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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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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드는 교정이 지닌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나요? 모든 게 새로 시작될 것만 같이 따스하고 설레는 분위기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폐쇄된 상태라 외부만을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몇 년이나 사용하지 않은 건물이었죠. 전기가 들어오는지, 물이 나오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을 수도 있어요. 창문 밖에서 기웃기웃해 보았지만, 보이는 건 ‘1학년 1반’ 같은 교실의 표찰 정도였어요. 교육청에 문의해 보아도 원칙상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만이 돌아왔어요. 우리는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한 채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말해버렸어요. “여기가 좋겠어.”
--- p.20~21 문명이 생긴 이후로 본격적인 노가다가 시작되었어요. 일은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아요. 왜 계약하기 전에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역시 첫눈에 반한다는 건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단순노동을 좋아한다는 점이죠. 멍하니 앉아 단순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면 막혀있던 소설의 스토리가 뻥 뚫리기도 하거든요.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도시의 병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 대학교를 나오고 직장을 다니던 내가 지방 오지의 삶에 대해 무얼 알겠어요. 막연히 ‘불편하겠지’ 정도의 감상만이 있었을 뿐이죠. --- p.26~27 구불구불한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다양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어요. 길고양이나 청설모, 고라니는 아주 흔하죠. 간혹 멧돼지, 너구리, 꿩도 봅니다. 어떤 날은 커다란 조류와 눈이 마주쳤어요. 우리 주작이보다 큰 그것을 본 나는 새된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게 뭐야!? 부엉이처럼 생겼어.” “부엉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폐교에서의 삶은 이런 일들의 연속이에요. 교과서에서 봤거나 막연하게 그 존재만 알고 있던 것들이 현실 속에서 튀어나오는 거죠. 그 괴리로 인해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리곤 해요. 부엉이라는 걸 깨달은 다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저렇게 크다고?” 동화 속에서 편지를 물어다 주는 새로 기억되던 존재는 그렇게 내 안에서 새로이 몬스터로 각인되었습니다. --- p.104~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