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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그림은 사색의 창이다
1관 피어오르는 염원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신-라우헤나우 화파 유유자적, 낙원 산책-라인 상류 지역 마이스터 숭고한 슬픔의 힘-마이스터 프랑케 진리를 새기는 대가의 상상력-알브레히트 뒤러 독일의 라파엘로-한스 홀바인 영화가 깃든 괴테 신화-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빛나는 미덕의 조각-요한 고트프리트 샤도 2관 영혼을 깨우는 정경 자연과의 신비로운 합일-필리프 오토 룽에 왜 당신은 평화를 찾지 못하시나요-성 누가 형제단 뤼겐섬의 백악 절벽-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영혼을 깨우는 정경-독일과 참나무 환희와 애도의 초록빛-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3관 일상의 틈새 거실의 풍경-에두아르트 게르트너, 아돌프 멘첼 사랑의 서신-카를 슈피츠베크 사회를 비추는 거울-카를 빌헬름 휘브너, 케테 콜비츠 손의 표정-빌헬름 라이블 차가운 눈밭을 가로지르는-프리츠 폰 우데 4관 혁명을 그리다 낡은 상아탑을 허무는 곡선의 향연-유겐트슈틸 목가적 예술 유토피아 보르프스베데-하인리히 포겔러 세계의 몰락을 직감한 청기사-프란츠 마르크 폭발하는 대도시-루트비히 마이트너 한 줌의 빛-한스 발루셰크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요제프 보이스 인용문 출처 참고문헌 도판목록 |
柳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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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영혼 속에는 수많은 통로와 샛길이 있다. 그 속에는 동굴과 은신처 그리고 지하 감옥이 있다. 그 무질서함은 신비로 가득찬 매력으로 넘친다. 독일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생성 중에 있으며 발전하고 있다. 만약 독일의 영혼을 눈앞에서 보고 싶다면 독일의 취미와 예술 그리고 풍습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 p.17 프랑케의 회화는 부드럽고 우아하며, 서정적이고 세밀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에 유럽에서 나타난 국제 고딕 양식, 즉 밝고 선명한 색채감과 부드러운 붓 터치가 감지된다. 이른바 후기 고딕의 ‘부드러운 양식’의 특징인 높은 채도의 밝은 색감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면서, 슬프지만 우아하고 창백하지만 부드러운 얼굴 표정을 지닌 인물상이 세밀하게 표현된다. --- p.36 때론 대가의 완성도 높은 걸작보다, 아직 화법은 미숙하지만 호방한 열정으로 거침없이 그린 청년 시절의 투박한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초기 목판화를 보면, 노련한 원숙미 못지않게 거침없는 패기와 실험적인 상상력도 훌륭한 예술적 소양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 p.40 독일 베를린 중심가 파리저 광장의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사두전차상〉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월계관을 쓴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콰드리가, 즉 네 마리의 말이 끄는 고대 로마 시대의 전차를 타고 있다. 날개를 단 빅토리아는 참나무 화환 위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긴 지팡이를 들고 있다. 왕관을 쓰고 날개를 펼친 독수리는 프로이센을 상징하는 휘장이고, 참나무 화환은 ‘숲의 나라’ 독일을 상징한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든 조각가가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다. --- p.72 작지만 살 집이 있고 창밖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 평안한 일상이 있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다. 살가운 고양이가 있다. 의지할 수 있는 벗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버베크의 〈화가 포르〉를 보여주고 싶다. --- p.100 한국인에게 늘 푸른 소나무가 그렇듯 독일인에게 참나무의 의미는 각별하다. 참나무는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견디고 생존한 독일인 특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독일 게르만족의 조상인 아리안족은 참나무를 신이 선택한 성스러운 나무로 숭배해 왔고, 이런 전통 때문에 참나무는 독일인의 영혼에 부활과 갱생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실례로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풍경화 속 참나무에는 독일인의 영혼이 스며 있다. 그의 대표작 〈눈 속의 고인돌〉을 보자. 눈 덮인 낮은 언덕 위에 참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좌측과 우측 참나무의 우듬지는 훼손되었고 오래된 가지들은 대부분 잘려 있다. 가운데 오른쪽으로 휘어진 참나무에서 세월의 풍파를 견뎌 온 독일인의 뚝심이 느껴진다. --- p.110 독일 표현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는 베를린에서 공연된 하우프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보고 독일의 비참한 노동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 체험에서 연작 판화 〈직조공 봉기〉의 영감을 얻었다. 휘브너가 직조공 봉기 전 노사 갈등이 첨예화되는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면, 콜비츠는 프롤레타리아트 노동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의 기승전결을 선 굵은 판화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콜비츠가 20대 후반에 만든 이 작품은 총 여섯 점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 p.152 부정한 권력이 예술을 협박하고 검박할 수는 있으나 일시적일 뿐이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예술이다. 예술의 생명력은 강하고 권력의 욕망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어용 예술은 권력의 시녀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권력에 영합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는 예술은 부당한 권력에 맞선다. 예술은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자적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이 예술이 누릴 수 있는 절대 자유다. --- p.156 유겐트슈틸 운동의 목표는 분명했다. 첫째, 권위적인 상아탑에 갇혀 아카데미즘의 규칙만을 답습하는 기성의 ‘낡은’ 예술을 혁신하여 ‘젊게’ 만들자. 둘째, 순수예술(고급예술)과 응용예술(저급예술)이라는 전통적인 위계에서 벗어나 예술이 일상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게 하자. 이러한 기치 아래 유겐트슈틸 운동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정부 주도의 예술 단체에서 탈퇴하여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모색했다. --- p.180~182 무지갯빛 원시림에 서 있는 마르크의 푸른 말이 감상자의 마음을 붙잡는 이유도 푸른색에 대한 괴테의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 한편 마르크는 붉은색을 푸른색과 대척점이 있는 물질적인 색으로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르크의 푸른 말이 앞발로 붉은 대지를 밟고 있는 모습은 물질 문명에 대한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색이 형상을 압도하고 영혼이 물질을 압도하는 세계가 곧 표현주의의 이상향이라면, 마르크의 〈푸른 말〉은 독일 청기사파의 이상을 수호하는 아이콘에 다름없다. 요컨대 푸른 말은 우리를 ‘정신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예술의 화신이다. --- p.200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은 1871년 독일제국의 수도가 된 후 유럽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급성장한 베를린의 역동적인 모습들에 주목했다. 이들은 인파로 떠들썩한 광란의 거리, 철로 만든 교각과 선박, 대형 가스탱크, 바퀴로 철로를 긁으며 달리는 열차, 물결치는 전화선, 강렬한 전등불이 이글거리는 공장, 찬란한 광고탑 등에 열광했다. 동시에 이들은 문명이 집약된 대도시는 자체 모순에 의해 파멸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편리함과 자유를 선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 한편 기술 문명의 질주가 인류의 종말로 귀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 p.208 현무암과 참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나무를 심을 때마다 하나둘씩 광장에서 사라지는 잿빛 현무암은 나치, 히틀러,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등 독일의 불편한 과거를 상징한다. 반대로 참나무는 이런 과거의 상처를 청산한 독일의 재생과 부활,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카셀은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다. 보이스는 ‘카셀 도심 참나무 숲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독일의 과거를 치유하는 예술적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심은 참나무와 현무암은 특권층의 소장품으로 귀속될 수도, 상품으로 매매될 수도 없는 공공의 문화자산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보이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고 민주적인 예술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 p.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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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소통으로 예술의 중심국이 되다
독일은 토론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고유의 예술 작업을 이어왔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소통하는 독일의 교육 배경은 훗날 그들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통독 이후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통일 이후 수도로 재탄생한 베를린은 세계 각국 미술가들이 모이는 중심지가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저렴한 주거비용과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를 내세워 세계의 미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이들의 창작 기반을 다졌다. 그 덕분에 베를린은 각국의 기획자, 컬렉터, 대가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됐고 이후 독일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독일은 과거 나치 시대 예술 억압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성찰함과 동시에 표현주의, 바우하우스, 신표현주의 같은 독일 특유의 미술사조들을 사회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복기하며 재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색의 미술관’이라 할 만하다. 회화부터 예술 프로젝트까지, 숨겨진 독일 미술의 보물을 공개하다 이 책은 회화, 조각, 예술 프로젝트 등 독일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신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다룬다. 또한 독일 미술과 더불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국가의 미술작품까지 엿볼 수 있다. 총 4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관 ‘피어오르는 염원’은 중세 로마네스크에서부터 신고전주의에 이르는 독일 미술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원대한 야망, 종교적 낙원에 대한 동경,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 독일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향한 의지, 독일적 덕목을 세우려는 열망 등 현대 독일의 기초를 세운 초기 걸작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관 ‘영혼을 깨우는 정경’은 독일 예술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낭만주의 회화의 특별관이다.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우주와의 교감을 표현한 필리프 오토 룽에, 은둔의 고독과 겸손한 삶의 평화를 찬미한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베크, 수직적 고양감과 수평적 무한감으로 가득한 풍경화를 그린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인간의 뒷모습에서 삶의 진실을 포착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등 독일 낭만주의의 주요작을 감상할 수 있다. 3관 ‘일상의 틈새’는 빈 체제에서 유행했던 비더마이어부터 18세기 중반 사실주의를 거쳐 인상주의에 이르는 독일 미술을 소개했다. 소박한 일상과 엄연한 현실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어떻게 독일 미술이 진실로 나가는 힘을 확보하게 되었는지 체험할 수 있다. 4관 ‘혁명을 그리다’는 19세기 말 독일을 풍미했던 유겐트슈틸과 분리파, 20세기 초의 표현주의, 그리고 전후 현대 미술을 소개했다. 전통과 결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뿐만 아니라,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 화가들의 내상(內傷)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문학과 역사로 직조한 천 년의 독일 미술사 “문학은 그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문학적 상상력은 침묵하는 그림에 입을 달아 줍니다. 상상력의 보고인 문학은 그림의 소재나 주제를 제공해 왔습니다. 문학의 원형인 그리스 신화와 성서를 포함해 시, 소설, 희곡 등은 고대 및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림이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자 역사의 오르가논(organon)입니다. 프리드리히의 참나무는 나폴레옹 치하 게르만족의 영혼을, 보이스의 참나무는 나치의 과오를 청산한 독일의 미래로 해석됩니다. 같은 참나무도 시대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죠. 그림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역사 공부가 필요합니다.”(본문 중에서) 이 책은 독일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주제와 해석의 실마리가 되어주는 문학작품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했다. 저자는 독자와 동행하며 전시된 작품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도슨트를 자처한다. 명작은 재승인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훌륭한 작품을 엄선했다. 저자와 함께 사색의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사유가 가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