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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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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밤이여, 안녕
작품해설
옮긴이 주

저자 소개 2

Jean Rhys,본명 엘라 궨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본명은 엘라 궨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영국령이었던 도미니카 수도 로조에서 웨일스 의사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크리올(서인도제도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로 농장을 물려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퍼스 여학교에 다니지만, 낯선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으로서 따돌림을 당한다. 배우가 되고자 입학한 왕립연극학교 역시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느낀 이질감과 절망,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부유한 연상의 연인과 헤어진 뒤 낙태수
본명은 엘라 궨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영국령이었던 도미니카 수도 로조에서 웨일스 의사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크리올(서인도제도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로 농장을 물려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퍼스 여학교에 다니지만, 낯선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으로서 따돌림을 당한다. 배우가 되고자 입학한 왕립연극학교 역시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느낀 이질감과 절망,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부유한 연상의 연인과 헤어진 뒤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 등을 네권의 노트에 기록해 20년 뒤 『어둠속의 항해』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리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빠르고 쉽게 그리고 자신 있게 쓴 유일한 책”, “가장 자전적”이며 “가장 좋아하는” 소설, 나아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D. H. 로런스를 발굴한 비평가이자 소설가 포드 매덕스 포드의 눈에 띄어 1924년 단편 「빈」을 그가 주관하는 [트랜저틀랜틱 리뷰]에 실으면서 데뷔한다. 이후 1920~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창작에 전념해 단편집 『왼쪽 둑』(1927), 장편 『사중주』(1928), 『매켄지 씨를 떠난 후』(1931), 『어둠속의 항해』(1934), 『한밤이여, 안녕』(1939)을 연달아 펴낸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 후 20년 가까이 은둔하면서 사망설이 돌기도 한다. 1957년 BBC에서 라디오극화한 『한밤이여, 안녕』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재조명을 받고, 1966년 『광막한 싸르가소해』를 발표해 W.H.스미스 문학상과 하이네만상을 수상한다. 그밖에 단편집 『호랑이는 멋지기나 하지』(1968)와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1976), 자전적 산문집 『나의 날』(1975) 등의 작품이 있다. 1978년 평생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CBE)을 수훈했고, 이듬해에 집필 중이던 자서전 『좀 웃어봐요』를 채 끝내지 못한 채 여든여덟을 일기로 영국 엑서터에서 숨졌다. 카리브해와 영국 문학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파격적인 형식실험 등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진 리스의 다른 상품

성신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한밤이여, 안녕』,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영미여성소설론』, 『영미문학의 이해』, 『영국소설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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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38g | 128*188*18mm
ISBN13
9788901288291

책 속으로

나는 거기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린다. 내가 불쌍해서. 그리고 그 정수리가 대머리가 되어버린 노부인이 가엾어서. 이 저주받을 세계에 내재하는 모든 슬픔을 생각하며 울고, 또 모든 바보들과 투쟁에서 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운다.
--- p.41

나는 검은 집들이 마치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간다. 돈과 친구가 있을 때 집들은 층계와 정문을 가진 그냥 보통집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반겨주며 미소를 짓는 그런 정다운 집. 모든 것이 안정되고 뿌리를 든든히 내린 사람이라면, 집도 그걸 알아차린다. 집들은 겸손한 태도로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친구 하나 없고 돈 한 푼도 없는 불쌍한 녀석이 들어오려 하면, 그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집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밟아 죽이기라도 할 듯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반기는 문도, 불 켜진 창문도 없이 그저 눈살을 찌푸리는 어둠만 존재할 뿐이다. 얼굴을 험악하게 찌푸리고 곁눈질하며, 빈정거리면서 놀려대는 집들. 하나가 시작하면 이집저집들이 돌아가며 놀려댄다.
--- pp.47~48

그러나 그게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내 인생의 끝. 매주 받는 2파운드 10실링의 돈과 그레이스 인 가에서 조금 빗겨나간 길가에 자리 잡은 작은 방. 도움을 받고 구조를 받아 숨을 수 있는 방을 가진 나. 그 이상 내가 무얼 원한단 말인가? 내가 누운 관 뚜껑의 마지막 못이 꽝 소리를 내며 박혀 버렸다. 이제 나는 사랑받기 원하지 않으며, 아름답기를 원하지도 않고, 행복이나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다. 나를 가만히 놔두는 것. 내가 사는 방의 문을 발로 긁지 마, 문을 열고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마, 그저 나를 가만히 놔둬……. (그럴 거야. 걱정 마, 사샤.)
--- pp.65~66

나는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고, 국적도 없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너무도 슬프다, 너무도. 괜찮아. 나는 여기 그냥 사는 거야. 마치 지푸라기가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서 빙빙 돌며 떠다니다 점차 소용돌이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죽음의 중앙부, 그곳에서 모든 것은 정지 상태가 되지. 모든 것은 평온을 찾게 돼. 일주일에 2파운드 10실링, 그레이스 인 가의 옆 골목에 자리 잡은 내 방 하나…….
--- p.68

그래요, 나는 슬퍼요. 서커스의 사자처럼, 날개가 잘린 독수리처럼, 줄이라고는 달랑 한 개밖에 없는데 그나마 그 한 줄이 끊긴 바이올린처럼,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이 서러운 나이 먹은 여인처럼, 나는 슬퍼요. 슬프고, 슬퍼요. 아마 내가 내 인생을 가리켜 ‘개똥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다면, 내 슬픔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침묵 속에서 걷고 있다. 그때 내가 입을 연다. “나는 슬프지 않아요. 왜 내가 슬프다고 생각하는 거죠?” 마치 하나의 의식이라도 되는 양 왜 사람들은 나를 보면 슬프냐고 묻지? 똑같은 질문에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나?
--- pp.70~71

이 사람들은 내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나를 위로하고자 내게 덤벼든다. 내가 불안하고 슬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더 행복한 듯 과장하며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팔을 들어 그들의 영향력에서 도망치려 했고, 그들은 땅으로 스르르 주저앉고 만다. 이기주의자들, 그들은 자기네들의 이익만 생각하며 산다.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외향적 인간들이다. 뭘 좀 재미있는 게 없나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남을 간섭하는 이런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 pp.77~78

그러니 자, 생각해 봐요. 인생을 야릇하게 만드는 건 이런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도, 사람들이 그 사건들을 겪어냈기 때문도 아니라니까요. 이런 괴상한 사건이 결국 잊힌다는 사실이 인생을 요지경으로 만들지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천추와 같았던 어떤 시간이 결국 퇴색되고, 잊히며, 뇌리에서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인생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거라니까요. 우리가 결국 잊게 되고 그러니까 매일이 새로운 날이 되겠죠. 그래서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운은 바뀌었고 인생의 신호등은 온통 빨간불이다.

--- p.213

출판사 리뷰

세상에서 도망쳐
파리의 어둠 속으로 숨은
한 여자의 이야기

사샤는 지속된 상실과 좌절로 삶의 의지를 잃은 마흔 살 여인이다. 절망과 가난, 냉대와 불행에 지친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술에 취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고용주 프랭크에게 하는 상상 속 발화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두운 배경, 우는 사람, 희생자라고 말한다. “밝은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두드러지기 위해선 배경이 어두워야 하지 않겠어요? 우는 사람이 있어야 껄껄대는 사람이 있듯이. 희생자는 반드시 필요불가결한 것이겠지요.”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것은 비대칭적인 세상이 아니라 삶에 느끼는 고립감과 모욕감이다. “블랭크 씨가 제 다리를 잘라버릴 수 있는 신비한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절름발이가 된 저를 보고 웃을 권리도 있을까요?” 그녀가 인지하는 자신의 삶은 ‘정말 어두운 강과 같은 인생’이며, 그 인생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그걸 보고 박장대소’하는 공포심과 고립감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잘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은 항상 내 능력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내가 가는 길은 결코 다른 길로 연결되지 못한다. 항상 막다른 골목이다. 문들은 늘 닫혀 있다.
- 47쪽

그녀에게 거리는 닫힌 문이다. 자신을 반기지 않는 곳, 나쁜 기억이 깃든 곳이며, 그녀를 차갑게 내치고 비웃는 곳이다. 그녀는 ‘검은 집들이 마치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밤거리를 걸으며, 집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밟아 죽이기라도 할 듯’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인식하지만, 굴절된 렌즈에 비친 추악함이야말로 세계의 진실이라고 여긴다.

사샤는 자신에게 친절한 카페, 술집을 찾아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한다. 사샤에게 저렴한 호텔 방은 두려운 세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공간이며, 자신에게 맞춰진 관이자 죽음의 중앙부이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버려두기를,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꿈꾼다. 위로하겠다고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성가셔하고,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타인의 얕은 관심도 경계한다.

나는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고, 국적도 없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너무도 슬프다, 너무도. 괜찮아. 나는 여기 그냥 사는 거야. 마치 지푸라기가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서 빙빙 돌며 떠다니다 점차 소용돌이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죽음의 중앙부, 그곳에서 모든 것은 정지 상태가 되지. 모든 것은 평온을 찾게 돼. 일주일에 2파운드 10실링, 그레이스 인 가의 옆 골목에 자리 잡은 내 방 하나…….
- 68쪽

그녀는 버려진 고양이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학대받은 고양이의 눈 속에서 그녀는 열등감과, 비참한 과거,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체념을 읽는다. 수고양이들에게 만만하게 여겨지며 고통을 당하던 고양이는 어느 날 길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는다. 사샤는 ‘거울에 비친 내 눈이 꼭 고양이의 눈과 같다’라고 생각하며, 고양이의 운명에 감응한다.

죽음을 향해 가는 여자와
삶의 열망에 이끌리는 남자의
열흘 간의 만남

무기력하게 삶을 소진하는 사샤에게 어느 날 젊고 잘생긴 르네가 접근한다. 사샤를 부유한 여자로 착각한 르네는 그녀를 유혹하고, 사샤는 그간 받아온 모욕에 복수하겠다는 짓궂은 마음으로 르네를 만난다. 르네를 제비로 단정 지은 사샤는 그의 모든 말을 돈을 노린 언행으로 해석하지만, 르네와의 만남은 그녀의 무감각한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르네를 만나는 것 때문에 내가 했던 모든 불안과 흥분의 움직임들은 결국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나의 마음 저 밑에서 나는 무감각하다.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물은 고여서 정체되어 있고, 조용하며, 무관심하다. 다시 말하면 죽음에 근접한, 그리고 증오와 매우 흡사한 씁쓸한 평화가 있을 뿐이다.
- 225~226쪽

그녀는 르네로 인한 불안과 흥분은 피상적이라고 말하며, 죽음에 근접한 무감각이 본 감정이라 인식한다. 그러나 르네를 경박한 제비라고 멸시하면서도 그의 유혹이 자신의 죽은 감각을 일깨울까 두려워한다. 그녀에게 관계는 상처로만 남았으며, 상실과 배신에 감각의 죽음으로 대응해 왔다. 그녀는 르네의 유혹이 삶을 흔들까 봐, ‘젊은 시절’, ‘남자와 육체를 공유했던 사랑’, ‘고통과 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무모함’을 연상케 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고통’을 다시 겪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렇게 르네를 거부한 사샤는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고, 머릿속에 울리는 분열된 목소리에서 벗어나 진짜 자아를 마주한다.

그가 가버리자 나는 옆으로 몸을 돌려 내 몸이 가능한 한 작아지도록 무릎을 거의 턱에 닿게 몸을 웅크린다. 나는 마치 몸이 아플 때처럼, 가슴이 아프고 배가 아플 때처럼,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운다. 울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층계 위에서 웃으며 키스를 하고 행복해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 이건 나다, 나 자신이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은? 그게 누구인지 내가 어찌 알랴? 그녀는 내가 아닌걸.
- 274~275쪽

날카로운 통찰로 드러낸
세계의 추악한 이면

사샤는 진 리스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궁극적 모습이며 실망과 모욕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리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단순히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상상력이 결핍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되는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다. 사샤는 타자로 규정되는 모든 것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곁가지가 다듬어지고 모습이 아름답게 정리되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것이 사실이 아닐 수가 있다. …(생략)… 사물을 왜곡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울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이다.
- 118~119쪽

『한밤이여, 안녕』의 분위기는 음울하지만, 소설에 담긴 통찰은 놀랍도록 날카롭고, 문학적이며, 아름답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점, 분열된 자아의 중첩된 목소리,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법은 소설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부서진 거울 조각들에 비친 하나의 상과 같다. 그러나 이 노이즈야말로 소설의 백미이며, 사샤라는 인물과 그녀가 감각하는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는 장치다.

사샤가 가장 경멸해 온 것을 선택하는 『한밤이여, 안녕』의 결말은 많은 독자를 충격에 빠뜨렸으며, 다양한 방향의 해석을 낳았다. 사샤는 소망대로 사라진 것일까. 희생된 것일까. 아니면 진짜 자아를 확인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될까.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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