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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장 용(龍) 과 미녀 | 헌화가(獻花歌)와 구지가(龜旨歌)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2장 오쟁이 진 남자 | 처용가(處容歌) 배신으로부터 깨달은 구원 3장 사람이 되기 위하여 | 여우 설화 동물의 마성(魔性)에 관한 순수한 슬픔 4장 아버지를 찾아서 | 주몽(朱蒙)과 유리(琉璃) 설화 결핍과 신비를 품은 칼의 반쪽 5장 빛 없는 불 | 지귀((志鬼) 설화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영혼 역자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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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란 아마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자질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내면적인 어떤 우아한 힘-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일으키는 가장 중요하고 큰 힘은 그것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부여한다는 점이지요.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나약함, 보잘것없는 욕망, 초라한 소원, 허영, 속임수, 배신 등등, 인간의 특성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들을 다 포함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경멸했어요. 그러나 용은 자기 앞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름다운 여인을 찬양한다는 같은 목적으로 뭉치고, 그럼으로써 예전에는 몰랐던 꿈을 꾸고, 그 꿈을 따라 현실 너머로 자신을 끌어올리고,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지상의 주인이요 중심이었던 거지요. 용이 본 것은 바로 그것이었어요. 소식이 퍼지자, 온 나라에서 몰려온 군중으로 바닷가는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을 잃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거리기 시작했어요.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어요. 어떤 사람들은 용을 달래고, 또 누군가는 애먼 바다를 향해 욕하고 협박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서는 거의 광란 상태에 가까운 절망적인 심정으로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까지 있었답니다. 이 노래는 매우 불손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용은 이제 용이 아니라 미천한 거북이가 되었고 숭상과 아첨 혹은 기복의 대상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당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미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를 잡아서 구워 먹겠다’는 말까지 감히 나왔어요. 이 소동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어요. 여인이 존재했을 때 그랬던 것 이상으로, 그녀는 사라짐으로써 아름다움을 더 아프게 느끼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들었어요. 그들의 의지를 자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진정한 공동체가 나타난 것이지요. ---「1장 용과 미녀」중에서 이제 곧 설명할 그 중대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그의 결혼 생활에 전혀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요. 이 갈등이란 흔히 말하는 부부 사이의 사랑싸움이나 성격 차이 같은 게 아니라, 어떤 내적인 번뇌, 즉 처용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정신적 위기나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처용은 때로 몹시 외로워 보였어요. 그의 외로움은 혼자 살 때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았어요. 아내를 안고 있는 거친 숨결의 감미로운 순간에도 왜 그리 마음이 괴로운지 그는 알 수가 없었어요. 겉보기에는 행복한 결혼 생활 중에도 가끔 혼자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거나 일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걸 보았다는 이야기들도 나왔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걸 우연히 듣기도 했답니다.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자기한테 뭔가를 묻는 걸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랑이란 뭘까?” “가족이란 뭔가?” 처용의 이런 좀 유별난 행동이 그 뒤에 일어나는 그들 부부 사이의 갈등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들 부부의 관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자기를 괴롭히던 의심이 바로 눈앞에서 사실로 확인될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가 마주친 광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육욕의 현장과 그로부터 생겨난 고통은 처용에게는 오히려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번쩍하는 한순간, 그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오래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사를 짓누르고 있는 비참한 거짓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던 거예요.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게 불러온 고통들,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이지요. 우리의 이기적인 집착이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았어요.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는 것, 우리는 남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실패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는 이미 배신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어요. 내면의 빛과 함께 해방이 찾아왔어요. ---「2장 오쟁이 진 남자」중에서 전통적인 대가족 아래서는 보통 삼대가 함께 사는 데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친척들도 있고, 아예 들러붙어 사는 군식구들까지 있었지요. 게다가 수없이 많은 역할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효성스러운 며느리이면서 손주며느리인 데다, 사랑스럽고 품위 있는 아내이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는 훌륭한 주부의 역할까지 - 여우가 사람이 되려면 이 모든 걸 해내야 했고,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따뜻한 엄마이면서 자애로운 올케여야 했고,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는 친절한 안주인이어야 했으며, 착한 이모, 고모, 기타 등등이어야 했어요. 그녀가 해내야 할 역할의 목록은 한도 끝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동물적 감정과 행동을 억누르고 정숙한 부인처럼 행동해야 하는 마지막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3장 사람이 되기 위하여」중에서 모든 것은, 우리 인생의 사건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연히 일어났어요. 사소한 사고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그런 우연이 없었어도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너무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 유리는 그 자리에 선 채, 그녀가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멍하니 그녀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내 아버지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분마저도 아버지를 찾아서 한평생을 다 바치지 않았던가,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이웃 인간들에게 전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분조차 적어도 한 번은 아버지에게, 왜 나를 버리시느냐고 울부짖으며 절망 속에서 손을 놓아버리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들이었어요. 그 수수께끼는 뭔가 불가능한 시험이나 시련, 즉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인 사람들 또는, 서로 견디기 힘든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르치는 잔인한 교훈 같은 것이었을까요? 수수께끼의 해답은, 삶의 모든 것이 그렇듯, 바로 등잔 밑에 있었어요. 무엇보다 유리는 그동안 자기가 찾아 헤매고 집요하게 매달렸던 문제 하나를 끝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해답은 바로 자기 눈앞에 있었건만, 그걸 보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이제 그는 또 다른 문제, 즉 자신의 운명을 찾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어요. 자기의 뿌리가 무엇이든 아버지가 남긴 징표의 신비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찾는 일과는 별도로 유리 자신이 해내야 할 새로운 문제였어요. ---「4장 아버지를 찾아서」중에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 걸음 한 걸음씩 조만간 똑같은 먼지와 흙으로 되돌아갈 운명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마치 가슴에 번개가 치듯 모든 걸 뒤바꾸는 깨달음이 내게 일어났어. 불, 어둡고 뜨거운 불 - 인간을 만든 본질이자 실체인 그것. 하루의 힘든 노동을 마치고 뼛속까지 피곤에 절어서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나는 내 몸 안쪽 깊숙한 곳에서 어떤 뜨거운 것이 처음에는 배, 그다음엔 가슴, 마지막엔 머리로 솟구치는 걸 느꼈어.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 불은 일어날 때처럼 빨리 사라졌어. 하지만 바로 거기서 그때, 내 안에서 서서히 타고 있을 이 불에 의해 어느 날엔가는 내가 깨끗이 사라져 버릴 거라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아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전체도 함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적인 경험이었지. 날이 가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익숙한 주변의 참기 힘든 광경들, 판에 박힌 나날의 농사일, 이런 것들이 한없이 지루해지고 가끔은 나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곤 했어. 지난번과 똑같은 경험을 할까 봐 두려운 마음 반,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기다리는 마음 반, 내 마음속은 그렇게 불안하고 쉴 날이 없었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처럼 내 안에서 우르릉거리며 들끓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지. 그건 내 전생의 일부, 영원히 뻗어 있는 무한한 시간 저쪽에서 시작된 나의 전생에 뿌리박힌 ‘업(業)’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단지 호기심이었을까? 어떤 경우든 간에, 내가 살그머니 머리를 들어 여왕의 행차를 잠깐 바라보았을 때, 여왕도 그 순간에 가마 밖을 바라보았어.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그것은 금으로 만든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절망 속에 찾아 헤매던 그 빛이 거기에 있었어. 불길이 서서히 내 안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어.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5장 빛 없는 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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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책, 혹은 시 아닌 시집 같은
낯선 감성으로 다가오는 우리 옛이야기 모음집 헌화가, 처용가, 여우설화, 유리설화, 지귀설화와 등 고전시가와의 새롭고 낯선 조우 주영대사와 주일대사 등 정부 고위직을 역임했던 외교안보 전문가이자, 정치학, 외교학, 국제정세 등을 가르치는 정치학자인 라종일 교수의 마흔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직자와 학자의 면모로만 알려져 있던 라종일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감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를 이야기꾼으로 여기며 건조한 옛이야기 속에 감춰 있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건져 올려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려낸 감성은 어찌하여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는 걸까? 라종일의 탐미야담(耽美夜譚) 《밤드리 노니다가》는 라종일 교수가 40여 년 전인 1983년, 천년 넘게 전해져 온 우리 옛이야기인 헌화가 처용가 지귀설화 등 고전시가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써 외국계 잡지사에 영어로 기고했던 원고를 국문학자 김철 교수가 우리말로 유려하게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고전교과서 어느 페이지에 말라붙어 있을 법한 건조한 옛이야기를 신선한 사유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에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넓히며 입체화하였다. 40년 전이든 2천 년 전이든 아니면 오늘이든, 그 모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자신을 꽃 피워 온전히 드러내는 그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밤드리 노니다가》가 세상에 다시 나오기까지는 연세대 국문과 김철 교수의 우연한 발견이 계기가 되었다. 노 교수의 책장 어딘가에서 오랜 잠에 빠져 있던 영문원고 《The Dragon and the Beauty》를 발견한 김 교수는 그 빛나는 매력에 취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 원고를 직접 번역하겠다는 의지를 라종일 작가에게 전했고, 섬세하고 지적인 문체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조화와 변화의 리듬감을 살린 번역으로 그 아름다움을 되살려냈다. 이다지도 놀라우면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옛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이야기가 한 장면 한 장면 전개될 때마다 저절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고, 옛이야기라는 서사임에도 시적 감성이 느껴지는 번역이었다. 본래 영문원고가 담고 있었던 사유의 깊이와 품위 있는 지적유희의 매력도 잘 살아났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원고라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이야기의 매력 라종일의 탐미야담 《밤드리 노니다가》는 장르를 가름하기 어려운 책이다. 말하자면, ‘고전시가의 인문학적인 새로운 해석’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는 있는데, 시적인 정조와 소설적 서사, 인문학적 전개와 나아가 동화적 서정을 두루 지닌 원고로 어느 한 장르에 묶어 둘 수 없는 원고다. 게다가 사유와 깨달음의 향취를 문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지적인 감흥이 폭발하듯 장르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그야말로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를 증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모호한 정체성을 ‘라종일의 탐미야담(耽美夜譚)’으로 명명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우리 고전문학에서 ‘야담’은 ‘野談’, 즉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모음집을 말하는데, 탐미야담에서의 야담은 ‘夜譚’, 즉 ‘밤드리 노니다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밤의 신비로운 감성을 담은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탐미(耽美)’는,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임을 뜻하는데, 이 고요하고 나지막하고 사랑스러운 원고는 ‘탐미탐미탐미’ 하지 않고도 탐미를 따라간다. 흥미롭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무엇보다 낯선 까끌거림이 놀랍다. 모든 이야기들의 그순간, 에피파니 《밤드리 노니다가》라는 제목은, 이 이야기의 서사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의 또 다른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정하게 되었다. 라종일의 탐미야담에는 바로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는 ‘그 어떤 순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밤드리 노니다가’는 8구체 향가인 「처용가」의 둘째 행에 놓인 싯구이다. 처용이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놀다가 집에 들어가기까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충분히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였지만 막상 자신에게 큰 변화로 이어질 어떤 사건을 앞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맞는 그 늦은 밤의 긴장감과 흥분을 맞닥뜨리는 ‘그순간’에 멈춰 섰다. 모든 이야기는 ‘그순간’을 맞이하여 그때까지의 서사와는 다르게 방향을 수정하고, 또 다른 줄기의 이야기와 이어지고, 놀라운 상황과 조우하고, 확장하며 이야기의 결말로 들어서며 깨우침에 이르게 된다. 그순간은 평면적인 이야기의 어깨를 세우고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며 분위기를 부풀리게 한 후-독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는 순간이다-푸르륵 꺼져간다. 교과서에 박제된 옛이야기들은 모두 ‘그순간’이 거세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 같은 것들이었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마다 형태와 내용이 조금씩 달랐을 것이고, 그 이야기마다 ‘그순간’ 역시 각기 다른 지점에서 청자들을 웃고 울렸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자기 무릎을 탁 치며 그순간 어떤 깨달음을 깨우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살아 숨쉬던 이야기를 활자에 구속하면서 그순간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라종일의 탐미야담에서 다시 건져 올린 ‘그순간’은 바로 탐미의 정점이 된다. 라종일은, “마치 가슴에 번개가 치듯 모든 걸 뒤바꾸는 깨달음이 내게 일어났어. 불, 어둡고 뜨거운 불 - 인간을 만든 본질이자 실체인 그것. 나의 존재를 휘어잡고 간단히 제압해 버리는 그 어마어마한 빛 없는 어두운 불을 마주하면 나의 그런 노력은 얼마나 연약했는지.”라는 식으로 그순간을 재생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정점은 이렇게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그녀가 웃었던가, 아니 찡그렸던가?”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바로 그순간, 그녀의 미소. 문장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탐미의 궁극을 발견한 순간의 느낌으로 전율이 일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이야기의 그순간은 바로 에피파니(Epiphany), 궁극의 순간으로 승화한다. 라종일은 이곳에서 탐미적 상상력을 완성한다. 탐미 속에서 발아하는 이야기의 힘 헌화가에서 소를 몰고 지나가던 견우노인은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곶ㅎㆍㄹ 것가 받ㅈㆍㅸㅗ리이다.”라고 수줍은 고백을 하며, 꽃 한송이 곱게 피어 있는 험한 벼랑 위로 한발 내딛는다. 견우노인의 발은 벼랑 위 꽃 한송이로 향하지만, 그 용기가 진정으로 향한 곳은 수로부인 쪽이었다. 탐미란 그런 것이다. 본질을 지극히 원하면서도 오히려 본질을 떠나가는 길 위에 핀 꽃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 단 한번의 눈길에 영혼이 부서진 그순간만으로도 족한 그런 것. 라종일 작가는 기꺼이 벼랑 위로 올라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김철 교수는 역자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 오해와 착각의 산물을 읽는 독자들이 더 많은 오해와 착각을 낳아주기를. ‘이야기’는 그렇게 지속되어야 한다.”고. 1부 「미녀와 용」은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향가'의 향연이다. 수로부인에 대한 한 노인의 헌신을 노래한 '헌화가'에서 시작하여, 수로부인을 탐하는 동해용의 고뇌에 찬 이야기를 '구지가'와 '해가'에서 가지고 왔다. 인간과 대결하는 서양의 용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용의 면모를, 미녀를 납치한 용의 마음을 통해 알아보자.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란 아마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자질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내면적인 어떤 우아한 힘-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일으키는 가장 중요하고 큰 힘은 그것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부여한다는 점이지요.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 본문 중에서 “동해 용왕에게 납치된 수로부인의 이야기를 ‘민중 저항’과 연계시킨 「용과 미녀」의 이야기가 진부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민중 저항의 정치적 힘을 ‘탐미적 상상력’으로부터 끌어낸 작가의 ‘용기’에서 나온다. 그것이 ‘용기’인 이유는, 1980년대 ‘민중문학’의 현장―반(反)미학의 절정을 이루었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미학의 정치화’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자 주 아름다움의 본질은 일상의 순간을 떠나 비일상을 꿈꾸는 상상력을 낳는 것이다. 2부 「오쟁이진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역신에게 빼앗긴 처용의 이야기를 담은 향가 '처용가'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처용의 마음을 모른 채 “밤드리 노니다가”를 읊조렸다. 아마 누구보다 처음으로 처용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내를 빼앗긴 처용은 절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자기를 괴롭히던 의심이 바로 눈앞에서 사실로 확인될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가 마주친 광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육욕의 현장과 그로부터 생겨난 고통은 처용에게는 오히려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번쩍하는 한순간, 그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오래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사를 짓누르고 있는 비참한 거짓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던 거예요.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게 불러온 고통들,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이지요. 우리의 이기적인 집착이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았어요.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는 것, 우리는 남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실패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는 이미 배신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어요. 내면의 빛과 함께 해방이 찾아왔어요. - 본문 중에서 “「오쟁이 진 남자」에서 처용은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분노 대신 덩실덩실 춤을 춘 ‘대인배’ 또는 역신(疫神)의 무릎을 꿇린 ‘왕무당’의 이미지를 벗어나, 애욕(愛慾)의 허망함으로부터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통을 꿰뚫어 봄으로써 무한한 자비(慈悲)의 경지에 이르는 보살(菩薩)로 현신(現身)한다. 천년 넘게 무속(巫俗)의 전통 속에 또는 저속한 스캔들의 그늘 속에 묻혀 있던 처용은 이렇게 그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으니 경하할 일이 아닌가.” - 역자 주 깨달음은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내려놓은 절망의 순간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고통을 승화하여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구원의 빛을 발견한다. 3부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의 마음을 담은 ‘여우 설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을 견뎌 인간이 된 단군의 어머니 곰, 웅녀가 먼저 있지 않았겠는가. 여우도 웅녀와 같은 길을 걸으려 고난을 참지만, 한 여성으로 인간 사회를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대가족 아래서는 보통 삼대가 함께 사는 데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친척들도 있고, 아예 들러붙어 사는 군식구들까지 있었지요. 게다가 수없이 많은 역할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효성스러운 며느리이면서 손주며느리인 데다, 사랑스럽고 품위 있는 아내이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는 훌륭한 주부의 역할까지 - 여우가 사람이 되려면 이 모든 걸 해내야 했고,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따뜻한 엄마이면서 자애로운 올케여야 했고,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는 친절한 안주인이어야 했으며, 착한 이모, 고모, 기타 등등이어야 했어요. 그녀가 해내야 할 역할의 목록은 한도 끝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동물적 감정과 행동을 억누르고 정숙한 부인처럼 행동해야 하는 마지막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 본문 중에서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은 욕망 끝에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여우의 이야기 「사람이 되기 위하여」의 결론도 놀랍고 신선하다. “인간이 된다는 건 이만큼 어려운 일이노라. 그러니 착하게 살아라” 하고 끝맺는 이 설화의 교훈주의적 상투성은 “사람처럼 보이는 우리가 실은 여우, 늑대, 뱀, 물고기, 지네가 아닐까?”라는 마지막 한 마디에 깨끗이 무너진다.” - 역자 주 욕망과 본성을 거스르며 인간답게 산다는 일 오히려 동물처럼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4부 「아버지를 찾아서」는 ‘유리 설화’와 ‘주몽 설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 유리는 자신을 남기고 떠난 아비를 그리워한다. 부정의 결핍 속에 유리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주몽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한다. 과연 주몽이 숨긴 건 무엇이었을까? 유리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무엇보다 유리는 그동안 자기가 찾아 헤매고 집요하게 매달렸던 문제 하나를 끝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해답은 바로 자기 눈앞에 있었건만, 그걸 보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이제 그는 또 다른 문제, 즉 자신의 운명을 찾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어요. 자기의 뿌리가 무엇이든 아버지가 남긴 징표의 신비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찾는 일과는 별도로 유리 자신이 해내야 할 새로운 문제였어요” - 본문 중에서 “「아버지를 찾아서」의 유리(琉璃)는 더 이상 신비와 초현실의 안개로 가려진 건국 설화의 영웅이 아니다. 고투 끝에 마침내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푼 유리는 이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선다. ‘밤하늘의 별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던 행복한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혼돈과 분열로 휩싸인 세계 속에서 홀로 길을 찾아 떠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 ―유리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 역자 주 본질을 찾는 일에서 목적은 본질 그 자체가 아니다. 목적은 찾는 과정 그 자체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칼을 들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다. 진리의 구도에서 그 완성은 바로 새로운 시작점이다. 5부 「빛 없는 불」은 한순간의 눈빛에 불타올라 재가 되어버린 지귀의 사랑이야기인 ‘지귀설화’를 자기고백 형식으로 담아냈다. 신비롭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건 내 전생의 일부, 영원히 뻗어 있는 무한한 시간 저쪽에서 시작된 나의 전생에 뿌리박힌 ‘업(業)’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단지 호기심이었을까? 어떤 경우든 간에, 내가 살그머니 머리를 들어 여왕의 행차를 잠깐 바라보았을 때, 여왕도 그 순간에 가마 밖을 바라보았어.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 본문 중에서 “그것은 금으로 만든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지. 내가 그토록 오래 동안 절망 속에 찾아 헤매던 그 빛이 거기에 있었어. 불길이 서서히 내 안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어.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 본문 중에서 “‘낭만주의’, ‘낭만적 사랑’ 같은 관념이나 실천은 세계사적으로 18세기 이후, 주로 독일 낭만주의 등을 통해 출현하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내가 늘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한반도에서는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불타는 사랑의 화신(化身/火身)’―열정이 불이 되어 그 불에 타 죽었다니!―을 그린 ‘슈퍼 낭만적’ 지귀(志鬼) 설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한 천 년쯤 후에는 숨 막히는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열녀 춘향전’ 같은 것이 우세종 러브스토리로 판을 친다. 이것도 희한한 일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느니 하는 믿음은 역시 의심스럽고, 문예사조사니 뭐니 하는 것도 귀담아들을 것이 못 된다. 라종일 교수가 지귀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빛 없는 불」은 다른 의미에서 경이롭다. 이 이야기 속에서 지귀는 흔히 말하듯 이루지 못할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도 아니고, 화마(火魔)를 물리치는 주술적 존재도 아니다. 지귀의 가슴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한 뜨거운 불길은, 그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먼지와 흙으로 돌아갈” 우리 인간의 “본질이자 실체”이며 “깨달음”의 개시(開示)다. 구도의 길에 들어선 지귀가 꿈결처럼 마주친 여왕의 눈길은 말 그대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현현(顯現)이자 궁극의 순간(Epiphany)이다. 진리의 불 안에서 모든 번뇌와 고통을 소진(燒盡)하고 마침내 니르바나(Nirva?a)에 이른 지귀 선사(禪師)의 법열(法悅) 넘치는 황홀한 게송(偈頌)을 듣고 나 역시 숨이 막혔다.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 역자 주 사랑과 깨달음은 다르지 않으며, 사랑과 깨달음은 즉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들끓는 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인연이 닿는 단 한번의 눈길로도 들끓어 오를 수 있다. 사랑은 일상의 삶과 비일상의 꿈 어딘가에서 들끓어 오른다. 라종일의 탐미야담, 《밤드리 노니다가》는 향가와 설화 등 고전시가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이 책에는 ‘헌화가’, ‘처용가’ 등 향가와 ‘구지가’ 또는 ‘해가’ 등 고대가요, ‘여우 설화’, ‘유리 설화’, ‘동명왕 설화’, ‘지귀 설화’ 등 설화 등 고전시가가 나온다. 향가(鄕歌, 사뇌가)는 향찰로 기록된 신라 시대 민간 시가(詩歌)로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등 25수가 전해진다. 헌화가(獻花歌)는, 삼국유사 기이편 수로부인조(條)에 실린 4구체 향가로, 신라 성덕왕 때 김순정이 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중 그의 부인인 수로가 해변 절벽 위 철쭉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고, 길을 가던 소를 모는 노인이 용기를 내어 절벽 위 철쭉을 꺾어 수로에게 바친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紫布岩乎邊希 자포암호변희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不喩慙?伊賜等 오힐불유참힐이사등 花?折叱可獻乎理音如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딛배 바회 ㄱㆍㅿㅎㆎ 자ㅂㆍ온 손 암쇼 노ㅎㆎ시고 나ㅎㆍㄹ 안디 븟ㅎㆍ리샤ㄷㆍㄴ 곶ㅎㆍㄹ 것가 받ㅈㆍㅸㅗ리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거든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양주동 해석- 구지가(龜旨歌)는, 삼국유사 가락구기조(條)에 실린 4구체 고대가요로, 가락국의 추장들이 김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불렀다고 한다. 龜何龜何 구하구하 首其現也 수기현야 若不現也 약불현야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해가(海歌)는, 삼국유사 기이편 수로부인조(條)에 실린 4구체 고대가요로, 구지가와 내용이 흡사하며, 수로부인의 이야기인 헌화가와 연결하여 인용되곤 한다. 신라 성덕왕 때 김순정이 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중 그의 부인인 수로의 아름다움에 반한 동해룡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납치했고, 백성들이 소리높여 해가를 불르자 그에 놀란 용이 수로부인을 도로 내놓았다는 이야기다. 龜乎龜乎出水路 구호구호출수로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략번지끽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여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처용가(處容歌)는,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망해사조(條)에 수록된 8구체 향가로, 신라 헌강왕 때 동해용의 아들 처용이, 자신의 아내와 바람난 역신(疫神)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東京明期月良 동경명기월량 夜入伊遊行如可 야입이유행여가 入良沙寢矣見昆 입량사침의견곤 脚烏伊四是良羅 각오이사시량라 二兮隱吾下於叱古 이힐은오하어질고 二兮隱誰支下焉古 이힐은수지하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의오하시여마어은 奪叱良乙何如爲理古 탈질량을하여위리고 ㅅㆎㅸㆍㄹ ㅂㆍㄹ긔 ㄷㆍ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ㅿㅏ 자리 보곤 가ㄹㆍ리 네히어라 둘흔 내 해엇고 둘흔 뉘 해언고 본ㄷㆎ 내 해다마ㄹㆍㄴ 아ㅿㅏㄴㆍㄹ 엇디 ㅎㆍ릿고 서울 밝은 달에 밤들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해였고 둘은 뉘 해인고 본디 내 해다마는 앗은 걸 어찌할꼬 -양주동 해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