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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체용론적 도학의 산실, 그 악양정 / 9
Ⅰ. 왜 ‘일두 도학’인가? 16 1. 일두에 대한 올바른 인식 16 2. ‘체용론’ 이해를 위한 기본 지식 20 3. 일용함양의 체용론, 그 광풍제월 구현 24 Ⅱ. 논자마다 ‘일두가 체용론을 통달했다.’라고 하는 까닭은? 30 1. 여러 논자들의 견해 30 2. 체용론이 반영된 자료 36 3. 자료의 유형과 그 특징 48 4. 용用에 대한 의구심, 그 해법 52 5. 체용론적 도학의 사상사적 의의 56 Ⅲ. 일두는 체용론적 도학에 사우師友들을 어떻게 끌어들였는가? 61 1. 일두의 사우師友들 61 2. 한훤당에게 구사한 전략 65 3. 추강에게 구사한 전략 69 4. 탁영에게 구사한 전략 75 5. 사우지도 탁마의 경과와 성과 80 Ⅳ. 일두는 성리학 이론을 어떻게 전개했는가? 85 1. 근원으로, 좀 더 근원으로! 85 2. 시詩에 나타난 성리학 이론 88 3. 문文에 나타난 성리학 이론 92 1) 문文의 전반적 개황 93 2) 소疏와 제문祭文과 서書에 용해된 성리학 이론 96 4. 시詩ㆍ문文을 통해본 일두 성리학의 의의 101 Ⅴ. 일두가 추구한 도학적 이상향은 어떤 형상일까? 108 1. 도학적 이상향의 세 층위 108 2. 형상1 : 생업 영위의 일상적 터전 111 3. 형상2 : 도체 인식의 형이상학적 영역 115 4. 형상3 : 요산요수와 그 흥취의 현장 119 5. 도학적 이상향이 일두학에서 지니는 의미 124 Ⅵ. 일두 도학시道學詩의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는? 130 1. 일두 도학시道學詩의 성격 130 2. 도학시 주제의 표출 양상 133 3. 도학시에 나타난 환희와 한탄 142 4. 일두 도학시의 지향가치, 한탄을 환희로! 149 Ⅶ. 일두는 후학들에게 도학을 어떻게 교육했는가? 155 1. 교육 방법, 실천을 최우선으로! 155 2. 함양군 안음현에서 펼친 도학 교육 158 3. 거창군 수포대에서 펼친 도학 교육 163 4. 유배지 종성군에서 펼친 도학 교육 167 5. 도학 교육이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 172 Ⅷ. 일두와 한훤당의 광풍제월론, 그 동이점은? 177 1. 광풍제월론을 따져야 하는 이유 177 2. 공통점 180 1) 도맥으로서의 광풍제월 계승 180 2) 『소학』에 입각한 행위규범 설정 184 3. 차이점 188 1) 체용론의 비중 189 2) 치인의 층위와 성격 193 4. 광풍제월론의 동이점이 시사하는 의미 198 Ⅸ. 일두 도학에 대한 질문, 그 답변을 어떻게 할까? 204 1. 질문의 유형과 성격 204 2. 청소년기 도학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 207 2. 성년기 도학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 209 3. 환로기 도학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 215 4. 평생기 도학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 220 Ⅹ. 일두 도학이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225 1. 교훈 담론의 단서, 그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225 2. 실천 의지가 주는 교훈 229 3. 체용 인식이 주는 교훈 235 4. 경세 논리가 주는 교훈 240 5. 각 교훈의 의의와 그 수용 방안 246 ㆍ참고논저 252 ㆍ찾아보기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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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는 하동 정씨로서 함양군이 배출한 대학자이다. 하동군과 함양군의 여러 건물들이 일두의 자취를 잘 드러낸다. 일두고택, 악양정, 광풍루光風樓, 제월당霽月堂이 손꼽을 만한 건물들이다. 본관인 하동군과 출생지ㆍ성장지인 함양군의 여러 건물들에 일두의 자취가 반영되었다면, 하동군과 함양군에는 관련 전적典籍도 많으리라 여겨진다. 실제로는 딴판이다. 일두에 대한 전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작성한 〈정여창 신도비명〉을 보면, 무오사화 때 일두 부인이 여러 사상서를 불태웠다고 한다.
일두가 체용론을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일두가 언급한 바를 기술한 자료나 체용론의 시각에서 일두를 평가한 자료가 많다. 추강秋江의 〈추강냉화秋江冷話〉와 탁영濯纓의 〈속두류록續頭流錄〉과 지족암知足菴의 서書와 미암眉庵의 〈종성일기鍾城日記〉와 포초圃樵의 〈정사록丁巳錄〉과 돈재遯齋의 제문이 그런 자료이다. 이들 자료를 보건대, 자료별로 강도의 차이가 있되 본체론ㆍ인성론ㆍ체용론ㆍ수양론ㆍ가치론이 어우러져서 체용론적 도학을 형성한다. 체용론이 본체론ㆍ인성론과 결합하고 수양론ㆍ가치론을 추진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에 체용론적 도학을 상정할 수 있다. 흔히들 일두를 칭송하고자 할 때 점필재?畢齋ㆍ한훤당寒暄堂과의 관계를 거론한다. 점필재와는 ‘틈만 나면 언제든지 찾아뵙고 학문을 배울 정도로’ 긴밀한 사제 사이였고, 한훤당과는 ‘고정남헌考亭南軒’ 내지 지동도합志同道合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친이었다. 점필재ㆍ한훤당이 워낙 준걸이어서 점필재ㆍ한훤당과의 관계를 거론하기만 해도 일두의 위상이 올라가겠으나, 이만이 대학자로 추앙받는 이유일 수 없다. 대학자로 추앙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여러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다음의 요소는 기본이다. ‘빼어난 학덕’이라든가 ‘수기안민修己安民의 정치 논리’라든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품격’이라든가 하는 요소가 그것이다. 일두가 문묘종사의 대상이 된 까닭은 이 세 요소가 결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 요소를 하나씩 살피기로 한다. ‘빼어난 학덕’은 일두를 소개하는 거의 모든 기록, ‘수기안민의 정치 논리’는 목민관 시절,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품격’은 도통론道統論과 연관 체용론이 오경 탐독과 경전의 의리 실천을 관통하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필자는 체용론을 천착한 후에 그 체용론이 둘째 요소 및 셋째 요소와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살펴보고, 사상사적 의의를 선명하게 밝히고자 한다. 이렇게 할 때, 일두 도학 그 자체의 특징과 정체성이 드러나리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