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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은 다른 사람의 노랫소리에 몸을 흔들며 추억에 파묻혔다. 다른 사람들이 벌써 몇 페이지를 건너뛰어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걸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했다. 그가 손을 놓더라도 식탁이 넘어가지 않도록 접시들을 치웠다. 붉은 잔에 포도주를 채우고 선지자 엘리아(Elia,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 "주님의 최후 심판날이 오기 전에 엘리아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는 성경 말라기 3장 23절의 예언에 따라 유태교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선지자 엘리아가 다시 한 번 이땅에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역주)를 맞기 위해 문을 열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검붉은 잣은 이미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활처럼 굽은 와인잔 속에 여섯 개의 불꽃이 빛났다.
스코브로넥 부인이 고개를 들어 멘델을 쳐다보았다. 멘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질지 끌며 걸어가 문을 열었다. 곧 선지자를 맞이하는 스코브로넥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멘델은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식탁에서 문까지 두 번씩 왔다갔다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서, 식탁 상판을 주먹으로 맏쳤다. 노래는 계속되었다. ---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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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모티브를 풀어가는 휴머니즘!
요셉 로트는 현대 오스트리아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힘에도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그는 유태인으로 태어나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가 맞닿은 갈리치아 지방에서 폴란드인들 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성장했으며 성인이 디어서도 유태인으로서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방랑했으며 가톨릭과 유태교 사이를 방황했다. 불행한 유럽 동부지역의 유태인으로 태어나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도피생활과 다름없는 망명생활을 하며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님으로써 당시에는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어렵게 출간된 그의 작품은 나치 정권이 모두 불태웠다. 하지만 그의 애절한 삶이 밴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은 시대와 인종을 넘어 감격을 가져다주는 매력을 지녔기에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도데러(Heimito von Doderer 1896~1966),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1880~1942)과 함께 현대 오스트리아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소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원제목은 『욥』이다. 이 작품은 동유럽 유태인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표현해 내는 작품으로 성경의 테마를 현대에 어울리게 취하고 있는데, 신화와 아이러니의 극단적인 구도 속에서 부부의 애정과 가족생활의 이야기로서 두드러진 의미를 지닌 이상적인 소설의 전형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경험하는 기적과 같은 감동은 구약 성경의 욥이 경험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며 소설의 중심 모티브가 되지만 작가가 신과 인간의 문제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신앙을 뛰어넘어 휴머니즘으로 작품을 풀어가고 있다. 특히 오셉 로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중심의 후기 문학으로 접어들었다. 작가는 나치의 등장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앙가주망을 잃고 데카당스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 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가 기다린 기적으 합스부르크의 제국을 모범으로 하는 다민족 군주국 재건이었다.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등장인물을 통해 막연하지만 유태교로 되돌아가려는 심사를 밝히며 끊임없이 자신을 옭아맸던 유태인으로서의 본연의 위치로 돌아올 가능성을 마련한 것이다. 삶의 가장 큰 질곡이 도리어 삶의 가장 큰 희망이되는 아이러니한 구도는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리고 간결하고 담담하면서도 여운 있는 필치로 퇴폐적이고 절망적인 시대에 묻혀 지내는, 평범하고 정직한 사람들의 번민과 갈등을 주로 다룬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껴안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