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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01 구두공의 딸, 수족관을 세우다_잔 빌프뢰-파워, 힐데가르트 폰 빙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02 집은 개인의 것이지만, 공원은 모두의 것_옥타비아 힐 03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_레이첼 카슨 04 바다 없이는 생명도 없다_실비아 얼, 티어니 타이스, 아샤 데 보스 05 착취와 차별 속에서 내 의식은 탄생했다_리고베르타 멘추와 라틴아메리카의 여성들 06 아프리카에 심은 일억 그루의 나무_왕가리 마타이 07 고릴라들의 벗, 이곳에 잠들다_다이앤 포시 08 환경운동가들의 무덤이 된 아마존_도로시 스탱 수녀와 숲 지킴이들 09 우리의 땅을 돌려달라_위노나 라듀크와 마돈나 선더 호크 10 차라리 내 등에 도끼질하라_메다 팟카르와 인도의 여성 환경운동가들 11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로 맞선다_마마 알레타와 에린 브로코비치, 기업과 싸운 투사들 12 ‘배들의 무덤’에서 사람들을 구하라_리즈와나 하산 13 호수를 지키는 여성들_마리나 리흐바노바, 베라 미셴코, 갈리나 체르노바 14 정치를 녹색으로 물들이다_페트라 켈리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15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발전입니까_일본의 히라타 키미코 16 재난 자본주의에 맞서다_달마 카르타헤나 17 작은 노력이 기회를 만들어낸다_이사투 시세이, 이칼 앙겔레이, 파티마 지브렐 18 우리의 목소리는 막을 수 없다_어우홍이와 중국의 청년 세대 19 지속 가능한 미래의 틀을 만들다_그로 할렘 브룬틀란 20 세계의 툰베리들이 말한다_미래를 앞당기는 젊은 활동가들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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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프뢰-파워는 이곳에서 이십 년 이상 거주하는 동안 바다와 바닷속 생물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책을 읽으며 자연사와 자연과학을 독학했다. 해안가에서 채집한 조개 등 각종 해양생물과 해초는 물론 화석과 암석, 동식물, 곤충 등 시칠리아 자연의 모든 것이 빌프뢰-파워를 매료시켰다. 그는 특히 시칠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개낙지의 생태에 호기심을 갖고 유리 수족관을 직접 고안해냈다. 해양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잠수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빌프뢰-파워는 유리로 만든 수족관 안에 작은 해양생물을 넣어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심이 얕은 바닷속에 사는 연체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한 잠수용 유리 수족관도 만들었고, 좀 더 깊은 바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잠수용 대형 나무 수족관도 제작했다. 특히 우리처럼 생긴 나무 수족관의 네 귀퉁이에 닻을 매달아 메시나 항구의 바닷속에 넣어놓고 안에 들어오는 생물들을 채집, 관찰했다. (중략) 1835년 빌프뢰-파워는 위와 같은 사실을 동료 학자들에게 알렸다. 그중 해군 장교 출신으로 연체동물과 패류 전문가였던 상데르 랑은 빌프뢰-파워의 연구 결과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무단으로 발표하려 했는데, 다행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빌프뢰-파워를 아마추어 취급하면서 그의 연구를 불신했다.
--- 「구두공의 딸, 수족관을 세우다」 중에서 생태학자로서 메리안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1699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남아메리카 수리남 탐험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은 물론 남성 학자들 중에서도 생태 연구를 위해 배를 타고 멀리 남아메리카까지 간 경우는 없었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여행한 게 130여 년 후이니 메리안이 얼마나 앞섰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당시 메리안은 52세였다. 그는 스물 한 살 딸 도로테아 마리아와 함께 수리남 파라마리보에 정착해서 정글의 동식물과 곤충 들을 수집, 관찰하고 세밀화로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인 농장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예를 박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네덜란드 주인들로부터 학대당하는 (여자) 원주민들이 임신하면 아이를 지우기 위해 씨앗들을 이용한다. 아이들이 자신처럼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니와 앙골라에서 온 흑인 노예들은 잘 대우해주지 않으면 임신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너무 학대받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다. 다음 생에는 고향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게 그렇게 말했다.”고 썼다. 메리안은 백인들이 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정글을 마구 밀어버리는 광경도 지켜봤다. 그는 현지 백인 사회의 사교 생활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직 매일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관찰했고, 모르는 동식물이나 곤충의 정보를 얻기 위해 원주민들과 거리낌 없이 교류했다. --- 「곤충을 찾아 정글로 떠난 여성 과학자」 중에서 카슨을 향한 화학 업계의 공격은 끈질기고도 잔혹했다. 고어 전 부통령에 따르면 『침묵의 봄』에 대한 공격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가해졌던 공격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슨은 여성이었다. 자기 주장을 가진 여성을 히스테릭하다고 폄하해오던 행태가 카슨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레이첼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에 따르면 당시 수백만 달러를 움직이는 화학 업계는 박사 학위도 없는 여성 과학자, 바다에 관한 아름다운 책을 쓴 여성이 화학제품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카슨은 별것도 아닌 문제를 크게 키우는 히스테릭한 여성, 새와 토끼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낭만적 성향의 독신녀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의 여성, 본분을 망각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화학 업계는 카슨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위해 25만 달러를 들여 공작을 벌였다. 종자와 살충제, 제초제를 파는 회사 몬산토Monsanto가 그중 하나였다. 『음식혁명』의 저자이며 1994년도 레이첼 카슨 상 수상자인 존 로빈스에 따르면 몬산토는 카슨을 파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중략) 카슨이 세상을 떠난 지 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카슨의 딸들’이 유독성 화학물질과의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카슨이 세상을 떠난 지 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카슨의 딸들’이 유독성 화학물질과의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레이첼 카슨」 중에서 1985년 12월 27일 이른 새벽, 비룽가 산속의 마운틴 고릴라 연구 캠프 카리소케 리서치 센터Karisoke Research Center 내 오두막 숙소에서 백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포시였다. 그녀의 주검은 끔찍했다. 벌채할 때 쓰는 커다란 마체테 칼이 얼굴을 내리쳐서 두개골이 드러났을 정도였다. 범행 도구인 칼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몸싸움이 있었는지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괴한들이 오두막에 들이닥쳐 포시를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방 안에는 현금과 수표책, 권총 등이 있었지만 괴한들은 도둑질에는 관심이 없었던지손댄 흔적이 없었다. 세계적인 학자의 죽음에 미국을 비롯해 세계는 경악했다. 포시가 마운틴 고릴라 문제를 둘러싸고 밀렵꾼들과 부딪혀왔다는 점에서 보복 살인의 가능성이 즉각 제기됐다. 게다가 캠프 안팎에는 과격한 성격과 행동을 보여온 그에게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과 현지의 백인 사회 역시 포시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 몇몇 용의자들이 체포돼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누가 포시를 죽였는지는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미스터리다. --- 「고릴라들의 벗, 이곳에 잠들다: 다이앤 포시」 중에서 알레타는 “시위를 시작하면서 여성들이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여성들도 함께 시위하면서 땅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과 여성들이 몰로 문화를 지탱하는 기둥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여성들이 숲에서 먹거리와 약초, 염료를 구해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들이 협상에 나서는 것이 절실하고 또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남성들이 전면에 나섰다면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고 더욱 거센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여성들이 채석장에서 시위하는 동안 남성들은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멀리 떨어진 섬의 끝자락에서 벌어진 시위에 시선이 쏠렸고, 이들의 전통 직물이 언론에 소개됐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정부는 결국 2010년 몰로 광산 채굴을 모두 중단시켰다. 자원을 채취하는 것은 사람들이 쓰기 위해서다. 채굴된 원료로 만든 물건을 쓰면서 채굴에 반대할 수 있을까? 『자카르타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알레타는 인상적인 답변을 했다. “대리석으로 무엇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사는 우리에게는 대리석이 어떤 혜택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것만 팔고,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은 팔지 않는다. 산과 강, 나무를 팔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옷감이나 옥수수, 우유는 팔 수 있다.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알레타와 몰로 토착민들은 대리석을 파내지 않아도 잘 살아왔고, 대리석 광산이 문을 닫은 뒤에도 잘 살고 있다. ---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로 맞선다: 여성들만 할 수 있는 싸움」 중에서 2019년 5월 말 열여섯 살 어우홍이는 구이린 시청 앞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으며 등교를 거부하는 ‘파업’에 들어갔다. 일주일간 이어진 시위는 결국 공안(경찰)에 저지당했다. 당국은 그가 다니던 학교와 부모 양측을 압박했고, 그가 다른 환경운동가나 단체와 연결되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방 교육 당국은 그의 부모에게 전화해 기후 활동을 중단할 것과 외국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압력을 받으면서도 어우홍이는 그해 9월 ‘생존을 위한 나무 심기(?生存植?)’ 캠페인을 시작했다. 용돈을 모아 나무를 사서 구이린 주변에 심었다. 금요일마다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다큐멘터리 상영회 같은 모임을 만들었다. 학교 측은 이런 활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다시 교실로 돌아올 수 없다고 압박했다. 심지어 다시 학교에 나오려면 심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우홍이를 고집 센 문제아로 몰아가려는 의도였다. 소셜미디어 위챗 계정은 차단됐다. 시위를 해본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한 것만큼 무섭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고,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2020년 9월 ‘지구 기후 파업의 날’에 상하이의 쇼핑가인 난징루에서 시위한 뒤 에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날 바로 석방되긴 했지만 공안의 강요로 ‘자아비판’ 서한을 써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툰베리는 “액티비즘은 범죄가 아니다. 이 행성의 미래를 위한 평화로운 활동이 불법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중국 당국을 비판했다. 어우홍이의 활동에 자극받아 난징을 비롯한 몇몇 대도시에서 십 대 활동가들이 생겨났지만 정부 눈치를 보는 단체들은 그가 환경 행사에 참가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 「열여섯 살 어우홍이, 기후 파업을 시작하다 」 중에서 릴리의 쓰레기 줄이기 운동은 태국의 대형 유통 업체가 비닐봉지를 공짜로 주는 정책을 철회하게 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아프리카 우간다의 환경운동가 바네사 나카테(Vanessa Nakate, 1996~)는 농업에 의존하는 우간다가 기후변화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는지 알리기 위해 2019년 단식투쟁을 했다. 영국 런던에 사는 안잘리 라만-미들턴(Anjali Raman-Middleton, 2004~)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환경 캠페인 ‘촉트 업(Choked Up)’을 이끌었다. (중략)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분야와 관점에서 접근하든, 그 출발점은 미래 세대의 절박함을 받아들여 지금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나는 전기차를 몰며 재활용을 하고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건 출발점일 뿐 종착점이 아니다. 이 집단적 위기에는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급성을 일깨우는 데에 내 이름을 활용하기로 했다.” 제인 폰다가 CNN 인터뷰에서 툰베리의 호소에 화답하며 말한 것처럼. --- 「세계의 툰베리들이 말한다: 미래를 앞당기는 젊은 활동가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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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실패하면서도
환경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 인간의 모든 삶은 환경과 관계된다. 이 책에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헌신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의 앞부분은 선구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서구 엘리트 여성들이 주를 이루며, 중반부부터는 20세기 후반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수집단 여성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후반부에서는 미래세대의 생각과 목소리를 소개한다. 천여 년 전 독학으로 생태학을 정립한 독일의 수녀이자 종교학자 힐데가르트 폰 빙엔,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에 생명을 바친 도로시 스탱 수녀, 녹색 투사에서 민주화운동가와 정치인으로 변신한 과테말라의 리고베르타 멘추와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 독일 녹색당의 리더 페트라 켈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의 삶과 투쟁은 경이로울 만큼 치열하다. 중증 암에 걸린 상태에서도 살충제와 제초제 등 화학 물질의 유독성을 탐구하며 『침묵의 봄』을 펴내어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레이첼 카슨의 인간적인 면모는 감동을 자아낸다. ‘재활용의 여왕’으로 불리는 감비아의 이사투 시세이를 통해 지구를 뒤덮은 쓰레기 문제를 살펴보고, 러시아 생태학자 마리나 리흐바노바를 통해서는 바이칼 호수 지역의 생태 파괴 실태를 들여다본다. 또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뛰고 있는 청년 환경운동가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인도 여성들의 활동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삼백여 년 전, 군주의 성을 짓기 위해 잘려 나갈 위험에 처한 나무들을 껴안아 지키다가 도끼에 찍혀 목숨을 잃은 인도 여성 환경운동가들은 이름도 없이 그저 ‘환경운동을 한 그룹’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들은 마을에 커다랗게 자란 나무를 베지 말라며 다 같이 나무를 끌어안고 버티는 시위를 벌이다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한 운동과 희생이 오늘날 숲을 지키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서부 티모르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원주민으로 살아가던 마마 알레타는 채석장 대리석 바위 위에 앉아 전통 옷감을 짜는 시위를 이끌었다. 기업들은 현상금을 내걸었고, 살해 협박까지 받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광부들은 채석장을 떠났고 이들이 짠 전통 직물이 언론에 소개되었다. 자연을 잘 아는 여성이 가진 통찰력이 돋보이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의 공식이 바뀌고 있다.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 역대 최장 열대야, 역대 최장기 여름을 매년 갱신 중이다. 2024년에도 지구 곳곳은 극단적인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인도와 태국을 포함한 남아시아와 동남아, 그리스와 튀르키예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 그리고 미국까지 전 세계가 펄펄 끓는 여름을 맞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낮 최고기온 5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이슬람 성지순례인 하지 기간에만 1,3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는 한 해 전 사망자 200여 명의 약 6배가 넘는 규모다. 인도에서도 50도 안팎의 폭염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와 장기간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역대급 폭우가 내리면서 많은 이재민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6월 중순부터 기온이 36도까지 치솟으며 역대 가장 빠른 열대야가 나타났고, 6월 서울 평균기온은 177년 관측 사상 처음으로 30도를 넘었다. 지구 평균기온은 2023년 6월 이후 13개월 연속으로 역대 최고 기록 행진을 이어갔으며, 산업화 전인 1805∼1900년보다 1.64도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구 표면뿐만 아니라 해수면 온도도 연속 최고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먼 미래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내 일상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무관심한 사람이 대다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페트병에 든 생수를 소비하는 대신 수돗물을 받아 보리차를 끓여 마시거나 필터가 든 정수 용기로 걸러 마시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점점 더 자주 만난다. 가게에서 아보카도를 사려다가도 ‘수자원 약탈자’라는 악명을 떠올리며 손을 거두고, 한 계절 입고 버려도 좋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예쁜 티셔츠를 구매하려다 ‘패션의 환경 파괴’를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세상이 됐다. 그러다가도 ‘나 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회의감이 들지만, 그 어떤 역경과 위협에도 꺾이지 않았던 녹색 투사들의 이야기는 언제까지고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할 것이다. 2023년 9월, 한국은 2025년 제54차 세계 환경의 날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세계 환경의 날은 매년 6월 5일로, 유엔환경계획과 개최국이 공동 주관해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을 다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 행사다. 2025년에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발효에 맞춰 플라스틱 오염 종식에 전 지구적인 관심이 쏠릴 예정이다. 환경부는 세계 환경의 날 개최국으로서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 노력을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환경 정책은 마련은 지지부진할뿐더러 운영되던 제도마저 철회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지자체 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하자 참여율과 컵 반환율이 모두 급감했다. “한국은 세계 환경의 날 행사를 개최할 자격이 없으며, 한국이 세계 환경의 날을 그린워싱에 악용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나오는 만큼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는 점차 환경 문제를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은 경제 발전, 기회 균등 등 균형적 발전을 생각해야 하므로 환경운동가 입장에서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적 문제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금 젊은 세대는 미래에 자신이 누릴 ‘내 것’으로서의 환경을 뺏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이 없을 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권자로서 표를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제대로 알고 시민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지속적으로 환경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젊은 여성 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현재로선 미약해 보여도 오늘날의 “숲으로 간 여성들”은 이후 거대한 결과를 만들어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