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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v
I. 제국주의 침략기 문명화 사명론과 일본 1 1. ‘문명화 사명’과 국제법 / 1 2. 한·중·일 3국의 서구 문명 수용 / 14 II. 통감부기 일제의 ‘문명화 사명’론과 문명화 사업(=‘시정개선’) 27 1. 조선 식민지화 욕구와 ‘문명화 사명’론 / 27 1) 식민지화 욕구와 ‘문명화 사명’론 / 27 2) 시정개선과 문명화론 / 43 2. 문명화 사업(=시정개선)의 성격 / 49 3. 문명화 사업의 선전 / 61 1) 언론 매체를 통한 문명화론 유포 / 61 2) 유학생, 시찰단, 관광단 파견 / 65 3) 연설회, 박람회 개최 / 71 III. 1910년대 일제의 ‘문명화’ 75 1. 1910년대 식민통치와 문명화론 / 75 2. 1910년대 일제 ‘문명적’ 통치의 실체 / 82 3. ‘문명화’론의 용도와 그 선전 / 96 1) 문명화론의 기능 / 96 2) 문명화론의 선전―시정5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 105 IV. 일제의 문명화 사업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과 대응 113 1. 개항~1910년 / 113 2. 1910년대 / 149 V. 결론 171 참고문헌 / 177 Abstract / 189 찾아보기 / 193 발간사 /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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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침략하는 자와 침략당하는 자 사이에 사회적 발달 수준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침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의 정비, 도로나 철도의 건설 등이 모두 문명화로 포장될 수 있었다. 침략을 당하는 쪽이 침략과 그에 이은 지배를 물리칠 수 있는 가능성은 우선 ‘문명화론으로 분식한 침략’이라는 본질을 파악하고 적절한 수단을 택해 저항할 때 비로소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침략인지 문명의 시혜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총독부의 통치는 ‘조선인을 지도계발’하는 것이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모자라므로 될 수 있으면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해 와야 하겠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내지인은 겸손한 태도로 교도의 책임을 자임해야 하며, 조선인은 순량한 태도로 학습의 성실함을 다” 해야 할 것이 촉구되고, “내지인은 조선인을 스승이 학생을 대하듯이, 형이 동생을 대하듯이 해야 할 것이며, 조선인은 일본인 대하기를 학생이 스승을 대하듯, 동생이 형을 대하듯이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되었다. 이러한 선전에 세뇌된 어떤 조선인 면서기는 일본인들에 향해 “내지인은 자만하지 말고 성심과 예양(禮讓)으로 미개한 조선인을 지도하는 것이 선각자 된 책임이며 의무이다. 또한 내지인과 접견의 기회가 적으면 안 되니 가급적 내지인의 이주를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하기까지 하였다. 급격한 변화, 민족적 차별, 폭력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실로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러한 불만이 공통분모가 되어 거족적인 저항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3·1운동의 가장 큰 원인은 식민화 및 강압적 문명화가 가져온 문화적 충격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