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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칼 혹은 지우개, 그리고 김훈 ― 소설가 김훈 춤꾼, 길 위에서 먼 곳을 응시하다 ― 법무부 장관 강금실 경계 이쪽과 저쪽, 그리고 파열음 ― 영화감독 이창동 물처럼 흐르고 춤처럼 뒤집고 ― 소설가 서영은 파란 대문을 열면 나쁜 남자의 섬이 보일까? ― 영화감독 김기덕 길 위에서 아줌마의 길을 보다 ― 여성운동가 로리주희 아주 단단하고 뽀족한 그리움 ― 소설가 장정일 일본 신세대 문학 작가들 ― 무라카미 하루키, 시마다 마사히코, 무라카미 류, 마루야마 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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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식 법무부 장관을 처음 본 게 대략 10년 전이다. 문화판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그 자리에 좌장격인 분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살풀이 춤 추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냥 국악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니 생각했다. 그는 말이 거의 없었고, 남 얘기를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간혹 말을 할 때도 분위기가 정말 살풀이 춤 추는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자리가 파할 때까지 그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변호사란 직업은 내게 구체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약간은 논쟁적인 어투를 연상시켰다. 그는 목소리부터가 '논'을 펼치기에는 가늘고 뜨겁고 습했다. 처연하게 깊은 사연을 읊조리면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대화의 주제도 대개는 가까이 있는 사물보다 멀리 있는 이미지나 관념에 조준돼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 변호사라니!
------------------ 남재일 : 법무부 장관 자리가 원래 권력 관계가 복잡하고, 특히 이번 정권은 개혁이란 과제를 안고 출범해서 어려운 자리라는 것은 예측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소 본인이 원하던 삶의 방향도 아닌데, 굳이 법무부 장관 제의를 받았을 때 응한 이유랄까, 개인적인 동기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사회에 대한 개혁 의지 때문인가요? 강금실 : 원론적인 이유는 법 전공자니까 법무부 장관 자리도 전문가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상황은 주변에서 다 반대하고 대통령만 지원하는 상태라서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는 자리였죠. 그런데 왜 갔느냐? 이런 게 기사화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나 자신을 던지고 싶은 심리, 어떤 극한 체험의 유혹 같은 게 있었어요. 고민이 많이 됐었는데, 어떤 직관적인 느낌이 등 뒤에서 가라고 떼밀었어요. (...) 자기를 다 던지고 가는 어떤 체험에 대한 열망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싶은데... --- pp 3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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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일 : <칼의 노래>는 슬픔을 베는 슬픈 칼의 신음소리 같았다. 문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칼날 같은 문장으로 궁극적으로 베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은데.
김훈 :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실존한 그대로는 아니고 내가 만든 것인데... 희망 없이도 잘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거다.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희망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희망 없이도 역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 남재일 : "김훈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편애할 때다." 이 말을 <시사저널>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편애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통의 밀도에 대해 열망이 남아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훈 :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통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되는 부분이 많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과 법질서, 이런 기본 프레임을 통한 소통 밖에는 안된다. 심오한 소통은 순전히 개인의 몫인데... 나는 회의적이다. 가령 섹스처럼 남녀가 살을 맞대고 있는 경우도 남과 전혀 소통이 안된다. 섹스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감각밖에 없다. 자기가 느낄 수 있을 뿐이지 상대가 느끼는 바를 느낄 수 없다. 섹스는 결과적으로 편애다. 사랑하면 느낀다. 이런 말들은 우스운 말들이다. 나는 편애할 때 편안한다. 사랑, 보편타당, 이런 말들보다 편애, 편견 이런 말들이 더 소중하다. --- pp 1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