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
제1부 장님 모티프로 살펴본 시각의 문학사 제1장 그리스 신화와 성서에 나타난 장님상 1. 그리스 신화: 신의 초월적 시선과 장님 예언자 2. 성서: 신의 존재증명으로서의 성스러운 희생적 실명 제2장 고대와 중세의 시선 담론?초월적 시선과 지성의 시선 사이에서 1. 철학: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적 조명설 2. 문학: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에코의 『장미의 이름』 제3장 근대의 시선 담론?합리적인 이성의 눈과 원근법의 단안적 시선 1. 철학: 데카르트의 장님 비유와 추상적인 이성의 시선 2. 문학: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제4장 현대의 시선 담론?근대적 시선 비판으로서의 장님상과 새로운 총체성의 동경 1. 철학: 디드로의 철학과 키틀러의 매체이론을 중심으로 2. 문학: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프리쉬의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 제5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선 담론?데리다의 『눈먼 자의 회상』에 나타난 선험적 실명 제2부 철학 담론에 나타난 근대적 시선 비판과 그 문학적 형상화 제6장 시선 투쟁과 예술을 통한 구원: 사르트르 1. 『존재와 무』 2. 사르트르의 시선 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3. 『구토』 제7장 욕망의 시선과 시선에 대한 공격 욕망: 바타유 1. 『에로티즘』 2. 『눈 이야기』 3. 바타유의 욕망의 시선을 넘어서 제8장 감시의 시선과 시선의 폭력 1. 푸코의 『감시와 처벌』 2. 오웰의 『1984』 3.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제9장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시선의 혼란 1. 보드리야르의 『상징적 교환과 죽음』 2.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3. 김영하의 「흡혈귀」 제3부 문학작품에 형상화된 시선 담론 제10장 근대의 시선 1. 의사의 시선 1) 졸라의 「실험소설」?2)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3) 카프카의 「시골 의사」?4) 벤의 「뇌」 2. 사냥꾼의 시선 1) 원시인의 사냥과 신성의 관계: 캠벨과 바타유?2)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3) 옐리네크의 『피아니스트』?4) 코넬의 「가장 위험한 게임」 제11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선 1. 철학적 배경: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아이의 시선?2) 시각중심주의에서 공감각주의로 2. 아이의 시선 1) 그라스의 『양철북』?2) 은희경의 『새의 선물』 3. 시각중심주의 비판 1) 시각의 자기성찰: 한트케의 『생트빅투아르 산의 교훈』?2) 후각 대 시각: 쥐스킨트의 『향수』?3) ‘탈경계’와 ‘창조적 반복’으로 본 감각 담론: 마이네케의 『음악』 수록문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
|
“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암흑같이 깜깜한 총체적 어둠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을 보면서 ‘어둠’을 같이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떤 길을 가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메두사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메두사의 시선이 보지 못하는 어둠을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진정한 제목은 ‘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다.” ―정항균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찌른다. 비흐자드도 ‘스스로’ 눈을 찌른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형제’들이다. 물론 그들은 테이레시아스의 형제일 뿐, 테이레시아스는 아니다. 장님 테이레시아스는 헤라의 미움을 사서 눈먼 자가 되었지만, 제우스로부터 예언하는 능력을 얻는다. 그는 시력을 잃은 대신 내면의 눈으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얻은 것이다. 오이디푸스와 비흐자드도, 자신의 눈을 찔러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테이레시아스와 달리 신에 의해 눈먼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눈이 먼다.(7쪽) 이러한 시인과 마찬가지로 예언가 역시 내면의 눈으로 신의 뜻을 해석해낸다. 시인과 예언가 사이의 연관성은 호메로스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후에 스스로 신탁을 내리는 능력을 획득한다. 또한 그의 딸 다프네는 예언능력을 물려받아 델피의 여사제가 된다. 옛날에는 예언자가 음유시인이기도 했는데, 이들이 모두 장님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호메로스는 다프네가 노래한 시를 들은 후 그것을 나중에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이는데, 이 전설은 시인과 예언자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30쪽) 성서에서 인간을 처벌할 때 눈을 멀게 하지 귀가 안 들리게 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에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로 향한 눈을 내면으로 돌릴 때 진정으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귀는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은 장님이 될지언정 귀머거리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듣는 것은 육신의 귀가 아닌 내면의 귀로 듣는 것을 의미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와 장님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청각문화가 우세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49쪽) 이 작품에서 원근법과 함께 근대의 시각중심주의가 비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또한 눈을 뽑는 처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리어 왕은 고네릴에게 박대를 받은 후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은 눈을 한탄하며 또다시 같은 실수로 눈물을 흘리는 날에는 자신의 눈을 뽑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리건에게 한번 더 모멸을 당하기 이전으로, 여전히 리어 왕이 계량적 사고와 근대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한 말이다. 그 때문에 그가 눈을 뽑는 것을 최고의 형벌로 생각한 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가 오감 중 시각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며 시각중심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음을 입증한다. 또한 나중에 리건의 남편인 콘월 공작이 글로스터 백작을 반역죄로 몰아붙이며 눈을 뽑은 것 역시, 그가 시각을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89쪽) 키틀러는 “우리가 사용하는 필기구가 우리의 생각에 관여한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매체기술적 아프리오리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키틀러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니체 독자인 그 스스로 니체의 까다로운 문장에 걸려 비틀거린다. 왜냐하면 앞에서 인용한 니체의 문장에서 매체로서의 필기구는 우리의 사고 형성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키틀러는 이 점을 간과하며 매체기술을 일종의 존재론으로 환원해버린다. 이로써 니체의 사상은 1900년대의 기록시스템을 보여주는 타자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된다.(141쪽) 데리다는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눈물에 관한 위대한 책으로 읽기도 한다……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뿐만 아니라 니체의 반고백록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책을 니체라는 장님의 자화상으로 기술하고 있다. 니체가 데리다 자신의 해체주의의 길을 열어준 철학자로 간주되는 만큼, 『눈먼 자의 회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체가 언급되는 것은, 실명이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 중에서 |
|
문학연구자가 펴낸 ‘시각’ 담론 중심의 문학사와 작품 보기의 새로운 가능성
이 책은 그동안 회화나 영화 등 시각 분야에서 주로 다뤄졌던 ‘시각성’과 시각 체제 담론을 문학사 안에서 통찰함으로써 매체학적 관점에서 문학사 및 작품 보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서다. 저자는 그간 독문학자이자 문학연구가로서 주제 중심의 문학사 다시보기에 오랜 공을 들임으로써 실제적인 문학작품 분석과 철학 담론의 변화 양상을 상호교차적으로 살피는 저서를 속속들이 출간해왔다. ‘기억’이라는 테마로 문학작품과 문화담론을 살핀 『므네모시네의 부활』(2005), ‘반복’ 모티프로 현대문학과 철학을 들여다본 『시시포스와 그의 형제들』(2009) 등이 좋은 예다. 또한 ‘문자는 매체’라는 관점에서 문자의 운명과 미래를 살핀 『“typEmotion”―문자학의 정립을 위하여』(2012)를 펴내기도 했다. 이러한 문학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시각이 득세한 최첨단 기술영상시대인 오늘날 이 ‘시각’을 주제로 가장 오래된 기록매체인 문자와 그 문자로 유희하는 가장 허구적인 문학세계를 살피는 새로운 관점의 문학연구서 『메두사의 저주―시각의 문학사』를 펴냈다. 다음과 같이 저자는 이 연구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사실 시각의 문제는 언뜻 보기에 문학보다는 회화와 관련이 있는 문제라서 문학 연구에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면 이러한 상황이 이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한번 써보아야겠다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시각의 문제는 사실 국내에서만 해도 생소한 연구 주제는 아니다. 이 주제를 매체학적, 사회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다룬 선행 연구들이 있었고, 본 저서도 이러한 기존의 연구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매체가 그림이 아닌 문자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문학작품에 나타난 시각 담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연구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정항균 다양한 철학 담론과 문학작품의 구체적 실례를 통해 체계적으로 살핀 시각의 문학사 이 책의 제목 ‘메두사의 저주’는 오늘날 시각문화 중심의 현대를 진단하는 저자의 비판적 전언이다. 실로 시각 문제에 있어 눈먼 자와 눈뜬 자의 문제는 철학적, 역사적, 문학적 담론의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진리에 대한 인식과 발견의 도정으로서의 철학과 문학에 있어, 신화적 존재 메두사는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각성’과 관련하여 작동하는 근대의 위협적인 시선을 대변하는 메타포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시각의 문학사’ 연구의 단초를 ‘장님상’에서 얻는다. 그리하여 먼저 제1부 「장님 모티프로 살펴본 시각의 문학사」에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인류 문헌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적 모티프 중 하나인 실명의 문제, 즉 장님 모티프에서 이 새로운 문학사 기술의 가능성을 현실화한다. 즉 그리스 신화와 성서에서 그 단초를 끌고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디드로, 키틀러 등의 시대별 관련 철학자들의 논의와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포클레스, 움베르토 에코, 셰익스피어, 오르한 파묵, 주제 사라마구, 막스 프리쉬, 은희경 등의 다양한 세계 문학작품을 교차적으로 살핀 후, 자크 데리다의 『눈먼 자의 회상』이라는 책을 통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선 담론의 한 양상을 짚어낸다. 이어 제2부 「철학 담론에 나타난 근대적 시선 비판과 그 문학적 형상화」에서는, 근대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불붙었던 시각매체 담론과 그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문학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즉 사르트르, 바타유, 푸코, 보드리야르 등의 철학자들과 조지 오웰, 무라카미 하루키, 보르헤스, 김영하 등의 작가들이 이 논의에 핵심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 「문학작품에 형상화된 시선 담론」은 앞서 살핀 장님 모티프와 시각성에 관한 근현대 철학 담론의 주요 양상 분석을 토대로, 근대와 현대의 실제적인 문학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정 모티프를 중심으로 시선의 의미 변천과정을 다룬다. 저자는 근대를 특징짓는 시선을 ‘의사’와 ‘사냥꾼’의 시선으로 나누고 이를 ‘어른’의 시선으로 간주해, 졸라, 플로베르, 카프카, 옐리네크, 코넬 등의 작품 안에서 이 시선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더 나아가 이에 대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선을 ‘아이’의 시선으로 간주하고, 시각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이 시선을 담지한 그라스, 은희경, 한트케, 쥐스킨트, 마이네케 등의 작품을 니체의 철학과 더불어 조명한다. 다시 말해 눈먼 자의 논의에서 출발한 저자는 메두사의 저주마냥 시각문화가 득세한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눈뜬장님들이 어떻게 인간존재의 선험적 실명을 인식하고 문자세계의 열린 가능성을 보는 눈뜬 자가 될 수 있을지를 되묻는다. 오늘날 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를 위한 문학적 제언과 다원적 시점의 중요성 저자는 문자세계(문학)를 매체학적 입장에서 조망했던 저서 『“typEmotion”―문자학의 정립을 위하여』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 기술영상시대에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운명을 짊어질 새로운 아이콘을 내세운다. 바로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다.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짓는다는 키틀러의 입장과 ‘타자기’를 치면서 그 ‘너머’를 생각하는 니체의 매체에 대한 성찰적 입장을 팽팽히 대립시키면서, 저자는 후자의 니체를 현대판 테이레시아스로 명명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책의 제목은 ‘메두사의 저주’다. 그러나 메두사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메두사의 시선이 보지 못하는 어둠을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진정한 제목은 ‘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다.”(「머리말」, 9쪽) 이 말은 기계시대에 (시각)문자로 구현된 세계와 그 세계 이전 또는 너머의 사유를 촉발시키기 위한 저자의 당부이자, 구텐베르크 은하계 내에서 가장 유희적으로 문자를 통해 사유하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문학에 대한 믿음의 전언이다. 더 나아가 저자가 시각 중심의 문학사 서술에 있어 시대별 시각 담론을 다루되 연대기적 중심이 아니라 그 시대 담론에 걸맞은 배경을 다룬 작품 중심으로 자유롭게 접근했음을 미리 밝혔듯, 여기 저자가 인용한 텍스트들을 나라와 시대를 넘어 시점주의 문학관에 따라 열린 시점으로, 다원주의적 관점으로 얼마든지 다르게 독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