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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예수 변증 역사 존재 증명: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기-1.***11 철학에의 기여: 근대에서 중세로***15 관념론과 유물론***19 예수 그리스도의 모사복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기***30 역사를 통해 부활을 논증하기: 베드로의 경우***34 소크라테스적 탈출***37 역사 존재 증명: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기-2.***39 믿음의 패러다임***42 역사 존재 증명: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기-3.***47 기도는 어떻게 100% 응답받는가***53 무신론과 불가지론의 정신분열적 부조리성***56 삼위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miracle worker’를 중심으로***58 변화와 불변과 천국***60 무신론과 불가지론의 논리적 무의미함***64 천국과 지옥 증명***66 불연기연과 기연불연***69 부활이 거짓인가, 공동체가 거짓된 것인가***71 2. 논어 아낌註 제1학이 -77 제2위정 -81 제3팔일 -87 제4이인 -93 제5공야장 -99 제6옹야 -105 제7술이 -111 제8태백 -120 제9자한 -124 제10향당 -131 제11선진 -134 제12안연 -140 제13자로 -147 제14헌문 -154 제15위령공 -164 제16계씨 -173 제17양화 -177 제18미자 -183 제19자장 -186 제20요왈 -192 3. 명심보감 아낌註 1. 계선편***197 2. 천명편***199 3. 순명편***201 4. 효행편***203 5. 정기편***204 6. 안분편***210 7. 존심편***212 8. 계성편***216 9. 근학편***219 10. 훈자편***221 11. 성심편 상***223 12. 성심편 하***233 13. 입교편***240 14. 치정편***244 15. 치가편***246 16. 안의편***247 17. 준례편***248 18. 언어편***249 19. 교우편***251 (부록) 20. 부행편***252 21. 증보편***253 22. 팔반가***254 23. 효행편 속편***255 24. 염의편***257 25. 권학편***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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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존재 증명: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기-1.
아이덴티티. 정체성. 누구도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위배되는 삶을 살 순 없다. 아이덴티티에 위배되는 진술을 할 수도 없다.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구절들이 하나님(예수님)과 그분의 성품에 대한 진술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아이덴티티는 그러므로 ‘예수님’이시다. 성경은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십 명의 저자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솔직하게 말을 할 수도 있고 또 거짓말을 지어낼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할 때도 있고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성경 속 수십 명의 저자들은 예수님이 사셨던 때의 예수님 자체를 이야기한다. 모든 성경이.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을 해보자. 만약에 1900년대에 일본에 핵폭탄이 터진다는 사실을 그때로부터 약 천 년 전부터 수십 명이 직접적으로든(예언) 간접적으로든(예표) 이야기를 했다면 그 수십 명을 걸친 약 천 년이 거짓이라고(거짓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수십 명은 1900년대의 일본의 상황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1900년대에 일본에서 핵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1900년대에 일본에서 핵폭탄이 터진 사실이 그 수십 명( 및 그들의 진술들)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사건. 예수님의 등장은 “사건”이다. 예수님의 출현으로 기독교 종교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은 단지 유대교. 역사의 존재. 역사 존재 증명.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등장이 “사건”인 까닭으로 이제 나오는 논술에서 ‘순환논리’가 빠지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이하와 같은 순환은 없었다. 예수님이 등장했고, 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고)저것이 이것을 이것이 저것을 상호 증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유대교 사회 즉 예언의 성취가 나타나지 않은 시기는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장을 통해서 역사(적어도 ‘성경 속’ 천여 년)의 존재는 증명된다(“역사 곧 세상 또는 시공간은 존재한다. 그것은 ‘있다.’”). 왜냐하면 천여 년 전부터 예수님이 등장하신 때까지 최소 천여 년의 기간이 참(real)이라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나는 커서 정치인이 될거야”라고 어렸을 때 한 말은 커서 그가 실제로 정치인이 되었다면 그가 말했던 “나는 커서 정치인이 될 거야”라는 진술은 참이 되며, 동시에 그것은 진술 자체만이 참으로 판명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그 진술을 했던 당시(때) 역시 마찬가지로 긍정하며 ‘내가 그런 말을 했던 때가 있었나’하는 회의를 물리친다. 내가 아내에게 출근하면서 “집에 올 때 사과 한 봉지 사 올게”라고 이야기한 후 나중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내가 오늘 사과를 사 왔는지 안 사 왔는지 알 수가 없을 때 아내가 쓰레기통에서 몇 시간 전에 깎은 사과껍질을 꺼내 보여주었다면 내가 퇴근길에 사과를 샀던 시간은 명백하게 증명된다(그전에는 분명 집에 사과가 없었고 아내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고 손님도 오지 않았다). ‘역사’가, 그것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세계(역사)의 존재는 물론 ‘예언가’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로 동시에 증명된다. 예언가와 세상은 명백하게 실재하며 환영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 위에(안에서) 그와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사과를 샀던 시점 속에는 분명 ‘내’가 있었다 즉 존재했다). 예언 한 두 개가 앞날을 운 좋게 맞춘 것과는 다르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의 수백 개의 예언들은 모두 다함께 기원전 1세기의 예수라는 성취자만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천여 년간의 수십 명의 수백 개의 예언들이 오직 예수님만을 예언한 것이라면 그 천여 년 간의 역사의 존재가 증명된다(적어도). 한 사람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면 그 예언은 신빙성 보다는 우연성이 훨씬 높다고 판단 내릴 수밖에 없고 열 사람의 예언이 똑같이 맞아떨어진다면 그 예언은 대상 사건의 존재를 훨씬 강하게 입증한다. 더 나아가 이미 ‘역사’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가능하게 했던 예수님을 통해 이번에는 상호적으로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존재가 증명된다. 예언의 성취자인 예수님이 등장하셨으므로 구약( 및 예언들)이 참인 것으로 증명되며 예수님을 가리키는 구약의 예언들이 참인 것으로 증명되었으므로 예수님의 존재 역시 참인 것으로 증명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