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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사랑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니었던 나에게 늘 필요했음을 중학교 1학년 형에게 다시 형에게 이 밤 그리고 내일 아침 After The Storm 통영 신선대 산복도로 구포역 계속 있는 사람 마르고 젖는 동안 비밀 여름이 아는 이별 진아 직립보행의 계절 2부 나의 아카이브, 바다 여수 물결과 생채기 코펜하겐 서커스의 제왕 낮잠 신혼 1 신혼 2 신혼 3 신혼 4 범냇골 하동상회 셋째 광안리 조빔을 듣는 밤 J에게 앙각 너는 반송盤松되어 온다 다른 여름 3부 천사는 아직 너무 어려서 큰애 작은애 레지스탕스의 고백 여기 밤비 각자의 샤넬라인 후쿠오카 1 후쿠오카 2 심장보다 고마운 당신을 닮는다는 것 수묵水墨 우리는 지금 몇 시입니까 동대신동 와병인 1 동대신동 와병인 2 동대신동 와병인 3 풍기 눈을 감고 해설 | 이렇게 삶은 시가 되고 · 박다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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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읽어주시는 이광수의 『무정』을 듣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듣다가 책의 감동도 집안을 다시 일으킬 해법도 무엇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하고 돌아오면 주인집에서 키우던 누렁소와 참 많이도 울었다 그 누렁소 불법 도축으로 죽고 그때 그 누렁소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나는 너무 가난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길게 휜 소나무숲을 동생과 내려가며 부잣집 얘기를 했지 부잣집 아들 얘기를 했지 […] ---「중학교 1학년」 중에서 […] 나와 주민 번호 뒷자리가 한 자리 다른 너를 병실에 눕혔다 네 속에서 타들어 간 외로움 덩어리를 의학적으로 확인하고 이런 식으로 확인 안 해도 우리는 괴롭게도 형제인데 살래 살고 싶제 살자 이래 돌고 돌아와도 품어줄 이 없는 새해지만 살자 그래 울어서 미치더라도 살자 […] ---「형에게」 중에서 […] 가난이 나를 멍하게 하던 그때, 나는 언제나 오묘해져서 아침과 밤을 삼교대로 번갈아 살면서 삶은 조무래기 손장난 같은 거라고 외쳤는데, 줄 그어진 주차장이 유일한 질서였던 한낮. 혼자 거길 걷기엔 어쩐지 기분이 야릇하기도 했다. 한 평 아니면 반 평, 공평한 죽음이 부러웠고 볕 뜨거워지면 죽음도 잠시 사라지는 정남향에서 서쪽으로 살짝 튼 공동묘지. […] 눈부신 오륙도 앞. 저 멀리 회색 함선 두 척이나 가진 바다는 듬직하기도 하겠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신선대 산복도로」 중에서 […] 바다와 물빛 밤과 불빛 낮과 햇빛 궐련 같은 추억 뻑뻑 함께 마시던 금단의 포도주 입가에 아직 묻어나 시퍼렇게 질린 겨울의 입술 […] 곱창김 씹으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모두 다 이제 모두 다 떠밀려 오너라 그리움의 온전한 정체, 정체여 ---「여수」 중에서 비바람 불던 날 빨랫줄에 앉은 빗방울을 세던 우리 미셸 페트루치아니 몇 곡에 점심밥도 잊었지 쓸쓸한 가을이면 이 동네만큼 묵은 된장이며 막 버무린 냉동 가오리무침 그리고 붕장어 굽는 냄새와 어깨동무하고 우룡산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 ---「신혼 4」 중에서 […] 작은 경차로 퇴근하는 길과 침묵으로 휴식하는 건물 모퉁이마다 하이쿠처럼 짧은 외마디 비명 들리는 듯 구석구석 눈이 가고 내 마음도 그냥 닿게 내버려 두네 이 친절한 도시를 묘하게 닮은 저 달 환락가 나카스의 핑크색 간판처럼 깜빡깜빡 불이 켜졌다 꺼지고 사람도 사랑도 지난봄 벗꽃처럼 우수수 피고 지는데 이 밤은 조총련 귀국선처럼 어둡고 이제 더 어두워지려고 하네 […] ---「후쿠오카 2」 중에서 내 육신 잠들 때 너를 향한 그리움도 나를 향한 위로도 아주 수고스럽게 해 왔음을 알게 된다 손톱만 한 싹 몇 방울 빗줄기에 몸을 세우던 오후 말없이 저녁을 보내온 내 모든 염려가 내 옆에 가만히 눕는다 이렇게 누워 나와 상관없는 밤하늘 바라볼 때 어쩌면 이 하루를 손에 쥐어볼 수도 있는 거겠지 ---「수묵水墨」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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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이란 이런 식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티 없이 말끔하게 행복한 삶도, 아주 작은 기쁨도 없이 내내 불안하기만 한 삶도 불가능하다. 행불행(幸不幸)의 가차 없는 교차만이 우리의 삶일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김정태의 시는 말한다.” _박다솜(문학평론가) “바다를 보며 시인을 꿈꾸던 한 인간의 거침없는 자맥질” 시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사실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쨌든 배우 김정태는 그간의 배역만 보더라도 시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친구》의 도루코, 《우리 형》의 쫄바지, 《해바라기》의 양기, 《똥개》의 진묵…. 그가 출연한 영화를 한 번 이상 접했다면 그의 거친 이미지와 시의 간극에 조금은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는 누구보다 여린 문학 소년이었다. 어쩌면 아픔과 가난으로 점철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풍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이기도 하다.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라는 말처럼 김정태는 연기뿐만 아니라 시로도 그 고통을 해석하기에 이른다. “가족, 그 처절하고 끊임없는 이름” 이 시집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족’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형과 여동생, 엄마, 두 아들, 그리고 아내…. 외딴 세상을 가족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회상은 회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른 혹은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한 개인의 전반적인 서사를 아름답게 꾸며낸다. 가령 그때의 화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화자가 있을 수 없다는 듯 시집 전체에 ‘생채기’의 진행 과정을 관통시키는 것이다. 해설을 쓴 박다솜 평론가의 해설 제목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의 “삶은 시가 되”어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소망, 오직 그것을 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