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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글을 시작하며 1부 군자산의 약속 프롤로그 정치방침을 둘러싼 논란 90년대 후반 북한의 개입 민노당·민주노총의 장악 이석기와 경기동부의 몰락 통진당 사태 이후 비정규직 운동 에필로그 2부 한민전 프롤로그 박헌영과 남로당 운동의 적통은 누구인가? 대중노선 대선투쟁 한민전을 따르는 혁명조직 직선제 후 반독재투쟁 통일운동 강령 등 기타 깃발과 용어 에필로그 3부 운동권 열전 안희정 김경수 정청래 송영길 하태경 최민희 김부겸 우상호 정봉주 작가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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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주사파가 도입되었다. 주사파를 도입한 사람들은 서울의 명문대 출신의 80년대 초반 학번들이다. 이들은 6월항쟁을 거치며 주사파를 일약 운동의 주류로 밀어 올렸다.
87년 6월항쟁 이후 주사파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에 집중한다. 하나는 지하당 운동으로, 민혁당·중부지역당·일심회·왕재산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다. 정확히는 노태우·김영삼 정권을 식민지 대리 정권으로 보고 타도 투쟁을 전개하다 96년 연대, 97년 한총련 출범식을 계기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셋째는 범민련과 한총련이 중심이 된 조국통일운동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 주사파 운동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간다. 지하당은 대부분 검거되었고 반독재민주화투쟁 과정에서 학생운동이 사실상 붕괴되었으며 조국통일운동 또한 대중적이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초기 주사 도입과정에서 학생운동 일부가 주사를 받아들였다가 지역에 투신하여 지역 단위의 주사파 운동을 발전시킨다. 지역 단위에 묶여 있던 지역형 주사파는 98년 전국연합을 무대로 전국화하기 시작한다. 그냥 두었다면 전국연합은 아마도 범민련에 가입하여 격렬한 반독재?조국통일운동을 진행했을 것 같다. 아마도 임팩트는 크지만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는 마이너로 전락했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관계 발전, 해외여행 자유화, 인터넷의 성장을 배경으로 전국연합의 노선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안경호·오종렬의 만남, 한호석의 잦은 방남, 인터넷에서 최성혁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돌이켜 보면 북한의 개입은 적절했고 효과적이었다. 주사파는 87년 6월항쟁을 주도하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완전히 장악했다. 주사파는 한국 사회가 식민지라는 급진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대중운동 이론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주사파의 대중운동 전술이 6월의 거리와 적절히 호응하며 주사파 그룹은 일약 6월항쟁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것이 바로 전대협이다. 87년 이후 주사파의 식민지 이론이 발목을 잡았다. 그들은 6월항쟁 이후 사회의 발전 추세와 다르게 지하당을 만들고 강경한 거리투쟁을 진행했다. 그들 다수는 대중적으로 고립되었고 정권의 탄압을 받아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아마도 남한 내부에서는 변화가 어려웠을 것이다. 경로의존성이 컸기 때문이다. 무언가 권위 있는 선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북한은 무리한 거리투쟁 대신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세상과 좀더 넓게 조우하도록 지시했다. 2004년경부터 주사파는 민노당·민주노총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유시민·심상정의 정치세력과 연대하여 주사파 운동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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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앞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신아무개의 글씨체로 된 원훈석이 얼마 전까지 국가정보원 한복판에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주된 임무가 한국에 잠입해 활동하는 간첩을 검거하는 것일진대, 그 국정원 앞에 간첩 혐의로 옥살이를 한 사람의 글씨체가 담긴 원훈석이 버젓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성가족부 건물에 연쇄강간범의 글씨가 담긴 머릿돌이 박혀있고, 한국전쟁 때 전사한 영웅의 묘소에서 중공군과 인민군의 군가가 울려 퍼지고, 일제시대에 순국한 독립유공자 후손의 앞마당에 일본 천황의 동상이 서 있다면 어떨까? 결국 원훈석은 시민단체의 노력 덕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이때 한 국정원 직원은 이 돌덩이 때문에 늘 마음이 쓰였는데 “그간의 체증이 싹 가신다”는 말도 하더란다. 민경우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면 90~2000년대 당시 북한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주사파) 운동권을 장악해 왔다고 한다. 폭력을 지양하는 비폭력시위도 북한의 지령으로 달라진 문화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는 민 대표처럼 간첩 혐의로 세 차례나 투옥될 만큼 주사파 중심에 있던 경험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먼지가 더께 앉은, 기억의 회고록 속으로 과거의 청년 대학생들과 북한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주사파 운동권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역사와 민족 앞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털어놓는 그때의 진실,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진실의 방으로 이제 들어가 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