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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쾌락이 필요한 시절
제1부 그래도 해방 화장실 혁명이여, 영원하라! 베이징 역에서 떠나는 실크로드 기차 여행 절망의 산에서 내려갈 때 지팡이가 되어 준 디탄공원 그 시절 베이징 최초의 서양 음식점, 모스크바 식당 짜장면과 자장몐은 영혼이 다르다 식욕의 해방과 ‘진정한 공산주의’ 혁명은 가도 춤바람은 살아남았다 이 생선을 보니 셰익스피어 문장이 떠오르는군요! 중매공원 이야기 나의 로망, 해방된 중국 여성들은 어디에 56세 아줌마, ‘가출 여행’을 떠나다 엄마, 내 조국은 어디야? 제2부 가난이라는 병 나의 집은 어디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베이징을 나가라 눈물 냄새 나는 거리, 베이징 행복로를 아시나요 도시의 꿈이 모여 밤에만 출몰하는 귀신 시장 세상에는 한 가지 병만 있다. 바로 가난이라는 병이다. 제3부 몰래 눈물 한 방울 베이징 서민들의 유머와 해학의 추억 웃지 못하는 사람들 사라진 호수 타이핑후와 홍위병의 기억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벌에 처한다 애도할 권리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 제로 코로나가 지운 이름들 애국주의 전성시대: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는 시간들 제4부 겨울이 오면 나는 원명원에 간다 아름다운 무덤에서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되다 지금은 사라진 황제들의 슬픈 정원 개와 중국인은 출입 금지였던 곳, 베이징 둥자오민샹 대만인, 중국인 그리고 덩리쥔 ‘중국몽’과 ‘미국몽’ 사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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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봉쇄를 뚫고 나와 ‘자유’를 외치며 백지 시위를 벌였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만두피처럼 순하고 말랑말랑했던 중국인들이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나고 성난 얼굴을 한 중국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중국에 온 후로 처음 목격했다
--- p.10 21세기 중국의 신실크로드 선로 위에서는 어떤 것들이 거래되고 교류될까. 일대일로가 깔리는 신실크로드 시대에는 시진핑 주석의 말대로 중국의 평화적인 굴기와 공동 번영이 전파될까. 아니면 강압과 복종을 요구하는 제국의 질서와 제국의 화폐가 강요될까 --- p.33 날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만 골몰하던 스톄성이 ‘글을 쓰고 살면서’ 자신의 불행한 운명과 화해하기로 작정한 가장 큰 동력은 디탄공원이었다. 매일 디탄공원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과, 사시사철 피고 지고 시들다 다시 열매를 맺고 싹을 틔우는 온갖 자연 풍경의 변화를 몇 년 동안 지켜보면서 그의 슬픔과 절망도 차츰 치유되었다. 스톄성은 글에서 “디탄공원 덕분에 나는 자주 내 운명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p.40 왕씨 할아버지의 주장처럼 ‘영혼이 다른’ 음식을 두고 원조 논쟁을 하는 것은 상상의 적을 만들 뿐이다. 우리는 짜장면과 김치를, 중국인은 자장몐과 파오차이를 각자 맛있게 먹으면 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각자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 --- p.62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펄럭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중국 여성들은 한때 나의 로망이자 롤 모델이었다. 아침이면 출근길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워 학교나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퇴근길에는 시장을 봐서 자전거 앞 바구니에 싣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밥을 짓는, 영화 속 중국 남자들도 한때 내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었던 이상형이었다. … 중국 여성들의 결혼 세계는 평등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줄 알았다 --- p.100 “나는 네가 [사랑이 뭐길래]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처럼 남편 내조 잘하고 시부모 공경하며 아이들도 잘 키워 내는 현모양처인 줄 알았다.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다 그런 줄 알고 처음에는 속으로 너를 반겼다. 하지만 살아 보니 넌 그런 여자가 아니더구나.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너를 어찌 며느리로 삼았겠니” --- p.103 식탁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밥과 반찬을 우물거리던 딸아이가 갑자기 폭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 조국이 뭐야? 조국을 생각하면 무슨 감정이 생겨? 내 조국은 어디야?” --- p.119 내게도 언젠가는 다카키처럼 확대된 다문화 가정이 생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지금은 ‘내 조국은 어디이며, 조국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딸과 아들이 자라서 만일 다른 소수민족이나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우리 가족은 이를테면 한족과 위구르족,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서양인 등 다양한 민족과 조국을 가진 확대된 다문화 가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도 딸아이와 손자들은 여전히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을까. 다카키가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소수자들’(minorities)이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또 다른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우리에게도 머지않은 미래다 --- p.127 외부 사람이나 도시인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빈민굴에 불과하고 주류 계층 진입에 실패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처럼 보이지만, 류궁리 같은 성중촌은 농민공과 도시 빈민에게는 세상의 중심을 향해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주는 삶의 디딤터(落脚城市)가 된다고 말이다 --- p.147 베이징에도 눈물 냄새 나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 이름은 ‘행복로’다. 난장이네가 1970년대에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을 닮은 이름이지만 그곳은 소설 속 무대가 아니라 베이징에 실재하는 거리다. 2002년 무렵 소문으로만 듣던 그곳을 처음 찾아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평생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불행한 사람들을 한나절 동안 다 만날 수 있었다. 그곳 사람들도 한결같이 영양이 나쁜 얼굴이었고 누구 하나 웃는 얼굴이 없었다.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처럼, 행복로는 거리 이름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거리였다 --- p.151 낡은 의자와 식탁 몇 개가 놓인 천막 식당에서는 고깃국물로 만든 국수와 그냥 수돗물로 끓여 낸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멀건 국수 두 종류를 팔았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고깃국물과 채소가 조금 들어간 국수를 먹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돗물로 끓인 밍밍한 국수를 짠지와 함께 먹었다. 아직도 나는 바람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비닐 천막 식당의 희뿌연 알전구 아래에서 후루룩 후루룩 멀건 국수를 먹던 행복로 난장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추워서 오들거리며 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입김과, 국수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한데 섞여 찬바람 부는 행복로의 겨울 하늘에 뿌연 성에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 p.154 문혁 시대 현행범이 됐던 ‘웃지 못하는 사내’는 문혁이 끝난 뒤 어느 날 만담을 보다가 웃음이 터져 나와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미친 듯이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혁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를 사는 중국인들은 다시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 p.201 1966년 8월 23일 아침, 라오서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네 살 손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간다. ‘잘 가’라고 말해 줄래?” 그날 아침 집을 나간 라오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 p.210 “당시 10대의 애송이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누구도 그런 [때리고 부수는 등의 폭력적인] 행위가 패륜적이고 범죄적인 것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은 우리를 부추겼고,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위대한 혁명을 하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문혁이 끝난 뒤, 우리는 마오쩌둥의 충실한 어린 혁명가에서 하루아침에 부모와 선생을 고발하고 학대한 패륜아가 되었다.” 문혁 때 베이징 중학생 홍위병 지도부였던 리동민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오열했다 --- p.212 중국 근현대사의 혁명 열사와 애국지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인민영웅기념비는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정치적 애도의 장소다. 결혼과 출산, 이혼 등 사적인 인생 문제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금기의 시대’를 살아온 중국인에게 애도 역시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러나 인민영웅기념비는 누구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웅들을 애도하고 기념할 수 있는 허락된 장소였다. 저우언라이 총리와 후야오방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 수많은 중국인이 이곳에 와서 화환을 바치고 애도한 이유도 바로 인민영웅기념비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공적인 애도 장소였기 때문이다 --- p.233 지난 3년 동안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되돌려 줘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애도할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지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리 소문 없는 검거 폭풍 속에 어디론가 사라진 수많은 저항자들에게도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 --- p.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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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의 삶을 살고 있는 진짜 중국인들의 얼굴
“사람들이 봉쇄를 뚫고 나와 ‘자유’를 외치며 백지 시위를 벌였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만두피처럼 순하고 말랑말랑했던 중국인들이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나고 성난 얼굴을 한 중국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중국에 온 후로 처음 목격했다”(10쪽). 한국의 언론, SNS, 동영상 플랫폼에 단골로 등장해 우리의 혐중 정서를 자극하는 중국인들, 각종 원조 논쟁에서 ‘김치공정’, ‘한복공정’ 등 동북공정의 세계관 안에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진짜 중국인들의 얼굴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생의 반반을 한국과 중국에서 살아 온’ 경계인이자 여행자인 글쟁이 박현숙 작가가, 혁명과 개혁개방의 시대를 지나 ‘중국몽의 시대’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면서, 지금도 매일의 삶을 살고 있는 진짜 중국인들의 신기하고 재미있고 슬프고 꿋꿋한 이야기를 수필처럼 단편소설처럼 르뽀처럼 생생하게 담아냈다. 2. 웃픈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과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건국을 거쳐 부국과 강국으로 가고 있고, 나는 건국 시기만 빼고 부국과 강국으로 가는 여정을 대부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개방성과 이데올로기의 유연성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고 또 다른 21세기판 ‘죽의 장막’을 쌓아 가고 있는 모습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24년 전 중국어 한마디 모른 채 큰 가방 하나 들고 중국으로 떠났던 필자가, 도착한 날 숙소 화장실이 고장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절망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하며 짐 가방 속 팩 소주를 꺼내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 흘러, 칸막이 없는 공중화장실에서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줄줄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볼일을 보다가 필자에게 “니하오, 너 외국인이지?”라고 인사하던 시절은 갔고, 열 몇 시간씩 방광을 조절하며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서서 가는 동안 중국 인민의 위대함과 인생의 희로애락의 근본을 깨닫게 했던 내몽골행 만원 열차도 이제 없다. 시진핑의 ‘화장실 혁명’ 발언 이후 무선 인터넷과 ATM기를 갖춘 최첨단 화장실이 등장했고, 베이징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세계로 향할 수 있는 일대일로와 중국몽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촘촘한 감시망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되었다. 건국 이후 중국에서 가장 빠른 변화가 일어난 이 시기, 중국이 부국과 강국의 길을 걷는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웃기면서 슬프고, 웃기면서 화나는 필자 특유의 블랙코미디(왠지 중국인들의 풍자를 닮은)는, 17년 문혁의 감옥에서 나온 장 따예(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후퉁(골목)으로, 80세 할머니가 글을 쓰던 부뚜막으로, 중년의 여성들이 광장춤을 추는 광장으로, 불행한 얼굴의 사람들이 맹물 국수를 먹던 눈물냄새 나는 거리 행복로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3. 여전히 해방을 꿈꾸는 여성들 “나는 네가 [사랑이 뭐길래]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처럼 남편 내조 잘하고 시부모 공경하며 아이들도 잘 키워 내는 현모양처인 줄 알았다.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다 그런 줄 알고 처음에는 속으로 너를 반겼다. 하지만 살아 보니 넌 그런 여자가 아니더구나.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너를 어찌 며느리로 삼았겠니.” 마오쩌둥 시절 혹독한 계급 혁명을 경험하며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여성관에서 철저하게 해방된 줄 알았던 시어머니 입에서 ‘현모양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미 죽은 마오쩌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싶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왜 여전히 사상 개조가 안 된 겁니까? 혁명을 하긴 했나요?”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펄럭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중국 여성들은 한때 저자의 로망이자 롤 모델이었고, 출근길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퇴근길에 장을 봐서 저녁밥을 짓는 중국 남자들은 이상형이었으며, 중국 여성들의 결혼 세계는 평등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중국 여성들의 현실은 달랐다. 특히 이 책 곳곳에서 언급되는, 한 자녀만 낳을 수 있었던 계획생육시대에 여성들이 반복적인 낙태, 혹은 강제 낙태를 감내해야 했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저자는, 56세의 나이에 폭력적인 남편이 지배하는 집을 박차고 나와 작은 자동차에 모든 짐을 싣고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오른 쑤민과, 채소를 씻다가, 요리를 하다가 1.2평의 작은 부엌 식탁에 앉아 고달팠던 자신과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80세 할머니 양번펀, 드넓은 광장에 몰려 나와 부끄러움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광장춤을 추는 다마(‘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SNS를 활용해 유명해진 쑤민은 ‘중국 페미니즘의 우상’이 되었고, 양번펀 할머니의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새로운 중국 여성사를 기록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혁명 사업과 하방을 거쳐 집안일과 육아, 노인 부양을 떠맡아야 했던 세대인 다마(중년 여성)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기쁨’을 추구하며 나름의 해방을 꿈꾼다. 4. ‘대국 굴기’ 아래에서 ‘몰래 눈물 한 방울’ 흘리는 사람들 “베이징에도 눈물 냄새 나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 이름은 ‘행복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난장이네가 1970년대에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을 닮은 이름이지만 그곳은 소설 속 무대가 아니라 베이징에 실재하는 거리다. 2002년 무렵 소문으로만 듣던 그곳을 처음 찾아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평생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불행한 사람들을 한나절 동안 다 만날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처럼, 행복로는 거리 이름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거리였다.” 이 책에는, 중국이 미국과 힘을 겨루는 강대국으로 ‘굴기’하고, ‘중국몽’과 일대일로의 큰 길로 달려 나가는 동안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억울한 사연을 품고 청원하러 전국에서 올라온 불행한 사람들이, 바람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비닐 천막 식당의 희뿌연 알전구 아래에서 맹물로 끓인 멀건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먹는 거리 행복로가 있고, 이케아 앞에서 봉고차로 물건을 옮기고 조립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베이징시 정부가 ‘필요 없는’ 인구를 베이징 밖으로 축출하면서 곧 쫓겨날 농민공 류씨, 노점 금지인 베이징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밤부터 새벽까지만 반짝 열리는 귀신 시장에 도시의 꿈을 위해 좌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돈과 관씨(인맥)가 없어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악을 쓰는 엄마, 쪽방을 전전하면서 간절하게 내 ‘집’을 갖고 싶어 머나먼 국경 근처의 싸고 낡은 아파트를 샀다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2/3 가격에 팔아야 했던 가난한 청년이 있다. 중국 사회에서는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이 책에서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5. 제로코로나가 지운 이름들 “2022년 11월 24일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봉쇄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그 [제로코로나 정책의] 종말을 앞당긴 불쏘시개였다. 중국 정부는 그날 불행했던 참사로 사망자 10명을 포함해 총 19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 그 발표에는 수많은 사상자가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삭제됐다. 죽은 이들은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내가 그중 몇몇의 실명을 알게 된 것은 한국 언론사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이 책 곳곳에는 코로나19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과 희생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있는데, 이 코로나 3년이 이제 (문화혁명이 그렇듯이) 중국인과 중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유례없이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 중국에서는 방역 정책 그 자체로 인한 비극도 다수 일어났다. 아파트가 봉쇄되어 화재 현장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우루무치의 희생자들, 장기 봉쇄로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양들이 동사하자 가축을 잃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목민들, 격리용 호텔이 붕괴하면서 희생된 사람들, 한밤중에 사람들을 강제로 싣고 격리 시설로 향하던 버스가 굴러 떨어져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 백지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6. 애국주의가 뺏어간 웃음과 문화혁명의 그림자 2023년 배우 리하오스는 라이브 토크쇼에서 시진핑의 어록을 인용해 사람들을 웃겼다가 당국에 입건되었으며, 베이징과 상하이 · 항저우 등 주요 도시의 모든 라이브 토크쇼가 잠정 중단됐다. 언론인 뤄창핑은 중국에서 기록적인 관객 수를 경신하던 영화 [장진호]를 보고 중국 군인들의 별명인 ‘얼음조각중대’를 ‘모래조각중대’라고 풍자했다가 ‘영웅열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살았다. 코로나 시기 우한에서 작가 팡팡이 매일 기록한 ‘우한 일기’가 미국에서 출판되자 팡팡은 ‘중국의 비극을 외국에 팔아먹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뻔뻔한 매국노’가 되었으며, 그를 저격한 ‘대자보’들이 인터넷상에 쏟아졌다. 우한의 한 아파트에서는 실제로 문혁 때처럼 팡팡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필자는 웃을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과, 애국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여전히 중국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문화혁명의 상처와 그림자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7. 마음의 국경을 넘은 경계인의 특별한 시선 “내게도 언젠가는 확대된 다문화 가정이 생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지금은 ‘내 조국은 어디이며, 조국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딸과 아들이 자라서 만일 다른 소수민족이나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우리 가족은 이를테면 한족과 위구르족,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서양인 등 다양한 민족과 조국을 가진 확대된 다문화 가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도 딸아이와 손자들은 여전히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을까.” 저자의 가족은 엄마와 딸은 한국인, 아빠와 아들은 중국인이다. 유일한 베이징 사람인 아들은 베이징이 원조인 자장몐이 한국 음식인 줄 알았고, 한국 국적의 딸은 자신의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다. 24년을 중국에서 살아 온 저자는 한국에 오면 중국에 가고 싶고 중국에 가면 한국에 오고 싶은, 양국 모두에 속하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필자는 “생판 남의 일만은 아닌, ‘절반의 중국인’이라는 심정으로 중국과 중국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온도를 담아”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의 시선이 “약한 이들에게 따뜻하고, 권력자들에게 준엄”한 것도, “중국의 복잡한 내면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는 것”도 ‘절반의 중국인’이라는 심정에서 비롯되는 바일 것이다. 땅 위의 국경은 마음의 국경이 된다. 국경을 넘기 쉽지 않은 우리에게는 마음의 국경을 넘은 사람의 특별한 시선이 필요하다. 중국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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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을 때마다 박현숙의 글을 기다린다.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중국과 한국에서 생의 반반씩 살아온 경계인이자, 섬세하고 따뜻한 관찰자이며, 부러운 글쟁이인 그가 24년 동안 살고 만나 온 중국의 속 깊은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이 책은 혁명과 사회주의, 부강과 애국주의의 요란한 함성 뒤에 가려진 중국을 담고 있다. 문화혁명의 감옥에서 살아남은 누드모델 할아버지, 사교육 단속으로 일자리를 잃고 인터넷에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하며 물건을 파는 영어 강사, 56세에 집에서 탈출해 자동차를 몰고 대륙 곳곳을 누비는 여성이 있다. 한국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행복동의 눈물과 한숨처럼, 베이징에는 온갖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행복로가 있다. 홍루몽과 라오서, 모옌과 위화, 스톄성의 문학이 사람들의 삶 곳곳에 숨어 있다. 박현숙의 시선은 약한 이들에게는 따뜻하고, 권력자들의 힘자랑에는 준엄하다. 안보 불안에 사로잡혀 사람들의 웃음과 자유를 빼앗고, 서양 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말자면서 어딘가 제국주의를 닮아 가는 지금 중국 권력의 작동 방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누가 중국의 복잡한 내면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을까. - 박민희 (한겨레 외교 선임기자, 전 베이징 특파원, 『중국 딜레마』 지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