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수입
CD BachㆍHandelㆍScarlattiㆍRameauㆍCouperinㆍByrdㆍPurcellㆍFrescobaldiㆍFroberger : Kenneth Gilbert
Works For Harpsichord
가격
20,300
18 16,600
YES포인트?
170원 (1%) 마니아추가적립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최대 2,000원 즉시할인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디스크

CD 1

  • 01 Frescobaldi : Quattro Corrente (Toccate Libro II)
  • 02 Byrd : Pavan & Galliard 'Ph.Tregian'
  • 03 Broberger : Tombeau de M.Bliancheroche - 'lequel se joue fort lentement sons observer aucune mesure'
  • 04 Purcell : A New Ground
  • 05 Handel : Air with Variations 'The Harmonious Blacksmith' (from Suite No.5 in E major)
  • 06 Rameau : Quatre pieces de l'opera-ballet 'Pygmalion'
  • 07 Bach : Concerto in F major BWV978 nach Vivaldi op 3.3
  • 08 Couperin : 17 Ordre in e minor
  • 09 Scarlatti : 3 Sonatas

아티스트 소개 6

작곡Domenico Scarlatti

관심작가 알림신청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스카를라티는 이탈리아 음악계의 명문에서 태어났으며, 헨델과 친교가 있었던 음악가이다. 또한 하프시코드 주자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도 많은 명곡을 남겼고, 특히 최근에는 바로크 음악이 유행하고 있으므로 많은 작품이 잇달아 소개되고 있다. 스카를라티의 부친은 알렛산드로라고 하는 오페라 작곡가인데, 나폴리 악파의 개조(開祖)로서 음악사에도 기록되고 있으며, 스카를라티는 부친에게 음악 이론을 처음 배웠다. 1685년 10월 26일 나폴리에서 태어나 1757년 7월 23일 스페인의 마드리에서 타계했는데, 그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음
‘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스카를라티는 이탈리아 음악계의 명문에서 태어났으며, 헨델과 친교가 있었던 음악가이다. 또한 하프시코드 주자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도 많은 명곡을 남겼고, 특히 최근에는 바로크 음악이 유행하고 있으므로 많은 작품이 잇달아 소개되고 있다. 스카를라티의 부친은 알렛산드로라고 하는 오페라 작곡가인데, 나폴리 악파의 개조(開祖)로서 음악사에도 기록되고 있으며, 스카를라티는 부친에게 음악 이론을 처음 배웠다.

1685년 10월 26일 나폴리에서 태어나 1757년 7월 23일 스페인의 마드리에서 타계했는데, 그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1701년 나폴리의 궁정예배당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었으며 2년 뒤에는 로마에서 대위법 등 이론을 배웠다. 그 뒤로 그는 아버지와 같이 오페라 작가로 등장했으나 1708년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수업하러 갔다. 이때 베네치아에서 독일의 헨델과 만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경기를 하여 그 뒤부터 그와 친교를 맺었다.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황태후 마리아 카지미라에게 봉사했고 황태후의 소극장을 위하여 몇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황태후가 로마를 떠난 후로는 포르투갈 대사의 악장을 거쳐 1715년 교황청의 줄리아 예배당의 악장이 됐다. 1719년 런던을 방문했고 다음해에 오페라 <나르키소(나르키소스)>를 상연했으나 1721년에 포르투갈의 궁정악장이 되어 리스본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왕녀인 마리아 바르바라의 하프시코드의 교사로도 근무하였다. 한때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1729년 마리아 바르바라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했을 때 그녀를 따라 마드리드로 갔다. 그리고 결국 마드리드에 정주하여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스카를라티는 오페라·교회음악 등도 작곡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도 약 555곡이나 되는 하프시코드 곡이다. 이것들은 주로 마리아 바르바라를 위하여 작곡된 것으로 연습곡이라고 불렸으나 오늘날에는 소나타라고도 한다. 이들 소나타는 2부분형식으로 된 1악장으로 되어 있으나 화성구조나 복주제(複主題)의 징조도 보인 점 등 후의 고전파 소나타의 원형을 보이고 있는 면이 현저하며, 대체로 이것은 이미 로코코풍으로 되어 있으며 3도나 6도, 양손의 교차 등 후의 피아노 기법이 퍽 활발히 개척돼 있다.

Domenico Scarlatti의 다른 상품

작곡Jean-Philippe Rameau

관심작가 알림신청
 

장 필립 라모

장 필립 라모는 화성법을 이론화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작곡가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 무렵부터 프랑스 각지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면서 이론과 창작에 힘썼다. 1722년(39세) 파리에서 유명한 '화성론'을 출판해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여기에 정착한다. 1726년에는 다시 '신음악 이론 체계'를 출판, '화성론'과 함께 3도 음의 누적에 바탕을 둔 화음 연결의 원리를 확립했다. 후에는 대표작 「이폴리트와 아리시 Hippolyte et Aricie」(1733)를 비롯한 많은 오페라와, 쿠프랭의 뒤를 이어받아 클라브생(하프시코드 또는 쳄발로라고도 부른다)곡을
장 필립 라모는 화성법을 이론화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작곡가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 무렵부터 프랑스 각지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면서 이론과 창작에 힘썼다. 1722년(39세) 파리에서 유명한 '화성론'을 출판해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여기에 정착한다. 1726년에는 다시 '신음악 이론 체계'를 출판, '화성론'과 함께 3도 음의 누적에 바탕을 둔 화음 연결의 원리를 확립했다. 후에는 대표작 「이폴리트와 아리시 Hippolyte et Aricie」(1733)를 비롯한 많은 오페라와, 쿠프랭의 뒤를 이어받아 클라브생(하프시코드 또는 쳄발로라고도 부른다)곡을 작곡해 갔다. 후에 궁정 실내악 작곡가로 임명된 라모는 당시의 프랑스 악단 최대의 지도자가 되고, 죽음 직전에는 귀족 지위에 올랐다. 라모의 음악은 일반적으로는 「암탉 La poule」이나 「탕부랭 Tambourin」과 같은 극소수의 소품에 의해 사랑받고 있을 뿐이지만, 그 작풍은 동시대의 작곡가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다. 특히 '선율은 화성에서 태어난다'고 하는 그의 기본적인 음악관은 이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Jean-Philippe Rameau의 다른 상품

작곡Henry Purcell

관심작가 알림신청
 

헨리 퍼셀

작곡Georg Fridrich Handel

관심작가 알림신청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헨델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며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이라고 평가된다. 독실한 개신교(루터교) 신자인 헨델의 대표적인 교회음악은 《메시아(Messiah)》로서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이다. 헨델은 프로이센의 할레(현재는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다 1
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헨델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며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이라고 평가된다. 독실한 개신교(루터교) 신자인 헨델의 대표적인 교회음악은 《메시아(Messiah)》로서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이다.

헨델은 프로이센의 할레(현재는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다 1712년 이후 런던에 정착하였다.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하여,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46작품과 오라토리오 23작품, 많은 양의 교회음악은 물론 많은 기악음악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헨델의 일생이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악파인 조반니 보논치니(1670년-1747년)와는 음악상의 적수였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모 때문에 수차례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지만 헨델은 그를 원망하지않고 오히려 보논치니의 질투를 은근히 즐겼다고 한다.

1708년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수업하러 갔다가 이탈리아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와 만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경기를 하여 그 뒤부터 그와 친교를 맺었다

헨델은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1732년까지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를 24일이란 단기간에 탈고하였고 1742년 4월 12일 더블린에서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메시아》 초연후 8년째인 그가 65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의 생존 중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한다. 1732년의 《에스테르》 개정판에 이어 1735년 사순절(四旬節)[3]에는 성가작품을 포함한 약 15편의 오라토리오를 헤이마케트 극장에서 연속 연주하여 점차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또 1736년에는 《메시아》에 버금가는 유명한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Alexander's Feast)》을 작곡하고 1738년∼1751년까지도 거의 모두를 오라토리오의 작곡에 경주하였다.

헨델은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 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헨델은 그 명성을 거의 그의 극적 작품에서 얻었지만 통주저음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바로크적 협주양식에 기초를 두고 유려한 벨칸토의 성악적 멜로디와 결부하여 항상 간결·명쾌하며 밝은 표현을 나타냈다. 그의 멜로디에서 벨칸토 양식은 독일의 내면적인 힘찬 표현과 결부되어 호모포니의 방향으로 향한다. 또한 바로크 특유의 일정한 악형(樂型)의 반복이 사라반드, 쿠랑트, 가보트 등의 리듬에 지탱되면서 단조롭게 고수(固守)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바흐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의 길이라든가 다양성은 없으나 그 대신 알기 쉽고 명쾌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는 합창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Georg Fridrich Handel의 다른 상품

작곡Johann Sebastian Bach

관심작가 알림신청
 

요한 세바스찬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또한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 하였다.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이게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Johann Sebastian Bach의 다른 상품

연주Kenneth Gilbert

관심작가 알림신청
 

케네스 길버트

하프시코드, 오르간 연주자

Kenneth Gilbert의 다른 상품

cembalo/harpsichord/clavecin : Kenneth Gilbert

Recorded 1987

ⓟ & ⓒ 1987 novalis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04년 05월 01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