 만큼 선명한 현대의 인간상을 공유한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옛날 이야기”를 읽기보다 “지금 내 주변의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선집의 미덕은 다양성에 있지만, 다양성은 종종 산만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함정을 ‘하나의 질문’으로 피해 간다. 체호프의 아이러니, 카프카의 불안, 맨스필드의 감정, 제임스의 심리, 호손의 상징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펼쳐지면서도, 끝내 ‘나’라는 윤곽을 드러낸다. 다섯 편을 읽고도 오롯이 마음에 깊이 남는 이유는, 질문이 타인을 향한 추궁에서 자기 성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작품 뒤에 이어지는 세 가지 해설이다. 번역가·엮은이·문학평론가의 시선은 고전을 해설로 “완성”시키기보다, 해석이 갈라지는 지점을 드러내며 독자가 다양한 관점 속에서 읽기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다. 여기에 각 작품별 토론 질문이 더해져 독서의 끝이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대화’로 이어진다. 고전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억지로 깨려 하지 않고, 이해에 필요한 최소한의 다리만 놓아준다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만든다. 고전을 다시 읽는 이유를 묻는 독자에게, 이 책은 꽤 설득력 있는 대답이 된다.

리뷰/한줄평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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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리뷰 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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